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7:56 (금)
생리학을 개척한 - 이종륜
생리학을 개척한 - 이종륜
  • 의사신문
  • 승인 2011.09.08 13: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율신경생리학 분야 권위자로 연구·후학양성 앞장

이종륜(李鍾綸)
롱산(聾山) 이종륜(李鍾綸)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이규원과 박성녀의 2남 2녀 중 맏아들로 190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24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동교 생리학교실 조수로 근무하다가 1926년 경성대학 생리학교실 조수로 임명되었다. 이곳에서 자율신경 분야의 연구에 종사하여 많은 업적을 내놓았으며 1932년 동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경성대학 박사학위 3호이나 한국인으로서는 첫 번째 학위취득자이다.

학위논문은 “Beitrage zur Kenntinis uber die Innervation der roten und weissen Muskeln (Keijo J. Med., 2, 1931)”이다. 연구논문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우나 그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논문이 “Ueber die Innervation des Ileoc-oecal Sphinkter der Ratte(J. Biophysics, 3, 1927)”이며 회-맹괄약근(回-盲括約筋)의 자율신경지배의 생리적 기능을 밝힌 것이다.

1933년 경성대학 의학부 생리학 강사가 되었고 1935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생리학 겸임강사가 되었으며 1939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교수가 되어 학교운영 및 학생교육에 전념하다가 1945년 조국광복을 맞이하여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수 겸 경성대학 의학부 생리학 교수로 임명되어 학생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일본강점기하에서 우리나라 의학교육기관 8개교 중 6개교가 관립 또는 공립, 도립이었기 때문에 거의 일본인 교수들에 의해서 운영되었다. 따라서 한국인 교수는 극히 소수였으니 광복 후 많은 인력난을 겪었다. 특히, 광주의학전문학교는 1944년에 설립된 학교로서 인력난이 심했다. 광주시민 및 전남도민의 요망에 따라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외과학 교수 출신인 최상채가 광주의학전문학교 교장이 되어 학교운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때 친한 친구이고 경성의학전문학교 동기동창인 이종륜(서울대학 교수)의 협조와 도움이 지대하였고 후일에 이종륜도 이 학교 부학장으로 부임하였다.

기초의학 전공자로서 지명도가 높았던 이종륜은 많은 교수들을 추천하여 광주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초빙했던 것이다. 후일에 광주의학전문학교가 광주의과대학이 되고 이 대학이 모체가 되어 국립전남대학교가 창설되었으며 초대 총장으로 최상채, 초대의과대학장 겸 대학원장에 이종륜이 임명되어 전남대학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그의 사회활동은 주로 학계로서 대한생리학회장(1952-1964), 대한민국학술원(1, 2, 3차 회원) 자연부 제4분과 회장(1954- 1965)을 역임하였고, 1960년 학술원상(학술공로상)을 받았으며, 1962년 광복절 제17주년 국가문화포장을 받았다.

그는 우리나라 생리학의 선구자로서 특히 자율신경생리학 분야에서 많은 연구업적을 남겼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으며 훌륭한 의학교육자로서 젊은 세대에게 과학하는 마음을 일깨워주고 의학자의 가야 할 길을 몸소 실천하여 그 본이 된 분이다. 선생은 강의 중 졸도하여 몇 해 동안 가료를 하다가 1965년 서울자택에서 타계하니 향년 63세였다.

산업보건을 전공한 아들 이승한(연세의대 1956년 졸업)이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집필 : 길원식(전남대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