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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에 환자는 크게 상처받아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에 환자는 크게 상처받아
  • 의사신문
  • 승인 2011.08.2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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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 〈28〉 

유명 인터넷 카페에서 한 아이 엄마가 어떤 병원을 비방하는 글을 올린 것을 보았다. 의사 한 명이 그 병원 전체 이미지를 떨어뜨린다며 구구절절 자세히 쓴 글이라서 관심 있게 글을 읽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글을 올린 사람은 25개월 아이를 둔 아주머니였다. 자신의 집 바닥에 굴러다니던 콩을 아이가 코에다 넣는 바람에 코 흡입기로 콩을 꺼내다가 결국 동네에 있는 유명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고 했다. 아이가 나이에 비해 힘이 세고 코에 손을 대는 것을 워낙 싫어해서 응급실에서 못 꺼내고 결국 7층 이비인후과로 올라가서 진료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비인후과 여자 의사가 아이를 보자마자 “에이 씨!”라고 하며 아이 환자를 반기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 엄마 역시 가족 중에 의사가 있어서 의사의 고충을 이해하고 참았는데 공포에 떨고 있는 아이에게 의사가 “얘, 내가 뭘 했는데 그러니? 좀 조용히 해!”라며 앙칼지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이 엄마에게 “엄마, 애가 이럴 동안 뭐했어요?”라며 훈계하듯 책임을 물었다고 했다. 아이 엄마는 너무 기분이 상해서 “제가 아이한테 콩을 넣은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아기가 알고 일부러 그랬겠어요?”라고 말하였고 그 다음부터 의사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아이에게 수면 유도제를 써서 콩을 빼내긴 했지만 엄마는 너무 속상하여 계속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특히 무서워 떨고 있는 아이에게 의사가 목소리 높이며 소리친 것이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했다. 자세한 상황 설명과 함께 어느 지역에 위치한 어느 종합병원 이비인후과라는 것까지 아주 자세히 작성해놓아서 댓글에는 “아, 그 병원 가면 안 되겠네요.”라는 글이 굉장히 많이 달렸다. 정말 의사 한 명의 행동으로 그 병원 전체의 이미지가 흐려진 것이다.

이제는 환자 한 명이 단순한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은 변했다. 이제는 굳이 시간을 내어 컴퓨터에 앉아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아도 개인 핸드폰으로 자신이 경험한 의사의 이야기, 방문했던 병원에 대한 느낌을 트위터나 개인 블로그, 인터넷 카페 등에 쉽게 올릴 수 있게 되었고 곧 수 만 명의 예비 환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며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욱 심화될 것이다. 우리 병원 응급실에 목에 생선가시가 걸려 찾아 온 환자가 있어 순간적으로 귀찮은 내색을 했다면 혹은 수다스러운 아이 엄마가 찾아와 계속 꼬리 질문을 던져 짜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면 그것은 그 순간 의사와 환자의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의사 입장에서는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짜증나는 환자, 얄미운 환자들이 많을 것이고 열 명 중에 한 명의 환자에게 잘 못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 명의 환자를 한 명으로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대하길 바란다. 최소한 환자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 가능하면 안 하는 게 좋은 말들이라도 기억하고 진료 시 실천해보자.

먼저 `Why?'라는 말을 넣어 질문하는 것은 가능하면 피하자. 이 부분은 필자가 변호사들 교육에서도 굉장히 강조하는 부분이다. “왜 그랬죠?”라는 말은 검사가 피고를 심문할 때를 제외하고는 삼가는 것이 좋다. 이러한 `Why?'형 질문은 상대를 훈계하는 듯한 느낌을 담으면서 이유를 물어 심적인 부담을 갖게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흔히 진료 상황에서 많이 등장하는 `Why?'형 질문들이 “왜 이제야 왔어요?” “왜 안 오셨어요?” “왜 그랬어요?” “왜 시키는 데로 안 하세요?” “왜 말 안 들으세요?”식의 질문이다. 비슷한 질문으로 환자나 보호자를 탓하는 의미가 담긴 “아이가 이렇게 될 때까지 뭐했어요?” “바로 수술 안 받고 그 동안 뭐했어요?” 식의 질문들이 있다. 어쩌면 이미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는 질문이라서 이 글을 보는 의사들 중에는 “그게 뭐 어때서?”라는 의문을 갖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런 질문들이 환자들 입장에서는 의사가 자신을 무시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환자 보호자에게 환자가 이렇게 될 때까지 뭐했냐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 설령 환자 보호자가 의사의 지시대로 환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더라도 보호자를 훈계하며 마치 보호자 때문에 환자가 그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왜 이제야 왔어요·왜 말은 안들으세요'의 why형 질문 삼가해야
상대 훈계하는 느낌 전달돼 오히려 의사에 대한 반감만 생겨나
순간적으로 짜증이 나서 하는 혼잣말도 큰 상처되니 주의 필요

