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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이야기 - 차의 제조 품질 <하>
벤츠 이야기 - 차의 제조 품질 <하>
  • 의사신문
  • 승인 2011.08.1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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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 부품 노후화 등 세월 앞에선 명차도 한계

위의 세 차종은 당시의 기술로서는 분명히 오버 엔지니어링에 속했다. 쉽게 말하자면 이만큼 잘 만들었으니 사지 않을 수가 없다는 접근이다. 예전에 엄청 비싼 값을 주고 산 라이카 카메라를 오래 쓰는 것처럼 그리고 고장이 나지 않고 잘 찍히는 것과 비슷하다. 라이카 카메라는 필름을 잘 쓰지 않는 요즘에도 고가에 거래되는 콜렉터 아이템이다.

아직도 세 가지 차종이 많이 굴러다닐 정도로(이 차종들의 공통점은 사각형의 헤드라이트가 붙어있는 디자인이다) 내구성이 우수하고 결정적인 고장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안전성도 좋았고 운전성능도 좋았다. 그러나 사소한 문제와 예상치 못한 고장들은 계속 일어났다. 그렇게 꼼꼼하게 만들어도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도 있고 당시 재료와 기술의 한계가 있었다. 잘 만든 차의 딜레마로 사소한 고장이 나도 부품과 수리비는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필자는 W124 모델을 제일 선호하기 때문에 이 모델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단종된 지 16년이 되는 요즘도 이 차의 동호회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이차를 유지하는 매니아들을 보면 새 차나 적당한 중고를 사는 편이 더 쌀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차체의 베이스가 약하다면 진작 포기했을 사람이 많겠지만 워낙 튼튼하게 만들어지고 전반적인 부품의 만듦새가 훌륭한 편이다. 차의 built quailty가 좋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차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얼마전 BBC 톱기어에서는 W124 built quailty라는 제목의 코믹한 프로를 만든 적이 있는데 요즘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W124 built quailty'라고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코믹한 프로니 내용이 현실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분명히 튼튼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사실 요즘도 W124를 보고 있으면 놀랍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20년이 되고 주행거리가 많아도 가죽 시트가 내려앉거나 찢어진 차들이 별로 없다. 만들 당시 높은 제조 기준에 따랐기 때문인데 가죽의 처리도 좋고 내부에도 시트가 내려 않지 않도록 여러 가지 조치를 해놓았다. 폐차를 하면서도 폐기하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용한 페인트도 내구성이 좋아서 20년차에 접근해도 아직 제 칠을 유지하는 차량들도 많다. 물론 이런 내구성은 비싼 제조비를 통해서 얻은 것이다. 비싸게 만들다보니 20년이 다 되어도 말짱하게 보이며 매니아들을 홀린다.(하지만 일반인들은 아니다. 20년 정도 같은 차를 타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결정적인 부품들은 대부분 온전하다. 엔진이나 변속기도 멀쩡한 것들이 많다. 외국에는 엔진이 100만 킬로에 근접하는 차량들도 흔하다. 별문제 없이 20년을 멀쩡하게 타고 다닐 수 있는 안전한 차는 분명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소모성 부품들은 언제나 수리를 기다리고 있고 중요한 부품들도 점검을 기다린다. 언젠가는 망가진다. 하지만 통계는 다른 차보다 고장률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분명히 꼼꼼하게 만든 차의 강점이고 사람들이 벤츠에 대해 바라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소소한 것들이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엔진의 배선 문제는 유명했다. 엔진의 배선이 세월이 지나면 열을 많이 받는 부분에서 지속적으로 빠른 열화를 보이고 커넥터들도 말썽을 일으켰다. 차를 유지하자면 100만원 전후의 배선을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억울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비용을 감수 못하면 E클래스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구조적인 문제였다고 한다)

엔진은 그다지 성능이 좋지 않았으나 잘 고장이 나지는 않았다. 진공으로 자동변속기와 도어록을 조절하는 방식은 진공압이 새거나 펌프가 망가지면 잡기 어려운 문제를 일으켰고 문제는 반복되곤 했다. 이와 비슷한 문제들의 리스트가 존재한다. 이 리스트는 그다지 길지 않았다. 고질적인 문제와 구조적인 문제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오래 타도 문제가 없으려면 잘 만들어야 하지만 높은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문제들은 반드시 일어난다. 타협과 절충이 있어야 하고 벤츠는 메이커보다 너무 비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배웠다. 전설적인 명품차를 만들었지만 명품 옷과 마찬가지로 너무 오래 입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옷도 솔기가 헤어지고 망가지며 사람들은 이때까지 기다리지도 않는다.

필자는 가끔 생각한다. 사람들이 비싼 차를 타면서 기대하는 주행거리와 기간은 얼마정도일까를. 살 때는 비싸게 샀고 타는 동안은 별 고장이 없지만 나중에는 포기하게 되는 시점이 언제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소나타는 몇 년 지나면 별 미련이 없어지지만 그 두 배가 되면 조금 아깝게 되고 4∼5배가 되면 바꾸는 것은 큰 부담이 된다. 하지만 언젠가는 바꾸게 된다.

현실적인 프리미엄 차들은 소나타나 그랜저의 3배 정도 가격이다. 이 차들의 제조품질이 어느 정도인가를 수치적으로 나타내는 기준은 없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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