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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럼플 존의 도입과 오프셋 충격
크럼플 존의 도입과 오프셋 충격
  • 의사신문
  • 승인 2011.07.0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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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자 안전의 `혁명'을 이끌었던 벤츠

차를 몰다보면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온다. 이를테면 중앙선을 넘어선 차량이 눈앞에 돌진해 들어오면 들이받을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도로를 벗어나면서 전봇대를 들이받을 수도 있고 벽이나 바위를 받을 수도 있다. 아니면 방심한 상태에서 서있는 앞차를 들이 받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에나 대단한 충격이 오며 이때 차는 부서진다.

예전에 물리 시간에 배운 운동량 보전의 법칙을 생각한다면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차량의 충돌은 그 안에 사람이 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차량보다 인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충돌의 에너지가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 전해지면 안 된다. 범퍼처럼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를 장착하기도 하지만 큰 충격은 차체의 변형도 가져온다.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충돌이 일어날 때 차가 완전히 부서지면 곤란하지만 사람에게까지 충격이 오지 않으면 많이 부서져도 좋다. 이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많이 부서질수록 충격은 차체에 흡수된다. 요즘은 당연하게 생각되는 사실이다.

차의 전면 충격실험에서 40km 정도로 나무나 전봇대에 부딪히는 경우 10m 정도의 추락과 같은 충격을 먹는다는 데이터가 있다. 충격은 이때 발이 아니라 머리부터 배 사이에 전해진다. 안전벨트를 착용하긴 하지만 3층 높이의 충격이 가해진다면 무사할지는 미지수다. 무언가 충격을 완화해줄 장치가 필요하다. 차가 만들어진 그날부터 사고가 일어나면 이런 일들을 일어나고 또 일어났다. 차가 튼튼해서 별로 손상이 없더라도 운전자는 치명상을 받는 경우가 왕왕 일어났다.

벤츠의 소박한 아이디어는 탑승공간을 하나의 박스로 보고 그 앞의 엔진룸과 트렁크를 다른 작은 박스로 본 것이다. 깨지지 말아야 할 것은 탑승자와 탑승공간이었다. 이 부분은 단단하게 만들어도 좋다. 그러나 그 앞의 부분은 변형을 일으켜 충격을 마구 흡수해야 한다는 아이디어였다. 차량이 앞과 뒤의 크럼플 공간을 갖는다. 차량 사고의 65% 정도는 전면추돌이고 25∼28% 정도는 후면 추돌이며 측면은 각각 5%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앞과 뒤의 충돌에 대한 대책으로 크럼플 존을 만드는 것이 낫다.

단단하기는 분명히 일정 강도 이상에서는 틀림없이 변형을 일으켜야 한다. 그것도 조절 가능한 범위와 방법으로 변형을 일으켜야 한다. 엔진이 운전석 쪽으로 밀려들어 오거나 예상치 못한 변형이 마구 일어난다면 안 되는 것이다. 차는 많이 골고루 망가지게 된다. 결국 수리가 골치가 아프더라도 사람이 더 중요하다.

벤츠는 1951년부터 이 아이디어의 실험에 들어갔고 1952년 특허를 얻었다. 그리고 50년대 말의 핀테일 차종부터 구체적으로 크럼플 존을 구현했다. 사망자 통계를 내어보면 벤츠의 탁월성은 대단했다. 자동차 설계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명으로 꼽을 정도다. 다른 회사들은 벤츠로부터 라이선스를 얻어 크럼플 존을 만들었다.

크럼플 존의 아이디어를 낸 벤츠의 차들은 안전성 면에서 탁월했다. 많은 안전장치들이 벤츠가 처음 개발하거나 벤츠의 특정 차종을 통해 도입되었다. 그래서 벤츠는 같은 시대의 다른 차종들보다 안전할 수 있었다. 다른 메이커들이 바로 추적을 해오긴 했지만 벤츠가 처음이었던 것은 상당히 많았고 가격이 비싸도 사람들이 선택하는 이유가 된 것은 분명했다.

크럼플 존 말고도 벤츠의 안전성 요소에는 몇 개의 중요한 기록들이 더 있다. ABS는 1978년 처음 벤츠에 도입되었고 1989년부터는 모든 벤츠 차량의 표준 아이템이 됐다. TCS 역시 1986년 벤츠가 처음으로 도입했고 미국에서 에어백을 표준으로 장착한 것도 벤츠로 1988년 부터였다. ESP도 1995년 벤츠의 S클래스에 처음 도입됐다.

다른 메이커들은 몇 년 후에야 비슷한 아이템을 공급할 수 있었다. 그 동안은 프리미엄의 마법이 통했다.

시기적으로 이런 안전요소들을 장착한 시기는 벤츠의 W124와 W140 차량이 나오던 시기와 일치했다. 그리고 자동차 설계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던 시점이었다. 벤츠의 안전성에 대한 보강은 다른 후발회사들을 고려해야 했다. E클래스 W124가 나오면서 벤츠는 크럼플 존에서 비약하는 새로운 설계를 내놓았다. 요즘은 당연시되는 오프셋 충돌에 대한 대책이었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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