 

그렇다면 어떻게 바꿔 이야기해야 할까? “왜?”라는 질문을 우회적으로 돌려 답변을 얻어내는 것이다. “왜 이제야 오셨어요?” “왜 안 오셨어요?”식으로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더 일찍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 동안 병원에 나오시기 힘드셨나 봐요?” “그 때 많이 바쁘셨나 봐요?”식으로 우회적으로 질문하면 환자는 “네. 회사 일이 너무 바쁜데다 평소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약 먹으면 금방 나을 줄 알고 있다가 너무 늦게 병원에 오게 되었네요.”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의사가 “왜 이제야 오셨어요?”라고 묻지 않아도 환자는 스스로 일찍 오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면 의사가 환자를 탓하고 훈계하는 것은 반감만 갖게 할 뿐 결과적으로 득이 될 것이 없다. 오히려 환자에게 라포를 형성하고 깊은 신뢰를 주어 환자가 앞으로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는 `진정한 명의는 환자 차트를 보기 전에 인간을 본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진정 진료를 잘 보기 위해서는 환자라는 인간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아무리 급박한 환자일지라도 환자에게 자꾸 “왜 그랬어요?”식으로 이야기하며 코너로 몰면 환자는 심적인 불안함을 넘어 의사에게 반감을 갖게 된다.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 때문에 무의식중에 던진 질문일지라도 환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젠가 한 미혼 여성이 의료 클레임을 제기할 수 있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묻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내용은 이렇다. 물혹 때문에 대학병원 산부인과에 갔는데 의사가 진료 중에 모멸감이 드는 말을 자꾸 한다는 것이다. 물혹 말고 어떤 성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병원에 갈 때 마다 “이런 거 치료하다가 나까지 전염될 수 있어. 개인병원가면 치료도 안 해줘.”라며 정확한 진단명도 이야기해주지 않고 모멸감이 드는 이야기를 하다가 3번째 갔을 때 어떻게 걸리는 거냐고 묻자 “내가 24시간 따라다닌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알아?”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여성은 안 그래도 미혼 여성으로서 정신적인 충격이 큰데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내 돈 내고 치료 받는데 이런 발언은 너무 심하지 않느냐며 클레임 제기 방법을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필자에게 교육받은 한 여성 법조인은 피부과에 상담을 받으러 갔는데 의사가 그녀의 피부를 보자마다 “아휴, 피부가 너무 좋지 않네요. 암으로 말하면 지금 환자 분 피부 상태는 암 말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 동안 치료 좀 받으시지 왜 이제야 오셨어요?”라며 찌푸린 얼굴로 한 숨을 내쉬었다고 했다. 필자가 의사들을 교육하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어떻게 의사가 환자에게 피부 상태를 말기 암에 비유할 수 있느냐며 흥분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언어폭력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환자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 모멸감이 들게 하는 말들이 바로 언어폭력이에요.”라고. 그렇다. 언젠가 이야기했지만 의사의 말은 그 아무리 사소한 말일지라도 그냥 듣고 넘기기에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 그만큼 말의 힘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신중해야 하며 쉽게 뱉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흔히 말의 중요성 곧 말을 신중히 해야 함을 강조하며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일반인보다 몇 배로 말의 힘을 가진 의사들이야말로 진료 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이다.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는 `너와 나의 의미공유'는 크게 언어와 비언어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언어 사용과 함께 표정이나 시선 처리, 제스처 등 비언어도 환자에게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침묵하고 있지만 표정에서 환자나 보호자를 탓하는 의미를 담는다거나 무시하는 눈빛을 보낸다면 그야말로 환자들은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또한 언어에 포함될 수 있는 부 언어 곧 목소리나 말의 뉘앙스, 말투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환자가 식이요법을 못해 상태가 나빠졌다고 “참 잘∼∼하셨어요.”라며 반어적 표현을 쓰며 무시하는 뉘앙스로 이야기한다면 환자는 자신을 반성하기 보다는 의사의 태도를 기분 나빠할 확률이 크다. 또한 “에이” “이씨” “아휴” 등 순간적으로 짜증이 나서 혼잣말로 하는 이야기들 역시 환자에게는 잊지 못할 말들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좀 더 주의하자.

커뮤니케이션은 연습이다. 특히 언어 사용은 조금만 노력하면 변화된다.  이번 한 주는 환자를 훈계하거나 탓하는 “Why?”형 질문 대신 환자를 배려하는 소통 기법을 사용하길 바란다.

이혜범(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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