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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절대 두껍게 쓰는 것이 아니야 - 알 라지
책은 절대 두껍게 쓰는 것이 아니야 - 알 라지
  • 의사신문
  • 승인 2011.10.24 11: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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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환자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읽어야”

자신이 쓴 책에 맞아 죽은 의사 - 알 라지(al-Razi) 

 “아빠는 눈뜨자마자 바로 커피를 마셔요?”

그래, 어떻게 하다 보니 커피에 길들여졌네.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는 평생 오만 잔의 커피를 마셨다고 그래. 아빠도 더 마셔야 발자크처럼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겠는 걸…. 하하∼∼.

커피는 옛날부터 아랍에서 널리 마셨다고 그러지. 7세기 무렵 이슬람교가 퍼졌을 때, “너희는 마시지 말지어다.”라는 코란의 한 구절을 문제 삼아 커피를 많이 마셔도 좋은가 논쟁이 벌어졌을 정도였다네.

커피의 카페인은 사람을 오래 살게 만들고, 다이어트 효과도 있다고 그래. 당뇨가 잘 조절되지 않을 때도 그런대로 좋다고 그러지. 그러나 커피를 즐기는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겠지?

“예, 그럴게요.”

이번에는 이븐 루쉬드와 함께 입만 열면 커피가 몸에 좋다고 말했던, 아빠처럼 커피를 즐겼던 아랍의 만능 재주꾼 의사 알 라지 이야기를 해 볼까.

그의 이름은 `아부 바크르 무하마드 이븐 자카리야 알 라지'라고 아주 길었는데, 학교에서나 동네에서나 집에서나 알 라지의 이름을 한 번 부르면 힘이 빠졌다고 해. 그래서 알 라지를 페르시아 고향 지명을 따서 라제스라고도 부르지.

그런데 알 라지는 히포크라테스 다음으로 못생겼었대. 앞짱구에다 뒷짱구여서 머리에 호박을 하나 올려놓은 것처럼 보였어.

“야, 저기 호박 온다!”

어릴 때부터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차릴 정도로 동네에서 유명했대. 얼굴은 못생겼으나 재주는 너무 많았어. 기타를 잘 쳤고 노래자랑대회를 휩쓸 정도로 노래를 멋지게 불렀어.

“저기 가수 온다!!”

알 라지가 동네에 나타나면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알라지를 가까이서 보려고 난리였다고 그래.

“아빠!, 라지는 정말 재주꾼이네요.”

그래, 다재다능한 알 라지는 의학뿐만 아니라 철학, 천문학, 연금술에도 아는 게많아 200 여권이나 되는 엄청난 책을 남겼는데, 의학서적만 하더라도 무려 백 권이 넘지.

그 당시 아랍에서는 의사들이 처방전을 모호하게 쓰는 것이 유행이었어. 그러다 보니 정확한 치료를 받아도 약 때문에 잘못되는 경우가 많았어.

“이거, 이렇게 어려워서야 약 지을 수 있겠어?”

알 라지는 수학공식 같은 처방을 반대하여 간결하고 단순하게 처방하고, 오히려 식이요법을 즐겨 사용했다고 해.

알 라지는 수두와 홍역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어. 천연두는 우리나라에서는 두창이라고 하지, 다시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면역에 대한 이론을 처음으로 생각해냈어.

“천연두에 걸리면 몸속에서 물이 빠져나가 피의 부피가 줄기 때문에 다시 천연두에 걸리지 않아요.”

지금 보기에는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중에 파스퇴르조차도 면역이 생기는 이유가 특정한 영양분이 줄어들기 때문이라 황당하게 말할 정도로 알 라지가 영향을 끼쳤다네. 

알 킨디가 증류법으로 알콜을 처음 분리하자 같은 방법으로 세계 최초로 석유에서 등유를 증류하는데 성공하기도 했지. 

하여튼 만능 재주꾼이었어.


