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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병리학교수 - 윤일선
첫 병리학교수 - 윤일선
  • 의사신문
  • 승인 2011.06.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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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병리학회 창립 등 한국 병리학 탄생·발전 주도

윤일선(尹日善)
윤일선(尹日善)은 1896년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부모의 4남 1녀 중 장남으로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1906년 귀국하여 경성중학교(京城中學校, 서울중학교전신)를 졸업하고 다시 일본에 가서 일본 제6고등학교 2부(의예과)에 입학하여 의학의 길을 시작하였다.

1923년 일본 교토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 병리학교실에서 병리학을 연구하였다. 1925년 귀국하여 경성제국대학 병리학교실에서 일하다가 1928년 조교수로 임명받았다.

경성제대 병리학교실에서 윤일선은 연구와 교육에 전념하였는데 당시의 연구결과는 조선의학회는 물론 일본병리학회, 만주의학회, 북경동아의학회 등에 발표하였다. 과민증, 아나필락시스, 내분비장기, 실험적 종양이 선생의 주 연구대상이었다.

1929년 교토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겨 한국인으로 처음 병리학교수가 되었는데 동아일보는 사설까지 써가며 축하해 주었다. 그곳에서 선생은 당시 모든 학술분야에서 일본인이 독주하던 관례를 깨뜨리고, 우수한 한국인 대학원생들과 함께 대단히 활발한 연구생활을 계속하였다.

선생은 한국인 학자를 많이 길러내는 한편 연구논문을 국내잡지에만 게재하던 것에서 벗어나 `암(癌)', `일본미생물학병리학잡지'등에 발표하였고, 1947년 국제암학회에 한국대표로 참가하여 `한국인 癌에 관한 통계학적 연구'와 `안드라퀴논을 투여하여 발생한 토끼의 위암'을 발표하였는데, 이중 한국인 암에 관한 논문은 1948년 미국의 유명학술지인 `Cancer Research'에 게재되었다. 이렇게 활발한 연구 활동으로 선생은 1945년 광복이 될 때까지 46편의 귀중한 원저를 국문 혹은 영문으로 발표하였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로 자리를 옮긴 윤일선은 1930년 경성제국대학에 있는 한국인들과 합해 한국인 의사들의 친목단체인 조선의사협회를 결성하고 간사장에 박계양을 위촉하고 사무실은 세브란스병리학교실에 마련한 후, 협회의 공식 학술잡지인 조선의보(朝鮮醫報)를 계간으로 발간하였다. 조선의보는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의학종합학술지로서 한글로 된 논문을 실었는데 윤일선은 이 잡지의 편집을 맡았다.

조선의사협회는 1939년 서태평양지역 외과학술대회에 한국대표를 파견하는 등 국제적 학술활동을 하였으나 결국 조선총독부의 탄압으로 2년 만에 해산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1908년 한국인 의사모임으로 발족했다가 2년 만에 해산된 조선의사연구회(朝鮮醫師硏究會)와 더불어 해방 후 발족한 조선의학연구회와 건국의사회의 모태가 되었으며 이 두 개 단체가 합하여 1947년 5월 조선의학협회(현 대한의사협회)가 창립되었다.

윤일선은 1948년 조선의학협회 제2대 회장으로 취임하여 이후 4년간 어려운 시기의 조선의학협회(1950년 대한의학협회로 이름 바꿈)를 이끌었다.

한편, 광복이 되고 군정청이 들어서면서 윤일선은 경성제대 의학부의 접수를 책임 맡았고 초대 경성대학 의학부장으로 있으면서 이른바 국대안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나라의 인재를 길러내는 일에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신념에서 시간표대로 하루도 빠짐없이 강의를 하였다.

1946년에는 대한병리학회를 창립하여 초대회장이 되었다. 결국 서울대학교가 발족되면서 1946년 선생은 초대 서울대학교 대학원장으로 임명되어, 일본강점시대에 배출한 바 없는 인문사회학과 이공학계통의 박사를 우리나라에서 처음 배출하였고, 6·25중 부산에 가서도 논문을 심사하여 학위를 수여할 정도로 학교일에 충실하였다. 1956년 서울대학교 총장으로 선출되었고 이후 5년3개월 최장수 총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하였다. 서울대총장 재임 시에도 의과대학 학생들 강의를 열심히 하였고, 총장 임기후 초대 원자력청장을 맡아 하면서도 학자로서의 생활을 유지하였다. 1987년 92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윤일선은 비르효의 세포병리학을 근간으로 하는 현대 병리학의 입장에서 보아 한국 최초의 병리학자이다. 선생은 일본강점하에서 병리학연구와 교육을 통하여 한국 병리학의 탄생과 발전을 주도하였다.

또 조선의사협회 등 의사단체결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최초의 우리말 의학잡지인 조선의보의 창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광복 후 혼란기에는 대한의학협회의 발족과 안정에 기여하는 한편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던 서울대학교 통합과정에 경성대학 의학부장으로 역할을 다하였고 서울대학교 발족 후에는 대학원장과 총장으로서 초창기 서울대학교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집필 : 지제근(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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