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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실망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 의사신문
  • 승인 2011.09.2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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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값을 치르고 데려와 키우고 있는 달마 중투. 본래 있었던 새 촉이 자라기를 멈추자 맨 왼쪽에서 다른 싹이 올라와 멋진 무늬를 자랑하고 있다. 창가에 두고 봄에 거름 올려주고 닷새에 한 번쯤 흠뻑 물준 것이 다인데도 내게 과한 즐거움을 준다. 본래 자연 상태에서는 도태되고 말 개체인지라 살아갈 기회를 얻게 되어 이에 대한 보답을 하는 듯하다.
얼마 전에 폐차를 했습니다. 운전면허를 그냥 신분증으로만 사용하던 차에 갑자기 친구가 타던 차를 받았습니다. 운전 연습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출퇴근을 하면서 참 여러 번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어머니께서 부여의 요양병원에 계실 때는 매 주말마다 다녀올 수 있는 발이 되어 주었고, 아들이 군에 입대한 후에는 면회 길을 편리하게 해 주었습니다.

십년이 넘은 차라 집 근처의 자동차 수리점 사장과 안면을 트고 크고 작은 수리를 맡기곤 했습니다. 늘 수리비가 조금 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몸 생각해서 고치는 사람 마음 편안하게 해주려 어지간하면 깎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년 쯤 지나면서 근처를 오가다 마주치면 꽤나 반가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먼 길 가기 전엔 혹시 도중에 낭패 볼 일은 없는지 사전 점검도 무료로 해주고 차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주기도 해서 참 좋은 사람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조심조심 운전을 했는데도 지난 6월말 속초 가는 길에 사단이 났습니다. 강원도 인제를 지나 신호 대기 중에 그만 시동이 꺼져버렸습니다. 비상 신호 켜고 한동안 쩔쩔 매다보니 다행히 시동이 걸렸습니다. 마침 가까이에 있던 휴게소까지 살금살금 이동해 차를 세우고 보니 앞쪽에서 약하게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정차해 있던 다른 분들이 오더니 냉각수가 부족해서 엔진이 과열되었다고 합니다. 마음씨 좋은 분을 만나 냉각수를 채우고 혹시나 해서 비상용 물까지 차에 싣고 한참 만에 다시 출발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멀리가지 못하고 속초 시내 수리점까지 견인을 해 터진 냉각파이프를 교체했습니다.

참 당황스러웠던 아들 면회 길이었습니다. 돌아오자마자 차 수리를 맡기며 어차피 오래된 차이니 이참에 냉각 시스템 전체를 점검하고 오래된 부품 중 특히 고무재질의 파이프는 모두 교체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비용은 생각보다 높았지만 길 위에서 고무파이프 때문에 사고를 당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달 조금 지나 진료봉사에 참여하기 위해 가본 적이 없는 길을 더듬어 연천을 향해 가다가 동두천 외곽에서 엔진 온도가 갑자기 치솟았습니다. 함께 가던 동료들은 택시를 타고 가고 견인차를 요청해 인근 자동차 수리점에 갔습니다. 엔진 가까이에 있는 큰 냉각수 파이프가 터졌다 합니다.

부아가 났지만 꽤 긴 시간을 기다려 일단 수리를 하고 출발을 했는데 얼마 못가 다시 엔진이 꺼집니다. 다시 돌아와 점검해 보니 치솟은 열 때문에 엔진에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거래하던 집 근처의 자동차 수리점 사장과 여러 번 통화를 하고 수리비를 물었습니다. 동두천 수리점보다 거의 두 배는 비싸게 부릅니다. 그 순간 그와의 관계는 끝났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무 자르듯 해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수리를 해서 더 탈지 폐차를 할지 이틀을 더 생각해보고 폐차하기로 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동두천까지 가서 차에 있던 잡동사니들을 배낭과 여행용 가방에 옮겨 담아 지고 끌며 집에 돌아오는 동안 서운함은 더 커졌습니다.

찾아가 따지고 싶지만 험한 말이 툭 튀어나올까 차마 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근처를 지나다 행여 마주칠까 다른 길로 다닙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 있겠지요. 그나마 내 몸 다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아직은 아비노릇을 조금 더 해야 하니까요.

오근식〈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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