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극복기 <5> 유계준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암 극복기 <5> 유계준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1.06.20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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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하나만큼은 자신있던 자만심이 초대한 암” 

 

■앞으로 얼마나 살까…“여기서 끝은 아니겠지”
내 나이 72세.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다. “아! 나도 내 아버지와 같이 여기서 생을 마감하는 것인가(?)” 불연 듯 ‘생을 마감’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 동안 건강에 자신감을 가져왔던 내 자신이 초라해 지는 것 같았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7년, 유계준 명예교수의 대장엔 마치 그 자리가 원래 자신의 자리였던 것처럼 3cm∼4cm의 `암'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도 이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그 동안 누리지 못했던 `인생'을 보상받으려던 찰라에 말이다. 

그는 머리속이 멍해지면서 하얗게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명색이 직업이 의사인데 대장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건강 하나는 자부했던 그에게 `암 판정'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암 판정을 받고 “두려움과 슬픔이라는 감정보다 믿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병원을 옮겨 재검을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는 대장암 3기였다.

순간 그는 과연 내가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지가 공포로 다가 왔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대장암 판정을 받은 것일까”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런 생각들은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곤 `최선을 다해 치료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잡았다.

그는 8년 동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병원장 시절 많은 업무로 인한 피로 누적과 불규칙한 생활, 그리고 거의 매일 섭취한 술과 고기가 `암'을 키우는데 큰 공신을 한 것 같다고 했다. 특히 한 번도 받지 않았던 대장내시경 검사가 큰 화를 불러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불규칙한 식습관 그리고 술과 고기가 부른 `암'
대장암은 유 교수에게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온 것이 아니다. 단지 유 교수의 무관심이 불러온 결과다. 유 교수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의사였다. 그런 그는 퇴임 8년 전, 정신건강병원 병원장을 맡으면서 `암'과 서서히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유 교수는 “365일 매일 고기를 먹을 정도로 식탁엔 고기가 빠진 날이 없었다”고 했다. 특히 병원장직을 수행하면서 직원들과의 화합을 위해 일주일에 3∼4번은 삼겹살과 술을 즐겨 먹었다“고 말했다.

특히, 진료준비와 회진을 위해 매일 7시부터 시작되는 업무로 습관처럼 먹지 않았던 아침덕분에 점심은 배불리 먹고 저녁은 `고기'로 과식하는 잘못된 식습관이 몸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유 교수는 바쁜 일상생활에서도 건강 유지를 위해 테니스, 골프, 헬스 등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불규칙한 식생활을 하고 있어도 `건강' 하나만큼은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을 가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유 교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하지 말라는 행동을 의사인 내가 다 했던 것 같다”며 “나만의 자만이 `암'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퇴직 후 매년 검진실시…대장내시경은 No
유 교수는 건강검진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2001년 정년퇴임 후 아내와 함께 매년 국가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장내시경만은 하지 않았다.

유 교수는 “지금은 대장내시경 시술이 많이 발달했지만 당시만 해도 대장내시경이 고통스럽다는 말도 많았고 전날 속도 비워야 하는 것은 물론 2리터가 넘는 물을 먹어야 하는 것도 귀찮았다”고 설명했다. 암은 이 틈을 노린 것이다. 서서히 그리고 소리 없이 조금씩 그의 생명을 노리고 있던 것이다. 유 교수만 모른 채.

유 교수가 암 판정을 받은 것은 2007년 4월 따스한 봄날이었다. 그의 나이 72세. 그에게 그 해는 특별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였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정신과에서는 `내 아버지보다 더 살자'라는 의미의 날이 있다. 이때 체계적으로 검진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둘째 아들의 권유로 대장암내시경을 받았다. 그리고 3일 뒤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인 둘째 아들은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대장암'이라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당시 상황을 인정할 수 없어 세브란스병원에서 재검을 했다. 결과는 같았다. 주치의는 당장 수술할 것을 권유했고 다행히 수술을 성공적이었다.

