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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리학의 새 지평을 연 - 이우주
약리학의 새 지평을 연 - 이우주
  • 의사신문
  • 승인 2011.10.2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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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리학 선진화 발판 마련·의학교육 교과과정 쇄신

이우주(李宇柱)
이우주(李宇柱)는 1918년 충남 공주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1년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이세규 교수 지도로 약리학 연구를 시작하여 우리나라 약리학의 지평을 새롭게 연 세계적 약리학자이자 교육자이다.

그는 1950년 한국동란 와중에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1년 반 동안 약리학 연구와 실험을 하였다. 귀국 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약리학연구에 매진하여 1955년 의학박사학위를 받고 정교수로 진급했다.

그러나 그는 첫 유학에서 자신과 한국의 약리학 수준이 국제적인 수준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던 차에 마침 그에게 박사후 과정(Post-Doc) 연구원으로 다시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앞으로 큰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학문적 바탕을 공고하여야 한다는 신념으로 연구원보다는 대학원 과정을 밟기로 마음먹고 1955년 제2차 유학을 떠났다. 그를 만난 위스콘신 대학의 샤이드만(F.E. Shideman) 약리학 주임교수(미국 약리학회장 역임)는 그가 한국의 정교수이며 한국의 의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므로 힘든 학위과정을 택하지 말고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박사후 과정 연구원으로 연구하라고 권유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포부를 설명하면서 샤이드만교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학원 정규과정 학생으로 입학하여 3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자마자 위스콘신 대학은 그의 연구업적과 학문적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1년간 객원교수(visiting professor)로 공식 임명했다.

그는 귀국하여 미국에서의 연구를 토대로 `心筋 catechola- mine의 意義'라는 주제로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비를 신청하여 1960년에 5년간 총 4만달러라는 거액의 연구비를 받았다(당시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100달러 이하이었다). 이는 당시로는 아시아지역 학자에게는 처음 지급되는 NIH연구비이어서 일간지에도 소개될 정도였다.

이 연구비로 그는 최신 연구장비를 구입할 수 있었으며 미국에서와 같은 수준의 연구를 수행·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는 Circulation(미국 심장협회 발행), J Pharmacol Exp Ther(미국 약리학회 발행), Brit J Pharmacol(영국 약리학회 발행)등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잡지에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또한 1966년에는 브라질에서 열린 제3회 국제약리학회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되어 심근 catecho- lamine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좌장을 맡기도 했다.

이우주는 1972년 세계적인 의학교육의 흐름에 따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교육목표를 설정하고 세포분자생물학과 행동과학 과목 신설을 통한 통합강의 도입, 임상의학 교육강화 등 의학교육 교과과정의 쇄신을 도모하였으며 이것을 계기로 국내 많은 대학이 교과과정 개편을 단행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강의는 명강의로 매우 유명했으며 특히 연구를 통하여 얻은 몸에 밴 지식을 전달하므로 학생들이 이해하기 매우 쉬웠다. 그는 연구나 학문에 관하여는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 철저함을 몸소 보이고 실험을 통한 진리탐구를 강조했다. 그러기에 책을 보는 것은 집에서도 할 수 있으므로 연구실에서는 늘 실험하라고 가르쳤다. 또한 학자로서의 긍지와 명예를 존중하라고 가르쳤다.

그의 연구주제는 심장에서의 catecholamine의 역할이었으며 이 분야에서 그는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아울러 자율신경계 전반에 걸친 catecholamine의 역할을 연구했다.

한편 그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장(1962)과 총장(1975∼1980)을 맡아 우리나라 대학원 교육과 연구정책을 주도하였으며 연세대학교가 한 단계 도약하고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1947년 오진섭, 이광수, 박주병 등과 함께 7명이 대한약리학회를 발족했으며 학회장(1965)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 약리학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1981년 학술원 정회원에 선임되었고 1961년 삼일문화상과 1983년 학술원상을 수상했다.

그는 교육에서 의학용어와 우리말 교과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1956년 영한의학사전, 1990년 의학대사전을 편찬했다. 1984년에 편찬한 `약리학 강의'(현 `이우주의 약리학 강의') 교과서는 전국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2007년 4월 노환으로 타계했다.

집필 : 김경환(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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