의학뿐 아니라 철학·천문·연금술도 뛰어난 만능 재주꾼
천연두 면역 이론 정립 및 가난한 사람들 위해 인술 실천



알 라지는 바그다드로 불려가 병원을 만들 정도로 아랍에서 이름난 의사였어. 그는 고기를 동서남북 방향
으로 걸고는 가장 늦게 상하는 장소에다 병원을 짓기로 결정하여 단번에 왕을 감동시켜 버렸다지 뭐야.
알 라지가 강의할 때면 학생뿐만 아니라 의사들까지 넘쳐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해. 알 라지는 외과 의사로서도 유명했어. 특히 암이나 종양을 떼어내는 수술은 기막히게 잘해 동네방네 소문나 알 라지에게 수술을 받으려고 줄을 섰었대.

“종양은 새로운 핏줄을 만들어 영양분을 받아요. 그래서 종양을 수술할 때는 큰 혈관을 들어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외과 의사라면 종양을 깨끗하게 떼어내야 해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이 훌륭한 의사는 아픈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읽고 병을 치료할 줄도 알아야하는 거야.

“예∼∼.”

왕족인 여인이 양팔이 마비되었다고 알 라지를 불렀어.

“어제부터 양쪽 팔이 움직이지 않아요.”

그러자 알 라지는 몸을 굽히더니 대뜸 그녀의 치맛자락을 들어올렸어.

“아니. 왜 이래요!!!”

양팔을 못 쓴다는 여자는 몸을 굽힌 채 팔로 다급히 치마를 잡고 끌어내렸대. 여인은 마음이 아픈 게 몸으로 나타나 팔을 쓰지 못했던 것이야. 이런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와.

알 라지는 치료할 때면 병에 대해 깨끔하게 기록하였고, 병을 관찰하고 쉬운 방법으로 치료했어.

알 라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인구가 많은 도시 중심에 병원을 지었어. 알 라지가 워낙 친절하다 보니 병원은 환자들로 북적댔지만 가난한 사람들이었기에 알 라지의 호주머니는 늘 비어있었어.

알 라지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불쌍한 사람을 보면 공짜로 치료해주곤 하니까 주변의 힘 있는 의사, 정치인이나 승려들이 무척 알 라지를 싫어했어.

“참, 자기가 뭐 마호메트라도 되나?”

특히 알 라지와 종교 문제로 다툼이 잦았어. 타락한 성직자를 보면 알 라지는 이렇게 큰 소리로 놀렸지.

“에헴∼, 수염을 늘어뜨린 염소 오라비 같으니라구!”

심지어 알 라지는 코란을 `앞뒤가 맞지 않는 허무맹랑한 옛이야기'라고 비판하기도 했어.

“아빠!, 라지가 걱정돼요.”

그래, 아빠두…. 그러다 알 라지는 결국 장님이 돼. 한번은 알 라지가 관리와 사소한 일로 다투었는데, `이때다.' 싶은 반대파들이 떼거지로 비난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이 쓴 책으로 머리를 맞는 벌칙을 받게 되었어. 그땐 종이가 없던 시절이었잖아. 양의 가죽으로 만들어 알라지의 책 `영원한 자유'는 무려 십 킬로그램이 넘었다고 그래. 반면에 관리가 쓴 책은 아주 얇았어. 정말 큰일 났지.

둘 중 하나가 나가떨어질 때까지 계속 머리를 책으로 때리는 벌이었어. 결국 알 라지의 얼굴은 피로 뒤덮이고 온통 멍이 들었어. 사람들은 후드득 날아다니는 양가죽 조각이 마치 새떼인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가난한 사람들은 울며 매달렸고, 힘 있는 사람들은 비시시 쓴 웃음을 지었지.

이 때문에 알 라지는 눈이 멀게 되었어.

알 라지의 제자 중에는 눈 수술을 잘하는 의사가 있었어. 제자 아불은 알 라지에게 말했다지.

“스승님, 눈 주위에 고인 피만 빼내는 간단한 수술입니다. 왜 수술을 받지 않으시려고 합니까?”
알 라지는 안타깝게도 수술을 거부했어.

“그만하면 세상을 충분히 보았노라.”

얼마나 멋있는 말이야.

김응수 (한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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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기 2020-08-01 12:05:59
이렇게 알 라지에 대해서 상세하고 구체적인 글을 읽게 되다니 신기하네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알 라지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