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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정신의학을 개척한 교육자 - 명주완
신경정신의학을 개척한 교육자 - 명주완
  • 의사신문
  • 승인 2011.08.1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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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료 사회적 인식 제고·보건 의료정책 정립

명주완(明柱完)
일성(一惺) 명주완(明柱完)은 190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제1고보를 졸업하고 경성의학전문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에 진학하였다.

1930년 졸업 후 모교 약리학교실에 들어가 연구하다가 1934년부터 신경·정신과교실로 자리를 옮겨 줄곧 그곳을 지켰다.

1935년 경부터 당시 정신병의 새로운 치료로 개발된 독일의학자 자켈(Sakel)의 인슐린 혼수요법을 임상에 처음 도입하였는데 이 업적은 일본정신병원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1938년 선생은 교토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같은 시기에 성북병원(城北病院)을 개설하고 정신과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하였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그해 9월 조선정신신경학회(회장·심호섭)의 부회장으로 동 학회의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는데 1950년에서 1961년까지 대한 신경정신의학회 회장직을 맡아 학회를 이끌었다.

1945년 경성대학 의학부 교수로, 이듬해 국립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정신과교실의 초대 주임교수로 임명됨과 동시에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초대 부속병원장(제1병원)을 맡아 병원과 교실, 그리고 우리나라 신경정신의학계의 재건에 힘썼다.

1949년 국립대학교안 반대 사건과 관련된 문제로 서울의대 부속병원장 및 교수직을 사퇴하였다. 1951년에는 부산에 피난중인 서울대의대 외래교수로 봉사했다. 1950년 군에 입대, 소령에 임관되고 군 정신의학영역을 개척하는데 힘썼다.

1952년 중령으로 승진하고 미국 워싱턴에 있는 월터리드육군병원에 6개월간 신경학과정 견학차 파견된 바 있다.

1956년 군에서 예편된 그 해에 다시 서울의대 신경정신과 주임교수로 복직되었고, 의과대학 학장직을 1960년까지 맡았으며 1959년에는 당시 신설된 보건대학원장을 겸임하였는데 1962년 사임하기까지 부속병원 구조의 개혁, 의학교육의 여러 획기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WHO 초청으로 예방의학 회의 참석, ICA초청으로 미국 저명 의대병원 시찰, 미네소타대 의대의 의학교육행정 시찰, 한국 마약환자 교화협회장직의 수행 등, 선생의 진취적인 비젼은 임상정신의학 분야에 국한하지 않았다.

1964년 서울특별시 의사회장에 선임되었으며 대한의학협회 제 18대(1966∼68)와 19대(1968∼70)회장을 역임하면서 의권옹호와 올바른 의료정책의 정립을 위해 앞장섰다.

또한 대한의정회창립(1969)지원, 아시아대양주의학협회연맹(CMAAO)총회의 서울 유치 및 시마오 서울총회 대회장으로 큰 활약을 하였다.

1959년 세계보건일에 보건부장관의 포상을 받았고, 미국 미네소타대학 이사회에서 감사장을 받는 등 보건의료 및 교육에 끼친 공헌으로 그 뒤에도 여러 곳에서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1970년 선생은 조선의대 교수로 부임하였고, 1971년 개원된 조선대의대 부속병원의 초대 병원장으로 1973년까지 몸을 돌보지 않고 봉직하였다. 1977년 선생은 숙환으로 유명을 달리하였다.

논문지도 등 후학을 가르침에 매우 치밀하고 철저하면서도 자상한 교육자였던 선생은 의학교육과 병원행정, 의료계에 끼친 영향이 실로 다양하고도 광범위하지만 무엇보다도 독일계 기술정신의학의 처음이자 마지막 계승자이며 우리나라 신경정신의학 분야 발전의 기틀을 다진 교육자, 임상가이며 행정가로서 정신의료의 사회적 인식을 넓히는데 기여한 바가 매우 크다.

집필 : 이부영(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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