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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다
겨울바다
  • 의사신문
  • 승인 2009.03.3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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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균<성북 이정균내과의원장>

▲ 이정균 원장
겨울여행은 테마여행이다. 순백의 세상 눈꽃여행, 설원질주 스키여행, 한해를 마무리 하고 내년을 기약하는 일몰일출여행 그리고 겨울바다 여행이 있다.

한여름 인파에 시달리고 이제야 겨우 한숨 돌리며 숨고르기하고 있는 겨울바다는 청승맞은 느낌, 실연의 아픔, 그래서 한없이 쓸쓸하다, 표현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니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란다. 겨울바다 그곳은 더 이상 외로움이나 쓸쓸함의 대명사가 아니다. 생기발랄하고 활기 넘치는 삶의 현장이 겨울바다다. 겨울바다에서는 좋지 않은 기억일랑 훌훌 털어버리고 좋은 추억만을 가슴 가득히 품고 돌아올 수 있는 건강한 바다로 자리 잡고 있지 않는가.

겨울 바닷가 갈매기는 나그네의 방문을 반겨준다. 운치를 더해준다. 김남조 시인의 `겨울바다' 시 속에는 바다가 가르쳐 주는 것은 `시간'이라고 읊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고속도로가 발달해 동해 겨울바다가 더 가까워졌다.

서울 - 강릉 고속도로 3시간, 새벽을 달려 주문진항의 바다냄새로 동이 튼다. 새벽만선 오징어잡이배, 뱃전오징어 흥정에 갈매기도 한몫 끼어든다. 만원어치 펄펄뛰는 오징어, 방파제 회파티, 5000원이면 고추, 마늘, 양념 그리고 상추, 겨울바다는 푸짐하다.

광어, 우럭, 얼룩말 같은 돌돔, 보기에 생소한 물메기, 수족관 눈요기도 솔솔하다.

오징어 회치는 아주머니들의 회 뜨는 솜씨는 이제 볼 수 없어졌다. 회도 이젠 자동기계 몫이 되었으니….

해뜨는 동해바다. 겨울바다에 정갈하게 얼굴을 씻고 바다너머 저쪽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는 찰나는 종교의식이다.

해가 떠오르기 한 시간 전부터 바다는 정갈하게 해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 검은바다는 파도를 잠재우고 푸른빛으로 변하다.

해가 얼굴을 내밀기 30분 전, 해뜨는 동쪽 끝으로부터 홍조를 띄기 시작하면 해맞이 나그네들은 가슴이 설렌다. 밤을 밝혀 만선의 깃발을 휘날리는 고깃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포구를 찾아 들어올 때가 되면 검붉은 태양은 항구 너머로 떠오른다.

우리나라 땅 등줄기 백두대간 따라 남북 길게 이어 달리는 국도 7호선은 강원도 고성군 ∼ 강릉 ∼ 삼척 ∼ 영덕 ∼ 포항 ∼ 울산 ∼ 부산까지 우리 동해안의 대표적 드라이브 코스다.

해안절벽을 끼고 도는 풍광 뛰어난 곳, 해안선 따라 모래해변을 뚫고 솟은 갯바위, 밀려오는 파도에 온몸을 맡기고 태고적부터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곳에서는 흰 파도와 시커먼 갯바위의 흑과 백이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나그네 마음을 사로잡는다. 파도가 갯바위를 부딪치며 흰포말을 날리는 겨울바다. 그 역동적 모습은 여름철과는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다시 해안 길 따라 돌다보면 절경에 마음 빼앗긴다. 검은 바위, 짙은 옥색물감 뚝뚝 떨어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백두대간을 넘어온 북풍이 귓불을 때린다.

바다의 슬픈 전설 바다가 삼킨 처녀의 한풀이일까? 파도의 굉음과 함께 해안에 밀려온다.

갯벌은 다시 하얀포말로 뒤덮힌다. 4∼5m 파도가 산처럼 밀어닥친다.

포효하는 파도소리 갯바위에 걸터앉아 넋 잃고 신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답답한 가슴은 뻥 뚫린다. 시원해진다.

겨울바다는 더 이상 `철지난 바닷가'가 아니다. 여름철 작열하는 태양 속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여름보다 더 역동적이며, 삶의 의미가 대자연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으니 겨울철 최고의 여행지는 겨울 바다가 아니겠는가.

동해 바닷가에 서있으면 검은 물빛에 마음은 찡해진다. 아름다운 동해안, 가장 아름다운 겨울바다, 양양바다. 강원도 양양 하조대엔 드넓은 갈대밭, 길다란 모래사장, 뾰죽한 기암괴석, 하얀등대, 그리고 바닷가 곳곳엔 해변정취가 녹아있는 곳이다.

추운겨울 바다는 뭍이 그리워, 밤새 몸살을 앓는다 했다. 가슴앓이 몸살은 잠시도 숨을 죽이지 못하고 들썩거리며 파도를 일으키고, 쉼 없이 뭍으로 몰려와 하얗게 부서진다 했으니… 겨울바다는, 바다가 토해내는 신음소리와 가슴앓이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고…

수 만평 광활한 갈대숲은 바람에 춤추는 모습에 바다를 연상하나 그 높낮이 뚜렷한 파도, 그 드넓은 갈대밭 갈대도 안타까움에 덩달아 가슴앓이를 앓는다고 노래했으니… 그런 바다앞에 서서 사람이 봄가을을 타듯이 바다는 겨울을 타지 않고 배기겠느냐고…

조선초기의 공신 하륜과 조준이 은둔 생활하던 곳, 하조대. 비바람에 깎이고 씻긴 `하조대'의 역사를 아로새기며 바람에 밀려 몸살 앓는 거센 파도, 흰포말을 보면서 겨울바다의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한다. 세속에 찌든 마음, 하조대 겨울바다에 씻어버린다.

이정균<성북 이정균내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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