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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외과학을 개척한 교육행정가 - 고병간
흉부외과학을 개척한 교육행정가 - 고병간
  • 의사신문
  • 승인 2011.07.1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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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폐절제술 시행…경북대 총장·결핵협회장 역임

고병간(高秉幹)
고병간(高秉幹)은 1899년부터 1966년까지 생존하였던 흉부외과학의 개척자였으며 대학교육행정가였다. 아호는 영서(瀛西)이다.

의주에서 태어나 신영소학교를 마치고 선천에 있는 신성중학교에 진학하였다.

1919년 3·1독립 운동 때는 중학생의 몸으로 평양형무소에서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그때가 그의 나이 20세였다.

1921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해서 1925년에 졸업하였다. 그때 세브란스 외과학교실의 러들로 교수 밑에서 2년간 수련을 마친 후 1927년 함흥에 있는 기독교계 병원인 제혜병원 외과 과장으로 부임했다.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교토대학의학부에서 흉부외과를 전공하고자 3년간 연구에 몰두한 보람으로 인체 내 항체발생에 대한 연구로 1940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

그보다 앞서 1937년 4월에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인 오긍선의 권유로 모교인 세브란스의전 외과교수로 취임하였다.

1945년 광복의 기쁨을 맞았으며 그해 대구의과대학 학장으로 발탁되었다. 1949년부터는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장을 역임하였으며 한편 그는 흉부외과의로서 늘 염원하던 폐엽절제수술을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1950년 국립경북대학교 추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피선되었고, 1951년에는 대구의과대학 학장을 사임하고 문교부 차관으로 발탁되었다.

1952년 국립경북대학교를 국립종합대학으로 정식 인가받아 초대총장에 취임하였다. 1955년에 제2대 결핵협회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는 1947년 8월 포르투갈에서 열렸던 국제암학회에 윤일선과 같이 참석하고 귀국길에 미국에 들려 그곳 의학계를 둘러보던 중 미국 흉곽외과계의 눈부신 발전상에 놀랐고 이것을 계기로 귀국 후에는 폐절제술에서 첫 수술 케이스의 공적을 낳았다.

1954년에는 결핵퇴치사업 공로자로 표창을 받았으며 1958년에는 경북 향토문화상을 수상했다. 1960년에는 연세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여 다음해 9월까지 재직했다. 그는 총장 사임 후 세브란스병원장이 되어 학생지도에 헌신했고 1964년에는 숭실대학장으로 옮겼다.

그의 사망 이듬해인 1967년 경북대학교 개교기념일을 기해 경상북도 유지들에 의하여 그의 흉상이 경북대학교 본부 정원에 세워졌다.

집필 : 정태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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