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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료제민과 인술보국을 실천한 - 유석창
구료제민과 인술보국을 실천한 - 유석창
  • 의사신문
  • 승인 2011.07.2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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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병원 설립자로 민족 복지증진에 헌신 

유석창(劉錫昶)
상허(常虛) 유석창(劉錫昶)은 1900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한의사이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투철한 애국자인 부친 유승균과 모친 홍숙경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잃자 독립운동에 투신한 부친을 따라 만주로 이주한 그는 그 곳에서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내면서 만주 장백에 있는 정몽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모교의 초등과 교사로 부임하는 한편 소년광복대장과 남만주 군비단 참모로 활약하여 소년시절부터 `국가와 민족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실천하여 왔다.

선생은 경성의학전문학교(1924∼1928)를 졸업하고 함경남도 장진의 공의 생활과 함경북도 성진에서 경험한 제동병원(濟東病院)의 의사 생활 이후에 구료제민과 인술보국의 큰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1931년 종로 2가 67번지에 사회영(社會營) 중앙실비진료원을 개설하였다. 이 진료원은 이후 종로 2가 13번지로 이전되었고 사회영 민중의원(1934년)으로 개칭되었다.

선생은 사회영 민중의원을 운영하면서 1937년부터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에서 연구를 시작하여 1945년에 `췌장(膵臟) 랑겔한스씨 섬에 관한 발생학적 지견보유(知見補遺)'의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49년에는 `가난한 서민들을 위한 구료사업에 전념할 각오'로 사회영 민중의원을 사단법인 민중병원으로 변경하였는데 이 사단법인 민중병원이 건국대학교병원의 모태가 되었다.

선생은 선진 복지 문화국가 건설의 새로운 주역이 될 선도적 인재를 양성하고자 1946년에 조선정치학관을 설립하였는데, 1956년에 대학 본부가 낙원동에서 현 위치로 이전되고 새 캠퍼스가 조성되는 과정에서 사단법인 민중병원은 1958년에 화양동 97번지 부지에 제1병동이, 이듬해에는 제2병동이 완공되었다. 1959년에 건국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 인가 승인을 받고 선생이 초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선생은 1971년에 건국대학교의 부지인 화양동 27번지의 2(현 1번지)에 당시로서는 현대식 시설을 갖춘 새 민중병원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하고 당초 1931년에 개설한 사회영 중앙실비진료원에서 시작한 구료제민을 위한 실비병원으로서의 운영 형태를 계속하였다.

평생을 국가 발전과 민족의 복지증진에 헌신하였고, 만년에는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농촌 혁명운동에 여생의 마지막 정력을 쏟았던, 건국대학교와 건국대학교병원 설립자 유석창은 성신의의 교시와 구료제민의 정신을 유산으로 남기고 1972년 72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소년시절부터 국가와 민족에 남다른 사랑을 실천하였던 유석창은 구료제민과 인술보국의 큰 뜻을 실현하고 가난한 서민들을 위한 구료사업에 전념할 각오로 건국대학교병원의 모태가 되는 민중병원을 설립하는 한편, 선진 복지문화국가 건설의 새로운 주역이 될 선도적 인재를 양성하고자 건국대학교의 모태가 되는 조선정치학관을 설립했다. 또, 만년에는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농촌 혁명운동에 여생의 마지막 정력을 쏟았던 바, 평생을 국가 발전과 민족의 복지증진에 헌신한 민족의 선각자이었다.

집필 : 안규중(건국의대 피부과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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