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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전쟁 6.25 그리고 나의 아버지
사랑과 전쟁 6.25 그리고 나의 아버지
  • 의사신문
  • 승인 2011.07.1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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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여자의사회 무임소이사>

박선옥 이사
  ■사랑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퇴근 길 아이돌 가수의 경쾌한 노래 가사는 건배사 `사랑은 뜨겁게, 지구는 차갑게'와 많이 닮았다. 그렇다면 `사랑의 열병' 진단을 위해서는 Heart의 온도가 얼마 이상이어야 할까? 온도 대신 무게를 측정하는 최신 진단법도 있는가 보다.

Q) 사랑에 빠진 사람의 Heart 무게는?
  구글은 성인 남녀 심장의 무게를 200g(여성)-300g(남성)이라고 적는다. 사랑에 빠지면 Heart에 어떤 변화가 올까?

  A) `포근' 이란다. 최근 종영된 인기드라마 `최고의 사랑'을 훔쳐보면 곧 정답이 나온다. 전쟁같은 사랑으로 결혼에 이른 행복한 Heart의 무게는 두근두근해서 네(four)근이란다. 그러나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 쵸쵸상의 Heart는 아마도 `천근만근' 이상이었으리라.

  ■6.25
22년 전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는 평남 용강군 출생으로 1.4후퇴 때 단신으로 월남하셨다. 말년에는 당시 막 시작되었던 이산가족 찾기 TV방송을 무척이나 열심히 챙겨 보시며 그리움과 안타까움에 눈시울을 적시곤 하셨다. 금강산 관광이나 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한 상호방문을 전혀 예측할 수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아버지는 6.25를 도발한 공산당을 매우 증오하셨다. 지금 살아 계신다면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 사건에 다시 한 번 크게 분노하셨을 것이 너무도 분명한데….

강남역 사거리 대형 전광판에서 `6월은 호국 보훈의 달' 이라며 번쩍거린다. 6.25 61주년.
전쟁동이 지인들께서 작년에 회갑이었으니 6.25의 나이는 이제 만 61세가 맞는가보다.

어린 시절 남편은 해마다 6월25일이 돌아오면 전쟁이 다시 일어나는 줄 알고 두려움에 떨었다고 부끄러워한다. 반면 친정아버지의 6.25 Phobia는 조금 더 심각했다. 30년 지병이었던 천식 발작이 6.25와 함께 심해졌다가 8.15 광복절을 지나야 수그러들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아버지는 6.25와 몹시 나쁜 인연이었나 보다. 여름 밤이면 종종 기침과 호흡곤란 때문에 베개를 끌어안고 앉아 밤새우던 아버지를 바라보던 나는 유독 소아천식 환아들에게 더 깊은 연민의 정을 갖게 된다.

  ■1982년 7월1일
29년 전 나와 남편은 Y.W.C.A 강당에서 결혼을 했다. 나는 모교 병원 소아과 전공의 2년차로 신생아 중환자실 주치의였던 터라 결혼 휴가 겸 여름휴가로 1주일 비우기도 눈치 보이던 시절이었다. 대학 동기인 남편은 광주 신검군의관으로 제대를 앞두고 있었으니 박 레지(던트)와 오중위의 결혼이라고나 할까.

여자의사는 남자의사와 결혼하면 잘한 것인데 그것도 영계 동기생과 결혼했으니 나는 최고의 배우자를 만난 셈이고, 남자의사의 배우자로 여자의사는 별로인데 더구나 동갑나기 여의사와 결혼한 나의 남편은 최악의 선택이라나?

  ■2011년 6월25일, (D-6) 문화행사
유난히 장마가 이른 올해. 한반도에 `메아리' 친 태풍의 횡포로 6.25가 더욱 축축하다. 이 와중에도 사랑하는 젊은 남녀는 도저히 결혼식을 미룰 수가 없단다. 남편과 함께 하객으로 참석해야 할 결혼식이 연달은 바쁜 주말이다. 게다가 결혼기념 문화행사까지 겹쳐있다.

