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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이 불쌍한 이유 - 장바티스트 라마르크
도롱뇽이 불쌍한 이유 - 장바티스트 라마르크
  • 의사신문
  • 승인 2011.10.1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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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는 끊임없이 진화해 새로 만들어진다”

보통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용불용설의 의학자 - 장바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

오늘 아침은 크로아상이야. 크로아상에다가 양상추, 햄, 치즈, 오이피클, 이것저것 넣어 연겨자 소스를 발라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아빠, 근데?. 크로아상이 초승달 비슷하게 생겼어요.”

참, 그렇지. 크로아상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시집오면서 가져온 빵이야. 17세기 오스트리아를 포위한 투르크 군을 물리친 기념으로 초승달 모양을 본떠 만든 빵이지. 초승달은 이슬람의 상징이야.

오늘은 크로아상을 먹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그래, 프랑스로 가보자. 자,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생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체계적으로 밝혀냈던 프랑스의 장 밥티스트 라마르크야.

옛날부터 사람들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고 싶었지. 물에서 나왔을까? 뭍에서 나왔을까? 흙으로 만들었을까? 먼지가 모여 생겼을까? 너무나 궁금했어.

옛날 그리스 시대에 살았던 엠페도클레스라는 사람은 땅, 물, 바람과 불이 모이고, 나눠지면서 생명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어. 작고, 다양한 여러 부분이 생긴 다음에 땅위에서 합쳐졌다고 했지. 또 아낙사고라스는 사람이 물고기 모양의 조상에서 생겨났다고 했어.

라마르크는 처음으로 거미, 곤충, 전갈, 게, 불가사리와 같은 무척추동물의 구조를 설명해낸 멋있는 사람이지. 그러나 라마르크는 `하느님이 인간과 생물을 창조했다'는 창조론에 대한 의심을 밝혔다가 사회로부터 완전히 매장당해 눈이 먼 채 불쌍하게 죽었다고 그래.

라마르크는 생명이 맨 처음 무기물에서 저절로 생겼고, 삶이 미리 정해진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하였어. 라마르크는 환경의 영향을 중요하게 생각해 즐겨 쓰거나, 쓰지 않는 습성에 따라 진화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유명한 용불용설(用不用說)이야. 

라마르크는 진화의 원동력을 이렇게 이야기했지.

“획득한 형질은 자손에게 유전된다”

기린만 보아도 단번에 알 수 있대. 열매를 따먹기 위해 점점 높은 곳에 있는 나뭇잎까지 목을 뻗다 보니 기린의 목이 길어졌다는 것이야. 즉, 계속 사용하면 신경액 물질이 나와 진화한다는 것이 주된 이론이었어. 반대로 두더지나 도롱뇽처럼 어두운 곳에서 눈을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고 했지.

“아빠, 정말이에요?”

아니야,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목이 긴 기린들이 먹이가 귀한 건기(乾期)에도 나무 꼭대기가 아니라 자기 어깨 높이에 있는 잎들을 주로 따먹는다고 해. 기린의 목이 길어진 진짜 이유는 먹이가 아니라 짝짓기에 있다고 하지. 암컷 기린들이 길고 굵은 목을 가진 수컷들이 싸움도 더 잘하고 멋있어 더 매력을 느낀다고 해. 간단히 말해, 암컷들이 목이 긴 수컷 기린을 더 좋아한다고 그러던데…. 정말일까? 하하∼∼.

하여튼 라마르크는 당시 종교계에 반대되는 진화론을 주장한 만큼 일상생활도 개혁적이었어. 또한 열심히 노력하면 아들은 아버지와 달리 큰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라마르크의 생각은 노동자들에게는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의 메시지처럼 들렸어. 반면에 당시 귀족이나 승려들은 라마르크를 아주 싫어했지.

그런데 어느 날 프랑스에서 아주 큰 사건이 일어나 세상이 완전히 바뀌게 돼. 프랑스대혁명이 나자 혁명사상에 딱 맞는 이론 덕분에 라마르크는 파리 식물원의 교수로 바로 임명되었어.

라마르크는 몰락한 귀족집안에서 열한 번째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신학교에서 보내야했을 정도로 가난했다고 그래. 라마르크는 군대를 다녀온 후 은행에서 일하면서 의학 공부를 하기도 했지. 그러나 의사는 되지 못했어.

비구름이 가득 낀 어느 날, 라마르크는 우연히 자신의 젊은 시절만큼 불우한 처지에 놓인 조르주 퀴비에를 만났어. 경제학을 공부하던 퀴비에는 바다동물을 연구하면서 자연과학으로 눈을 돌렸어. 그러나 갑작스럽게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낸 퀴비에를 알아주고,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러다 보니 퀴비에는 변두리를 맴돌며 직장조차 얻기 어려웠어. 라마르크는 자신보다 스물다섯 살이나 젊은 퀴비에에게서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렸어.

“퀴비에, 파리 식물원에서 나와 같이 일해보지 않겠나?”