 

매년 건강검진할때 대장 내시경 귀찮아 피했더니 결국 암 판정
6개월간의 지옥같은 항암치료 무사히 마쳤지만 대상포진 발병
야채 위주 식사·긍정적 자세로 하루하루 보람되게 살며 암 극복


■5년 생존율 35%…그래도 `희망'은 65%
 유 교수는 수술을 마치고 나서도 `대장암'이라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현실은 항암치료를 하면서 가벼운 병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항암치료는 죽음에 문턱에서 사람의 목숨을 쥐락펴락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올 항암치료의 `공포'가 밀려왔다. 더욱이 그도 의사였지만 외과 분야는 모른다는 것이 심적으로 더욱 컸다. 여기에 담당 주치의의 말은 그를 더욱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다.

유 교수는 “수술 후 병실에 누워있는데 레지던트가 다가오더니 대장암 3기 환자의 수술 후 5년 생존율은 65%라고 하는데 순간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고 말했다. 순간, 65%의 생존율보다 35%가 왠지 더 크게 다가왔다고. 그러나 그에겐 65% 높은 생존율을 믿었다. 주치의와 최신의학을 믿고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항암치료에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6개월간 12번의 항암치료는 2주 간격으로 진행됐다. 그는 “병원을 가는 날은 꼭 도살장에 끌러 가는 것 같은 느낌 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표현했다. 그도 일반 환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입안이 헐고 머리가 빠지고 몸에서 음식을 거부해 왔다. 유 교수는 “꾸준한 운동 때문인지 항암치료 7∼8번까진 심한 구토와 음식거부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활동하는데도 큰 지장이 없었다.

계속되는 치료 때문인지 8∼9회부터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 백혈구 수치가 790(정상수치 8000∼9000)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는 의사를 전적으로 믿고 감기, 날 음식 등을 조심했다. 그리고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기와 야채 등을 섭취해 나갔다. 유 교수는 “입에서 받지 않는데 살코기 위주로 고기를 섭취하려다 보니 곤욕 이었다”며 “이때 날 살린 음식이 `단고기'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암 판정 이후 채소 위주로 식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각 채소마다 고소함과 맛이 다른지 몰랐다며 채소를 먹을 때 마다 즐겁다고 말했다.

반갑지 않은 항암제 후유증…그리고 잠재된 세포의 공격 
유 교수는 다행스럽게 항암치료는 11번으로 끝이 났다. 당시 그는 해방된 느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암은 그에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아마도 바쁘게 살아온 그가 여유를 갖는다는 것이 시샘이 났었나 보다.

유 교수는 “내가 의사였기에 당연히 알 것이라는 의료진들의 판단 미스였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한다. 쇠약해진 내 몸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세포의 위험성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와 함께 대만 여행 중 왼쪽 얼굴에 `대상포진'이 발병됐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당시 주치의가 치료시 주의사항을 꼼꼼히 이야기 해줬다면 지금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대상포진의 고통에 시달리며 약간의 마비증상을 가지고 있다.

이와 함께 그는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했다. 유 교수는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 나의 경우 나이가 많다 보니 손과 무릎 밑(다리) 감각이 둔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를 위해 비타민 B섭취를 꾸준히 하고 있는데 효과는 크게 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만4년 넘었으나 후유증 아직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 안고 갈 거 같다며 6개월간의 항암치료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고 회상했다.

■나를 믿는 `긍정'의 힘…그리고 현대의학을 `믿어라'
유 교수는 지금 껏 암이 재발하지 않는 것은 `긍정'의 힘과 `야채 위주의 식사' 그리고 `현대의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 암 판정을 받았을 때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괜찮겠지'가 현재의 나를 만들어 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의학의 치료 기술을 믿고 주치의가 하라는 대로 믿고 따른 것이 다시 건강을 찾을 수 있던 요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에 `야채'위주의 식단까지. 특히 가장 큰 힘은 그를 찾아오는 `환자'들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항암치료를 받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환자 치료를 해오고 있다. 정신과는 꾸준한 치료가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몇 년간 나한테 진료를 받아온 환자들을 나 아프다고 나몰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6개월 마다 꾸준히 검진을 받고 있다. 암을 이겨 낸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 건강하다”며 “환자들을 진료하고 치료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홍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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