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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리학의 초석을 다진 - 이제구
병리학의 초석을 다진 - 이제구
  • 의사신문
  • 승인 2011.09.2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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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학·법의학 등 연관 학문분야 발전도 기여

이제구(李濟九)
이제구(李濟九)는 1911년부터 1986년까지 생존하였던 병리학자다. 원산공립중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후 경성제대 병리학교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40년에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병리학교수로 부임하여 광복을 맞을 때까지 근무하였다. 1946년에 새로 생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병리학교수로 옮겨 이후 1976년 정년퇴임까지 30년간 교수로 근무하였다.

이제구는 일본강점기에 우리나라 사람이 세운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 부임한 첫 번째 한국인 병리학교수였으며, 광복과 함께 대한병리학회의 창립에 윤일선과 더불어 주도적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광복 후 경성대학 의학부를 거쳐 만들어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병리학교실을 윤일선과 함께 창설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피난 가는 과정에서 임시관리책임자로, 이후 1951년부터 1955년까지 그리고 1964년부터 1968년까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으로 어려운 시절에 학교관리와 행정업무에 진력하였다.

연구분야는 악성종양, 비반세포, 면역병리 등에 관한 것으로 동물실험에 치중된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고, 1960년에는 대한민국학술원회원으로 피선되었으며, 1965년에는 대한민국학술원상을 수상하였다. 학회활동도 활발하여 1960년 대한혈액학회 초대회장, 그리고 1976년 대한법의학회 초대회장으로 학회창립에 기여하였으며, 1962년부터는 대한병리학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이상과 같이 선생의 선구자적 삶은 첫째, 일본강점기라는 통제된 시기에 일본식 교육을 받은 입장에서 경성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개업의사로서의 보장된 삶을 마다하고 기초의학교수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 근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곳에서 많은 한국인 의학도를 교육하였다. 둘째, 광복 후에는 경성대학의학부 병리학교실을 거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병리학교실을 창설할 때 윤일선과 협조하여 교실에 2강좌를 설치하고 병리학의 초석을 다졌으며, 이듬해 대한병리학회를 창설하여 회장과 부회장의 중책을 담당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혈액학회와 법의학회 등 병리학과 연관된 학문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아 이후 이 분야 발전에 기여하였다는 점이다.

이제구는 서울대학교에서 정년퇴임 후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에서 5년여 근무하였고 그동안 동서의학연구소를 통한 활동을 하였다. 1986년 직장암으로 타계하였다.

집필 : 지제근(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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