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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소송 등 위기상황 대비는 꼼꼼한 문진부터 
의료소송 등 위기상황 대비는 꼼꼼한 문진부터 
  • 의사신문
  • 승인 2011.08.1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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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 〈27〉 

■위기관리 전략
며칠 전 여러 언론 매체에서 단순 복통으로 동네의원에서 진료를 받던 30대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유가족들이 이에 반발하며 관을 병원에 들여놓은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농성 장면이 담긴 사진과 구체적인 내용을 기사화했다. 다음은 실제 보도되었던 온라인 신문 기사다.

29일 전북 정읍 시기동 모 의원에서 숨진 이모(35)씨 유가족 5명이 오전 의료사고와 해당 의원 원장의 무책임한 진료 태도를 지적하며 시체를 넣는 관을 놓고 명백한 원인규명과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이씨가 지난 6월 24일 점심을 먹고 복통을 일으켜 해당 의원을 찾아 진료를 받은 후 링겔 주사를 맞던 중 1시간 남짓 사이에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1급 해양기사로 15년 경력이 있는 고인은 지난 18일 3개월간 예정으로 휴가를 보내고 당일 점심을 먹은 후 의원에서 진료를 받다 사고를 당했다.

경찰은 고인의 사체를 지난달 27일 전남 장성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결과 사인은 심근경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당시 해당병원에서 간단한 진료와 신장 및 2회에 걸친 심전도 검사를 실시한 결과 단순 복통이란 소견과 함께 처방전을 받았다. 유가족들이 빈 관을 놓고 병원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데는 원장의 진료태도와 진료 자격 없는 간호조무사의 진료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들은 이씨가 사망한 시간에 진료 책임자인 원장이 외출한 상태였고, 무자격 간호조무사를 시켜 주사를 놓게 했다는 것이다. 고인의 형인 이동렬(40)씨는 “의사가 심한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놓고 조무사에게 대신 진료하게 하고 병원을 떠나 있었던 것도 모자라 사후 응급처치도 소홀히 한 것을 알고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 의원 원장은 “신경외과 원장에게 업무를 맡기고 잠깐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해 유가족에 할 말은 없지만 일방적 의료과실로 몰아가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며 “조무사들도 학원에서 배웠기 때문에 주사를 놓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유가족들은 “동생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치 않도록 사고원인을 규명하는 등 끝까지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시스. 2011. 6.28 기사)

인터넷에 이 기사가 나오고 많은 댓글이 달리며 이런 저런 의견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의사들이 올린 글도 많았다. “협심증, 심근경색은 초기나 무증상 시에 심전도로 안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요. 왜냐면 환자가 통증을 느끼는 몇 초의 짧은 시간에만 이상이 발견되므로 통증이 없는 대다수의 시간동안에 백번 검사해도 대다수 정상으로 나옵니다. 따라서 실제 병원에서 심전도만으로 협심증, 심근경색 진단해 낼 수 있는 경우는 10퍼센트도 안 될 겁니다. 한마디로 하나마나 한 검사란 거죠. 심혈관 조영술, 운동부하 검사, 심초음파 이외엔 나머진 그냥 한번 해보자는 것뿐이랍니다. 개인의원에선 할 수 없는 검사입니다. 비용도 비용이고 위험부담도 감수해야 하는 검사거든요” 식으로 의학적으로 설명해준다거나 “같은 의사가 보기에도 최선을 다한 진단 및 치료네요. 특히 심전도를 2번이나 찍어서 심근경색을 배제하고, 그 후 복통에 관한 수액 치료 및 주사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유족들이 아무리 억울하다고 억지 주장을 해봤자, 저 문제는 분명히 유족이 패소하게 되어 있습니다. 의사 입장에서도 합의금 따위를 줄 이유도 없고요. 의료지식이 없는 유족이 단순히 억울함만으로 바지 가랭이를 붙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안타깝군요”식으로 상황을 이해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의사가 진료에 최선을 다했다면 문제 발생시 보호자들도 이해
의료소송까지 가는 경우는 의사 진료태도·설명부재가 주원인
사고발생시엔 인간적 조의와 제3의 전문가 입장 제시 효과적

 

