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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병학을 개척한 - 이보영
소화기병학을 개척한 - 이보영
  • 의사신문
  • 승인 2011.10.0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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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 암센터 및 한국의과대학협의회 초석 마련

이보영(李輔英)
범제(凡齊) 이보영(李輔英)은 1910년 충남 부여군에서 넉넉한 농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유·소아기에는 동네 사숙(私塾)에서 한학을 익혔다. 후에 신학문에 뜻을 두고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5년간 수학하고 1937년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1947년 일본 교토부립의과대학 생리학교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3년부터 세브란스의과대학 내과에서 전임강사로 시작하여 1975년 정년퇴임까지 32년간 내과교수로 봉직하였다.

심오한 학문적 연구를 위하여 1954년에서 1956년까지 미국 버지니아의과대학과 펜실바니아의과대학에서 위장 내과학을 전공하였다. 재직동안 약 100여 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중에도 한국인소화성궤양의 발생기전에 관한 연구는 광범위하게 시행되었으며, 특히 위동결에 관한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선생은 연세암센터가 창설된 1962년부터 발기위원, 운영위원으로 그 육성에 깊이 관여하고, 일본 해외기술협력사업단(OTCA)으로부터 많은 의료기자재와 후원을 받는데 공적이 컸다.

또한 1970년부터 2년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을 역임하는 동안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교과과정을 개편하고, 의학도서관을 완성하고, China Medical Board로부터 의과대학 개발기금 54만불 유치 등 많은 일을 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의과대학 협의회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준비위원장으로 활약하여 이 기구는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1975년 모교에서 정년퇴직 후에 서울 제일병원내에서 내과개업을 하였다. 그 후, 1977년 대장 림프암으로 영면하였다.

선생은 종래 유학에서 가정적으로 내려온, 言忠信 行篤敬의 실행도 잊지 않았으며, 또한 기독교인으로 일생을 보냈던 학자였다.

집필 : 박인서(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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