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차종 이야기 - BMW〈2〉
프리미엄 차종 이야기 - BMW〈2〉
  • 의사신문
  • 승인 2011.09.0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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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으로 사라질뻔한 BMW를 살려준 1500

이세타
BMW 1500

 

 

 

 

 

 

 

글을 쓰기 위해 BMW의 역사를 검색하자 몇가지 재미있는 사진이 나온다. 도저히 혼자만 보기에는 아까와서 사진을 올려본다. 왼쪽 사진은 이세타라는 BMW의 50년대 모델이다. 이 차의 문은 앞으로 열린다. 핸들 옆으로 들어가서 운전석에 걸터앉아야 한다. 지금보아도 이세타의 디자인은 특이하다는 수준을 넘는다. 궁금하기도 하고 추돌 사고가 나면 어떻게 빠져 나와야 할지 곰곰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른쪽 사진은 BMW1500의 사진이다. 1960년대 초반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의 모델이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이 차가 BMW를 살린 모델이다. 키드니 그릴과 헤드라이트는 앞으로 30년간 나올 모델들의 디자인 DNA를 결정했다. BMW는 이세타와 그보다 조금 나은 BMW 700을 만들다가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차를 만들기 시작한다. 1500으로 시작하는 New Class라는 차종들의 시작이다.

1960년대 초반에 1500이 판매에 성공하며 본격적으로 회복하기 이전 1950년대 말이 되자 BMW는 경영상 점차 어려워지고 있었다. 경영진은 조만간 회사가 파산을 선고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경쟁사라고 볼 수 았는 다임러-벤츠는 작기는 하지만 경쟁상대인 BMW를 인수하여 벤츠의 차대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1959년이 되자 경영진들은 다임러 벤츠에게 전권을 맡기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었다. 경영자를 포함해 누가 보아도 상황은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이때 벤츠와 BMW의 다리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 헤르베르트 퀀트(Herbert Quandt) 라는 사람으로 집안은 사업체를 경영해오고 있었다. Quant 집안은 10% 의 다임러벤츠의 주식과 BMW의 30%를 소유하고 있었다. Quant는 동생과 함께 이들을 물려받았다. Quant는 양측에 이해관계가 있고 BMW 경영진들의 의견에 동의하여 다임러 벤츠에 경영권을 넘기기로 하였다. 그러나 협상의 막바지 단계에서 근로자들과 노조의 반대의견과 다른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

회사를 넘기는 일이 결국 회사의 불안정성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회의는 막판에 잠시 연기됐고 이 기간 동안 퀀트는 BMW의 지분을 50%를 넘는 수준으로 늘리고 지배적인 지분을 보유하며 회사를 인수한 것이다. 주변의 은행가들이 재정상의 위험을 이유로 반대하는 충고도 무시했다. BMW가 다시 어려워지면 재산상의 손실이 매우 컸을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폐쇄될 뻔한 회사는 재정이 좋아져서 1959년에 흑자로 전환되었다. 그 이후 40년 이상 흑자였다.

Herbert Quandt의 투자 이전에 디자인에 들어가 1962년 등장한 BMW 1500은 새로운 세그멘트를 제시했다. 대량생산되는 차와 수공업으로 생산되는 차의 중간에 있었다. 제조품질과 성능은 대량생산되는 차보다 우수하고 가격은 수공업으로 생산되는 차보다는 쌌다. BMW의 기술력으로 가능한 일이었다고 전한다.

BMW 1500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50년 전의 차인데도 그렇다. 우선 엔진이 좋았다. M10이라는 엔진으로 1961년부터 1987년까지 BMW의 가장 중요한 엔진이었다. 1.5L, 1.6L, 1.8L, 2.0L의 M10 블록이 있었고 내구성도 뛰어났다. 나중의 80년대의 E30도 이 엔진을 달고 다녔다. 그리고 M3의 조상인 E30 M3의 블록도 M10 이었다. 이 차의 엔진은 S14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2.3리터로 보어업된 M10이며 헤드만 다르다.

M10은 BMW의 모든 차들에 적용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MW의 3시리즈와 5시리즈의 대다수의 차들이 M10 엔진을 달고 다녔다. 엔진은 출력도 좋았고 내구성도 좋았다. 우선 6000RPM이 되어도 진동이 심하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설계였다. GT급 레이싱 대회에서도 많은 우승의 주력이었다. 유럽이 아직 궁핍했을 때 BMW 성장의 가장 중요한 엔진이었다.

BMW 1500은 1962년부터 1966까지 2만4천대 정도를 생산했지만 당시로서 이정도의 판매량은 BMW로서는 성공적인 수준이었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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