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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함께 잠시 세상일을 잊다
친구들과 함께 잠시 세상일을 잊다
  • 의사신문
  • 승인 2011.10.0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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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일곱 친구가 새로 지은 집 마당에 모여 모닥불을 피우고 잠시 세상일을 잊었습니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늘 곁에 있는 듯 서로 마음을 쓰는 친구들입니다.
연휴에 충남 홍성의 제법 외진 곳에 다녀왔습니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예산군에 속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37년을 함께 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철도고등학교에 입학해 만난 이 친구들은 출신지도 제각각이고 개성 또한 다들 독특할 뿐 아니라 자기주관도 확고합니다. 도무지 함께 어울릴 수 없을 듯해 가끔은 모여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하지만 누구 하나 깊은 상처없이 보듬으며 살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지금까지 늘 이들에게 늘 걱정만을 끼치며 살아왔습니다. 20여년 전일입니다.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군 제대 후 뒤늦게 대학을 마치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때였는데 도무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저녁 무렵 아무 생각없이 나왔는데 마음이 천근만근입니다. 무작정 길을 나서 늦은 밤 지방의 읍내에서 작은 의원을 시작한 친구의 집이었습니다. 집이라기보다는 의원 건물에 있는 숙소가 맞는 표현입니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마주 앉았는데 이 친구 이미 내가 뭔가 걱정을 한가슴 안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입니다. 아무 것도 묻지 않으니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읍내여서 어디 가서 차 한 잔 마실 곳 찾기가 쉽지 않은 시간이라 그냥 자리에 누웠습니다.

쉽게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데 친구가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그냥 시시콜콜 다 이야기하고 나니 속이 편안해지며 잠이 쏟아졌습니다. 아침 먹고 진료하는 친구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은 편안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일인데 이런 고민을 들어준 친구가 고마웠습니다.

며칠 후 내가 그를 찾았던 것처럼 그가 불쑥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큰 금액을 아무렇지도 않게 놓고 갔습니다. 곧 갚겠노라고 속으로 다짐을 하고 지난 세월이 이십년이었습니다.

연 초에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고생하신 어머님께서 아버님 곁으로 떠난 후 뒷정리를 하고 그 친구 집을 찾았습니다. 20년 전 이 친구가 놓고 간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이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미안할 뿐입니다. 그렇게 속내를 다 털어놓고 지내온 나머지 다섯 명의 친구들에게까지도 입을 다물었던 친구입니다.

홍성엔 다른 친구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몇 년 전 이곳에 와서 한우를 키우기 시작하더니 이제야 마음을 굳힌 듯 번듯한 집을 짓고 여섯 친구들을 불렀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일곱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먹고 마십니다. 늘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하던 이들이 지금은 마냥 유쾌합니다. 새로 지은 집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고 밤이 이슥하도록 웃음이 번집니다.

날아오르는 불티를 따라 눈길을 옮기다 문득 하늘을 보았습니다. 자주 하늘 올려다보고 살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분주함을 핑계로 하늘을 까맣게 있고 있었습니다. 별이 맑습니다. 조금씩 취기가 오르는 `58 개띠' 친구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집니다. 세상살이에 서툰 나를 걱정하며 때로는 부모처럼 때로는 형처럼 보살펴준 친구들이 고맙습니다.

오근식〈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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