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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극복기 <11> 김주덕 연세대 명예교수 
암 극복기 <11> 김주덕 연세대 명예교수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1.08.29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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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 은퇴하던 날 남은 인생까지도 은퇴식 치를 뻔” 

 

■30년의 의사생활 은퇴…내 인생도 `종지부'(?)

아침마다 느껴오던 아랫배의 통증은 그날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김 교수는 음주 다음날이면 나타나는 현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날은 조금 달랐다. 아랫배 통증의 강도와 혈흔이 섞인 변. 그는 단지 `치질'이 심해졌다고 생각한 채 몸의 변화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2002년 은퇴를 앞두고 종합건강검진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의사 `김주덕'을 떠나 `인간' 김주덕에 대한 선물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모든 의사들이 그렇겠지만 은퇴를 하기 전 연례행사처럼 건강검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사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제대로 된 건진을 해 본적이 없었던 것도 있었다. 

김 교수는 2001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교수로 처음이자 마지막, 그리고 의사로서의 은퇴를 앞두고 건강검진을 받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건진은 그의 남은 인생까지도 은퇴식을 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대장내시경 결과 `대장암 3기'를 알려왔다.

김 교수 “과민성반응으로 인한 배의 통증과 혈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암이라고 하니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이 혼미했다는 단어보다 `멍'한 상태가 가장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며 “손목에 찾고 있던 시계조차 잃어버릴 정도였다”고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모든 대장암환자들의 주요 발병원인인 `스트레스'와 `과도한 업무' 그리고 잦은 술자리와 육류의 섭취가 주요원인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아차' 하고 넘긴 시간이 앗아간 `암'

김 교수가 아랫배의 통증과 혈변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던 건 `치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암이 나타나기 몇 년 전 깨끗하게 종양을 제거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은퇴 전 몸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아랫배의 심한 `통증'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화장실을 다녀오면 그날 하루는 별 탈 없이 하루를 보냈는데 어느 날 부터인지 하루 종일 배가 살살거리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변에 섞여 나오는 혈변 또한 한몫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 교수는 `암'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현실은 그의 예상을 빗나갔다. 대장내시경 검사 결과 3기 진단이 나온 것이다.

김 교수는 “3기 진단을 받았지만 일반 암환자들이 겪는 충격이나 걱정은 전혀 없었다”며 “3기가 아닌 1기였으면 더 나았을 텐데 라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술이 잘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했다.

의과대학 조교시절 맹장수술을 했던 당시 마취 용량이 과다 투여됐었는지 머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으로 일주일간 병원신세를 지내야 했던 기억 때문이다. 다행히 수술은 고통 없이 무사히 잘 끝났다. 무려 20cm의 대장을 잘라내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것 이외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치질이 다시 생겨서 나타나는 증상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암'이라는 의심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낸 것이 3기까지 키워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대장에 퍼진 종양이 직장에 가깝지 않아 `다행'이었다”며 “직장까지 전이됐었다면 아마도 충격과 실망은 더 컸을 것”이라고 했다.

 

2001년 은퇴기념 건강검진 받은 뒤 대장암 3기 판정에 `혼미'
 아랫배의 통증·혈변 그냥 지나쳤던 무심과 오만이 나은 결과
 편안한 마음과 산책으로 `5년 선고'도 훌쩍 넘기고 건강지켜

 

■5년 생존율로 70까지 살자했던 목표…10년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앞으로 `항암치료'와 `투병생활'을 어떻게 잘 이겨내야 하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수술했으니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라고만 생각했지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김 교수의 생각을 산산조각처럼 깨뜨려 버린건 친구였다.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 기억해. 투병생활하려면 힘들꺼야”

이런 그에게 수술한지 한달 후 찾아간 주치의는 그에게 더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생존율이 5년이라는 말을 건낸 것이다. 김 교수는 “당시 주치의는 내가 의사였기에 때문에 일반 환자들과 달리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 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생존율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었다고 한다. 

그는 조금의 `희망'이라는 것이 생겼다. “그래 5년(?). 5년 살면 되겠다”라고. 당시 그의 나이 65세였다. 그는 항상 할아버지(65세)와 아버지(70세)보다 더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기에 5년이라는 시간이 감사했던 것이다.

 “진수성찬이 앞에 있어도 먹을 수 없으면 아무소용이 없구나“

항암제 치료는 고통스러웠다. 65세라는 나이에 찾아온 암으로 몸이 독한 항암제를 잘 버텨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그는 한달에 한번 병원에 일주일을 입원, 6개월간의 치료를 시작했다.

김 교수는 “당시 나무가 파릇한 5월에 입원했었는데 6개월간 이 고통스러운 치료를 하면 낙엽이 질 때 끝나겠구나라는 현실이 답답했었다”고 했다. 등산과 운동을 좋아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항암치료가 그에게 이런 생각조차 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줬다. 항암치료가 힘든건지 그 때 처음 알았다고 말할 정도니 말이다.

김 교수는 “항암제가 워낙 독하다 보니 입안이 헐고 혀에 백태가 꺼서 항암제 치료를 하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며 “그러다보니 몸은 점점 수척해 갔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자 물만 조금 섭취할 수 있을 뿐 헛구역질 증상까지 나타나 식사가 나와도 한 입도 댈 수 없었다고.

그는 “아무리 돈 많아도 눈 앞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어도 먹을 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구나라는 걸 알았다”며 당시의 고통을 이 말로 대신했다. 그는 일주일간의 항암 치료를 받고 나면 몸의 상태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는 쇠약해져 가는 자신의 몸을 지탱하기 위해 음식을 가리지 않고 생선과 기림기가 적고 위에 소화가 잘 되는 `단백질' 위주의 음식을 챙겨먹었다. 그리고 지금도 가리는 음식 없이 단백질 위주의 식사가 그의 건강 비결이라고 했다.

■걷기운동과 `걱정없어`…`나'를 있게한 `존재'

김 교수는 투병생활을 하는 병원에서부터 걷기 운동을 꾸준히 했다. 평소 걷기와 등산을 좋아했기 때문에 단단하게 단련된 종아리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항암치료를 시작한지 한달 뒤 근육으로 단단했던 다리에 살도 많이 빠지고 근육이 없어진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병원 구석구석을 운동삼아 걸어다녔다”고 했다. 그는 의사생활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병원 전체를 돌아다녀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퇴원을 한 후에는 호수공원을 산책하면서 다리의 힘을 키워나갔다. 그는 지금도 꾸준히 산책을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5년 생존율 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과 달리 5년의 삶을 더 부여받은 그의 삶의 유지 비결은 `조바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올해 4월이 암 진단 받은지 10주년이 됐다”고 했다. 그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조바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갈 때가 되면 가는 것 않니겠냐”며 “지금까지 큰 고통과 어려움 없이 10년을 살았다는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더 살기 위해 아등바등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음식조절을 잘 하고 맘을 편하게 먹으면 나빠지지는 않지 않겠냐”며 웃었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큰 힘을 가져다 준건 주변 지인들이었다. 그는 “주변 지인들이 `대장암 별거 아니다' `대장암 수술 받고도 10년이상 살았다'는 등 위로의 격려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6개월의 추적검사의 두려움…“재발”이란 단어

이런 그도 6개월 한번씩 검진을 받으러 가는 날이면 마음을 조리게 된다고 한다.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로부터 가 “암이 재발해서 왔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순간 나도 잘못되면 어떻하나 하는 두려움이 밀려온 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진을 받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김 교수는 “암 세포는 나이가 많고 몸이 약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사람 누구에게나 발생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홍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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