퀴비에가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라마르크는 밥도 사주고, 용돈도 주며 친자식처럼 퀴비에를 보살펴주었어. 퀴비에도 라마르크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연구했다네. 그러나 안타깝게도 퀴비에는 라마르크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길어진 기린의 목·도룡농 눈의 퇴화 등 `용불용설 진화론' 주장
제자 퀴비에의 `창조론'에 밀려 시력 잃고 편치 않은 말년 보내



얼마 후 퀴비에는 해안가에서 얻은 자료로 생명체의 구조와 기관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법칙을 발표했어. 가령, 발굽을 가지고 뿔이 난 동물은 항상 초식동물의 이빨을 가지고 있고, 반대로 갈퀴발톱을 가진 동물은 항상 육식동물의 이빨을 가지고 있다는 너무나 간단한 법칙이었어. 그러나 이 주장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어서 퀴비에는 으쓱대기 시작했어.

퀴비에는 화석들을 근거로 지금까지 모두 네 번의 창조과정이 있었고, 생명들은 매번 엄청난 홍수로 멸망해 버려 화석이 되었다고 말했어.

하루는 퀴비에가 라마르크에게 이런 내용을 설명했어.
“왜, 하필이면 네 번인가? 기왕이면 수십 번이라고 하지 그래”

그런 라마르크의 반응에 화난 퀴비에는 벌건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었어.
“말도 안 되는 진화론을 믿으라니 터무니없습니다”

하지만 라마르크도 물러서지 않았어. 퀴비에가 발견한 화석은 라마르크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 생명들의 먼 조상일 따름이었지.

그런데 라마르크는 오래 전부터 눈병을 앓아 실명의 위기에 있었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라마르크는 딸의 손을 붙잡고 강의실로 들어서야만 했대.

어느 날 라마르크가 강의할 때였어. 도롱뇽을 오랫동안 동굴 안에서 지내도록 내버려 두면 서서히 시력을 잃지만 다시 빛이 있는 곳에 꺼내어두면 시력이 회복된다는 내용이었어.

그때, 강의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퀴비에가 학생들 틈에 자리 잡았어. 눈이 보이지 않는 라마르크는 퀴비에가 강의실로 들어온 줄도 몰랐지 뭐야.

“아빠!! 라마르크가 걱정돼요”
“그렇다면 그동안 눈을 사용하지 않아 시력을 잃게 되신 거로군요”

라마르크는 깜짝 놀라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퀴비에가 소리치는 것이 희뿌옇게 보였어.
“그러면 밝은 곳으로 나가 눈을 사용하면 다시 앞을 보게 되겠네요?”

순간, 강의실 안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하더니 학생들이 웅성거렸어. 퀴비에가 힘지게 일어나자 많은 학생들이 따라 일어났어. 이때다 싶어 퀴비에는 큰 홍수 이전에 살았던 동물의 뼈 표본을 보여주면서 말했어.
“여러분, 어떤 동물이 그림 속의 괴물로부터 생겨났다고 생각하십니까?”
학생들은 퀴비에의 말에 폭소를 터뜨렸어.

라마르크는 이날의 충격으로부터 회복하지 못했어. 강의를 들으려는 학생도 없었고, 시력을 완전히 잃어 교수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

그 뒤 라마르크는 스무 해 동안 앞을 보지 못한 채 살아야 했어. 그런데도 라마르크는 딸에게 받아쓰게 해서 열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고 하네.

퀴비에는 어떻게 되었냐구? 퀴비에는 나폴레옹의 신임으로 장학관도 지냈고, 해외 원정에서 가져온 화석으로 많은 결과를 발표했어. 지금 보기엔 허술한 주장이지만 고지식한 퀴비에는 자신을 아리스토텔레스에 비유하기도 했고, 다른 주장을 펴는 사람들에 대해 공격적이어서 `생물학의 독재자'라고 불렸다고 해. 늘그막에는 또 다른 후원자인 생틸레르와 크게 싸워 라마르크처럼 떡을 만들어버렸지 뭐야.

그러나 현재 퀴비에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졌지만, 라마르크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으로 다시 조심스럽게 이야기되고 있지.
“아빠! 아빠는 진화론이 맞다고 생각하세요?”
응, 아빠 생각엔 진화도 하느님이 창조한 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아.
 
*후성유전학(epigenetics)
DNA 염기서열은 변화가 없으면서 대물림되는 기전이 달라지는 현상을 후성유전이라고 한다. 간단하게 말해, DNA 정보 말고도 생명현상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소들이 있다는 말이다. 후성유전학에 따르면 아버지의 생활 정보가 자식에게 유전될 수 있으나. 이 같은 후성유전의 효과는 대개 몇 세대를 거치면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후성유전이 진화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다. 후성유전은 DNA 메틸화와 히스톤의 변형에 의해 조절되는 염색질의 변화에 염색질 개조(chromatin remodeling)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응수 (한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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