남편의 주특기인 lip-service는 벌써부터 결혼기념일 D-6을 외쳐대기 시작한다. 막상 7월1일 결혼기념일 당일, 큰 선물을 받았던 기억은 별로 없고 앞뒤로 수일간 날짜만 세기 마련이다. 결혼기념일 뿐 아니라 생일도 비슷했던 것 같다. 남편은 `이틀 전이야, 하루 남았다, 오늘이구만, 어제였지, 그제…' 은근슬쩍 넘어간다. 사람 좋아하는 남편은 공사다망한 탓에 이런 기념일에도 다른 약속을 잡아 놓기 십상이다. 그 모임에 나를 불러주는 호의만 베풀면 감지덕지하는 나니까.
 
그래도 올해는 동생 부부와 함께 볼 문화행사 일정을 잡아놓은 걸 보면 아마도 `젖낙'이 되가나보다.(`젖낙'-젖은 낙엽처럼 아내 치마폭에 꼭 달라붙는 남편)

비오는 밤 `Madame Butterfly'는 감성과 영혼의 사치스런 허영심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광화문 뒷골목 사뽀로 우동의 별미는 공복 탓이었을까? 동생과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 등하교길 추억 탓인가 보다. 잠원동 카페로 이어진 뒤풀이에 등장한 `몬테스 알파'는 새벽 2시까지 건배를 외쳐댔다. 오!바!마! 이제 `오바마'는 위험하지 않다. 오직, 바라봐, 마누라만!!!

  ■Progress note
노래 가사처럼 `전쟁 같은 사랑'으로 결혼에 이르는 주인공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영광의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고 한참 결혼 공백기를 보냈다. 그러더니 자식 농사를 일찍 지은 친구들이 4∼5년 전부터 아이들을 하나 둘 시집 장가보내기 시작하며 무게 있는 조연인 혼주로 컴백했다. `하던 결혼'에서 `시키는 결혼'으로의 변화가 처음엔 익숙지 않았다.

친구 딸 결혼식에서 스스로 마치 신부 친구인줄 착각하여 촬영을 위해 연단에 올라갈 채비를 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더니 이제는 바야흐로 성수기를 맞이한 느낌이다.

초창기처럼 자신을 신부 친구라고 착각하는 일은 절대 없다. 조연(혼주)들도 점점 노련미를 뽐내어 의젓한 어른 모습이다. 결혼식에 가면 남의 일이 아니다 싶어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적자생존이라며 노트 필기라도 할 태세다. 마치 숙제나 시험을 일찍 끝내버린 능력 있는 친구를 시샘하는 기분이다. 축하의 박수는 뒷전이고 부러움만 앞서는 나는 심술꾸러기일까?

천식이 악화되곤 하는 복 더위에 보름새 두 딸을 시집보내셨던 저력의 친정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께 졸라보자. “아버지, 큰놈 영선이는 최근 들어 잘 나가는 ‘기아자동차’에 작년에 입사했어요. 이번 주는 여자 월드컵 대회지 독일로 출장 갔구요. 아버지 돌아가실 즈음 막 첫돌을 지냈던 영규도 벌써 대학생이랍니다. 두 녀석들 건강하게 그리고 좋은 짝 만나 오래오래 행복한 결혼생활하고 다복할 수 있게 잘 보살펴 주세요. 금륜사 백중 기도 때 뵐게요”

우리 삼남매는 아직도 틈만 나면 아버지께 조른다. 명절에 성묘가거나 차례지내면서 “아버지 저 볼 좀 잘 맞게 해주세요” 조금이라도 북쪽 고향에 가까운 곳을 원해 당신이 선택하셨던, 가평에 위치한 경춘공원 내 아버지 산소는 내리막 Par 5 홀 티박스와 무척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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