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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며느리
외국인 며느리
  • 의사신문
  • 승인 2011.09.2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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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숙 <한국여자의사회 이사>

주영숙 이사
밖에서 어눌한 우리말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외국인 환자가 왔나보다. 요즘은 환자들이 보험카드를 소지하지 않고 의원에 와서 주민등록번호와 이름만 대면 접수에서 공단의 홈페이지에 접속을 해서 확인 후 보험적용을 해 주는 서비스에 적응되어 다들 그냥 온다. 주민등록증이라도 가져오면 좋지만 여자들의 지갑에는 주민등록증이 들어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국인들의 이름은 그 나라말로 불리는 이름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서 적는 이름이라서 우리말로 바꿔 쓸 때 듣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쓰기도 하고 때로는 주민등록을 접수하는 주민 센터 직원에 의해 적혀지는 이름이라서 본인들도 정확하게 모르고, 남편조차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인터넷으로 조회할 때는 철자가 하나라도 틀리면 확인이 안 되니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어찌어찌해서 찾았는지 환자를 안내해 들어오는데 보니 어제 왔던 환자로 오늘 한번 더 확인하자 해서 왔는데 이리 찾기가 힘들었나보다. 전에 종이차트를 쓸 때는 이름의 가나다 순으로 정리를 해 놓기 때문에 한번 접수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 언저리에서 찾으면 금방이지만 요즘은 전자차트를 쓰니 매번 이리 힘든 작업 끝에 접수를 하게 된다.

환자는 아낙이라고 하기보다는 21살짜리 어린 소녀로 우리 아이들 같으면 한 두 해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는 마냥 애처럼 대우받을만한 나이인데도 이 환자는 자신보다 조금 작게 느껴지는 아이를 업고 있다. 이런 어린 나이에 먼 이국땅으로 시집을 온 것이다. 한국에 온지 8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눌하게나마 자기 불편한 걸 얘기를 해서 천천히 설명을 해주고 치료하고 찜질을 시키는데 전화가 왔다. 아이 아빠인가 보다. 아이와 화상전화까지 시도를 하며 깔깔댔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같이 웃게 되고 또 먼 나라로 시집을 와서 그나마 행복하게 사는 것같아 마음이 놓이고 좋아 보인다. 외국인 특히 동남아시아 어린 신부와 결혼을 해서 발생되는 부작용이 간간히 내 귀에까지 들어오니 이런 어린 이국 신부들을 보면 안쓰럽고 약간은 불안하다. 그래도 아프다고 안과까지 오는 사람들은 집에서 나름 대우를 받고 살고 있으리라.

어제와 달리 오늘은 남편이 따라왔다. 두 사람의 나이차는 10살이 훨씬 넘게 있어보였지만 어린 아내의 상황을 설명을 해 주었고 보냈는데, 이 모자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또 한편으로는 아내를 걱정하는 남편의 눈빛이 생각나 내 마음까지 훈훈해졌다.

내가 일하는 곳은 남서지부의 변방이고 또 탈북자들의 집성촌이 있어 탈북자나 조선족 그리고 외국인 아낙들이 자주 온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북에서 내려온 환자들은 자기가 북에서 왔다는 걸 거의 비밀로 했다.

하지만 요즘은 진짜 `많이 변해서 환자 자신이 북에서 왔다는 걸 당당히 밝히고 또 심한 경우는 북에서는 이런 병정도는 치료가 금방 되었는데 안 낫는다는 둥 불만이 많다. 한번은 각막염이 동반된 안검염과 결막염이 있는 70대 할머니가 오셨는데 두 번째 오는 날 대뜸 “북에서는 페니실린 안약을 넣으면 금방 낫던데 여기는 그런 약이 없어서 또 오라고 하나봅니다”라고 해서 황당했던 일도 있다.

요즘은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이라고는 하기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다문화가정이 많아졌다. 탈북자가 조선족도 우리 핏줄이라고는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많이 달라서 다문화 가정범주에 넣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많아지는 이질 문화에 동화가 되려면 다수의 우리가 먼저 마음을 열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다른 나라에서 시집 장가온 사람들의 입장으로 보면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시댁의 식구들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남편, 아내의 나라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좀 보듬어주면 먼 나라로 시집 장가온 이들이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갖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TV에서 방영되는 해외의 물이 부족한 지역에 나가서 우물을 파 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갑자기 저 장소가 우리나라로 시집 온 신부의 동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즈음에 농촌에서 장가못 간 총각 결혼시켜주는 일환으로 서로간 아무 정보도 없이 가난한 외국에서 중매로 데려온 어린 신부들의 고충이 한참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을 때였다. 그 후 가끔 그런 관계되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 제안을 하곤 하는데 그게 잘 통하지를 않지만 아직도 그런 생각은 변함없다.

`마누라가 이쁘면 처갓집 기둥에도 절한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어려운 외국신부들의 친정집에 도움을 주면 어떨까? 그들 신부의 친정 대부분이 가난하고 도움의 손길이 가면 좋을만한 지역이고, 우리나라는 해마다 많은 단체들이 해외로 봉사를 나가는데 친정에 도움을 주기를 원하는 신부들의 접수를 받아서 각자 외국의 신부 친정에 나가서 봉사를 하고 오면 어떨까?

남편의 나라인 한국에서 처갓집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면 그 지역에서의 한국의 위상도 올라가고 처갓집에서 사위나 사위나라에 대해 고마움도 느끼고 딸에 대한 걱정을 좀 덜게 될 것 같다. 그리되면 그 신부도 한국에서 정을 붙이고 사는 데 좀 수월하게 되지 않을까.

주영숙(한국여자의사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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