특히 그래도 예전과 달라졌다고 느낀 점은 의사가 아닌 일반인들 중에도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에 대해 지식이 있거나 비슷한 질병을 지닌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유가족들의 슬픈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이번 경우는 의사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심장 관련 질병은 큰 병원에 가도 쉽게 알기 힘들다고 해요”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과거에 비해 분명 전반적인 국민들의 의학 지식이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는 아직도 “간호조무사가 왜 주사를 놔요? 불법 아니에요?”부터 “그렇게 아픈 중환자를 놔두고 원장이 자리를 비우는 게 말이나 되나요? 이건 분명한 의료 과실이에요” “심장이 안 좋은 환자에게 링겔주사를 놓다니 의사가 오진한 거 맞네요”식으로 자신의 눈높이에서 판단하고는 의사가 잘못한 것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사실 이러한 일들은 공식적으로 보도가 안 되었을 뿐이지 의료 현장에서 비일비재하다. 특히 유명 종합병원의 경우는 그래도 기본 위기관리 전략을 두고 있고 병원의 유명세로 인해 위기 이후 타격이 덜하지만 동네 개인 병원은 이런 일이 한 번 터지면 회생이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일단 이러한 위기를 맞지 않게 사전에 철저히 조심해야 하며 불가피하게 위기가 발생했다면 신속히 대처하고 관리하여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먼저 앞서 사망한 환자처럼 비전형적인 심근경색 같은 경우는 개인 병원에서는 알아내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문진이나 신체검사를 더욱 꼼꼼히 하는 것이 결국 위기를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이 된다. 열 명의 환자 중 아홉 명이 A라도 단 한 명은 A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진료에 좀 더 공을 들이자. 일반적으로 알기 힘든 증상일지라도 “평소에 가슴 통증이 있었습니까?” “평소에 담배를 많이 피십니까?”식으로 흉통 여부나 흡연 유무, 심혈관계 질환 위험요소를 정확히 파악하여 예리하게 짚어나가다 보면 자칫 놓쳐버릴 수 있는 중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또 의사가 꼼꼼하게 성심 성의껏 진료를 보면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도 의사가 진료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추후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불가피한 것임을 이해할 확률이 높다. 실제 의료 소송까지 가는 환자들은 의사의 진료 태도나 설명 부재 등으로 인간적인 섭섭함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에 그러한 것이 쌓이다가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게 되면 한꺼번에 폭발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환자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꼼꼼한 문진을 통한 신뢰를 주길 바란다. 다음으로 개인 병원에 위중한 환자가 오거나 이미 입원 중인 환자가 급격히 상태가 좋지 않게 되었다면 바로 큰 병원에 보낼 것을 권한다.

다음으로 정규 진료 시간에는 가능하면 의사가 병원을 지킬 것을 권한다. 특히 환자가 지금 당장 아픔을 호소하는 경우라면 환자의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는 담당 의사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위기가 이미 발생된 상황이라면 더 이상 문제가 확대되지 않게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 의료 소송이 걸리거나 매스컴에 보도되어 이미 소문이 퍼진 뒤에는 설사 소송에서 이긴다거나 일이 해결된다고 해도 실추된 병원 이미지를 되돌리기 힘들다. 그러므로 보호자들에게 인간적으로 조의와 공감을 표하면서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공신력 있는 제3의 의료 전문가 입장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 다음 병원 측의 입장을 분명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무조건 책임을 회피하는 자세나 사안을 숨기려는 자세는 금물이다.

2007년 3월, 일본 고치공항에서 ANA항공 여객기가 동체 착륙을 한 사건이 있었다. 기장은 앞바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이 사실을 승객들에게 알렸다. 승객들은 동요했지만 이런 상황에 익숙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기장의 안내 방송을 듣고 안심한다. 기장은 공항 상공을 선회하면서 항공유를 버린 다음 활주로에 진입, 앞바퀴가 나오도록 시도한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두 번째 안내 방송이 나오자 승객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그러나 기장은 침착하게 승객들을 안심시킨다. 바퀴가 나오지 않아 동체로 착륙을 하겠지만 항공유를 모두 버렸으니 사고가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다시 활주로에 진입하면서 기장은 동체가 활주로에 부딪히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카운트 다운한다. 뒷바퀴가 먼저 닿은 뒤 머리 부분을 처박은 채 속도를 줄인 항공기가 완전히 멈춰 서자 승객들은 일제히 환호의 박수를 친다. 이 사건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모범 사례로 많이 이야기 된다. 기장은 침착하게 항공유를 버리고 비상 착륙을 시도하면서 이 사실을 승객들에게 알려 불필요한 동요를 막았다. 1차 시도에 실패한 사실도 그대로 알렸고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도록 마음의 준비를 시켰다.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 승객들과 기장 사이에는 탄탄한 신뢰 관계가 구축됐다.

위기 대처에는 정답은 없다.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방식, 실행만이 있다. 중요한 것은 또 다시 유사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더 나은 방식으로 위기를 잘 관리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병원 위기 대처 기본 매뉴얼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이혜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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