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W 124
벤츠 W 124
  • 의사신문
  • 승인 2011.06.2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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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날 것 없던 체어맨의 배다른 형이지만…

필자에게는 물건을 수집하는 묘한 기벽이 있다. 요즘 같은 소비 시대를 즐기려면 경험하고 버리는 것이 최고다. 그래야 항상 새것을 즐길 수 있다. 인생은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니 버리거나 바꾸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긴 해도 필자는 한번 필이 꽂힌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덕분에 서랍과 창고는 언제나 엉망이다.

이런 취향은 전혀 효율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들을 즐길 기회를 줄인다. 필자가 가장 좋아했던 mi16이라는 차종은 너무 열심히 만지다보니 논현동의 지하실에 거의 차 한 대가 통째로 들어있는 수준이며 중요한 부품은 몇 대분이 넘게 들어있다. 생각해보면 차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예전에 디지털 카메라에 미쳤을 때의 흔적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중요한 모델들을 버리지 않은 상태로 놔두었기 때문에 매우 혼란스럽기만 하다. 몇 개의 플랙십 모델들이나 결정적 모델들이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굴러다닌다.
별다른 의미는 없지만 이른바 결정적인 모델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캐논의 G시리즈는 G1부터 모았고 후지필름의 F10부터 시작하는 근래의 라인업도 갖고 있고 쿨픽스 900, 950, 995, 4500 같은 것들도 그대로 쌓여있다. 물론 E-1 같은 DSLR들도 그대로 모셔 놓은 상태다. 플스에 미쳤을 때의 흔적도 있어 SCPH-1000같은 기종도 완전 복원된 상태로 돌아다닌다.(SCPH-1000은 플레이스테이션의 최초 모델이다) 오래전 컴퓨터에 미쳤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인텔의 8080부터 시작한 결정적인 모델들의 CPU 컬렉션을 갖고 있다.

애플 II나 MSX, IBM PC XT, AT 같은 아주 태고적의 기계들은 적어도 보드들이라도 남아있다. 나중에 박물관을 차릴 것도 아니지만 갖고 놀았던 기계들을 잘 보관하는 것은 일종의 버릇이다. 그리고 요즘 같은 시절에 G2나 G3 같은 기종을 들고 다닐 일은 별로 없으니 쓰고 처분해서 다른 기종들을 즐기는 편이 나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장난감들을 갖고 놀 시간도 자금도 별로 없으면서 열심히 모았다는 것이 지금 보아도 신기하기만 하다. 한때는 음반을 모은 적도 있는데 그때도 결정적이라고 부르는 판들을 열심히 모았다. 필름 카메라는 완벽 복원된 스포트매틱부터 모았던 것 같다. 물론 결정적인 m42 렌즈들도 열심히 모았다. 모으고 분해하고 수리한 시간이 아마 갖고 논 시간보다 더 긴 것 같다. 많이 없애긴 했지만 중요한 렌즈들은 거의 남아있다. 잠시나마 이 렌즈들을 가지고 놀았던 시절의 기억은 남아있다. 결과물은 참 좋았는데 놀 시간은 부족했다. 그러니 많은 집착이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필자의 장난감 모으기에는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 가동이 가능해야 하고 가급적이면 기능은 완벽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장난감이라면 스페어 파츠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나중에 더 갖고 놀고 싶을 때 상실감을 느끼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벽은 자동차에도 남아있다. 자동차도 결정적인 모델들을 다 타보고 싶지만 차라는 것은 앞서 말한 장난감들보다 크고 무거우며 부품을 보관하고 유지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그래서 몇가지 차종으로 압축해서 놀 수밖에 없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차종 한 대를 파악하는데 약 2∼3년이 걸린 것 같다. 구형차종이건 신차종이건 몇 달 만에 파악하는 것은 필자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예전에 타보지 않았으나 언젠가 타보고 싶었던 차종의 하나가 W124라는 구형의 E 클래스로 벤츠의 역사에서도 이 모델은 아주 결정적이다(물론 자동차 매니아가 아닌 사람들은 한 시대를 풍미한 벤츠 정도로 알고 넘어가면 그만인 모델이지만 결정적인 모델이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고 싶다).

단종이 된지 15년이 지났고 단종 후 쌍용에서 이 차의 차체를 바탕으로 체어맨을 만들어서 얼마 전까지 H 시리즈까지 만들었던 차종이니 W124는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다.

체어맨을 타본 사람들이라면 도대체 이 차종이 무엇이 그렇게 좋으냐고 필자에게 반문할 것이 틀림없다. 같은 질문은 정확히 벤츠라는 회사의 차가 왜 좋으냐고 묻는 것과 같다. W124의 배다른 동생격인 체어맨은 사실 차체의 구조나 엔진이 같다. 다는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부속을 같이 쓰고 있기도 하다. 물론 사업가들이 많이 탔고 택시로도 많이 팔린 E 클래스의 차가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비싼 고급차로 자리매김해서 혼선을 일으키긴 했지만.

우선 체어맨이 아주 잘 달리는 차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주행성능은 상당히 좋지만 같은 급의 BMW나 다른 경쟁차종에 대해 우위를 점한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체어맨이 400, 500, 600시리즈로 발매됐는데 엔진은 각기 직렬 4실린더 2300cc, 직렬 6실린더 2800과 3200cc였다.

필자가 타본 결과 2300cc의 체어맨의 달리기 성능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한참 가속을 해야 속도가 올라갔다. 2800cc 엔진의 체어맨도 편안한 달리기는 가능하지만 빠른 가속을 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3200cc 정도는 되어야 비교적 빠르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엔진은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회전을 하지만 결코 빠르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벤츠가 고성능 엔진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쓴 것은 최근의 경향이다.

그렇다면 고장이 잘 나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특별히 고장이 나지 않거나 멈추어 서지 않는다고 주장할 근거도 없다. 중간에 멈추어 서서 견인되는 체어맨들을 흔히 보았기 때문이고 나중에 나온 벤츠들도 곧잘 견인되는 것을 보았다. 민감한 사안이기는 해도 필자의 생각은 그렇다. 그리고 이 차의 정비이력들을 본다면 결코 무결점에 가까운 차는 아니다.

상당히 편안한 차냐고 물으면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 있다. 운전해보면 안정적이다. 그렇다고 서스펜션이 최고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최신 기술이 적용되었냐고 물어 본다면 어떤 것들은 맞지만 아닌 부분도 많다. 벤츠의 기술 적용은 보수적인 면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을 하다보면 벤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벤츠의 이미지는 항상 좋았다. 가격이 비싸지만 사람들이 기꺼이 지불하고 샀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벤츠가 타사에 대해 항상 경쟁우위로 내세웠던 것은 안전이었다. 보수적인 운전자들이 사고가 났을 때 덜 다치는 것을 중요시했고 벤츠의 광고는 유독 안전에 대한 것들이 많았다. 벤츠는 자기들의 차가 안전하다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해 w123시절부터 집요하게 실험을 하고 항상 이점을 강조했다.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 차에서 운전자가 무사히 걸어 나온 실화를 인용한 광고라던가 차량의 충돌실험을 보여주는 광고 같은 것이 그랬다. 생산 차량의 일부를 실험에 일정 비율 이상을 투입하기도 했다.

W124보다 10년이 먼저 나온 W123은 시대를 앞서서 벽에 부딪힌 차체와 탑승한 더미 인형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안전을 어필했다. 체계적인 시험방법이 없던 때라 기중기로 차를 전복시키거나 뒤집기도 하고 이때마다 벤츠는 이렇게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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