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크라이슬레리아나〉작품번호 16
슈만〈크라이슬레리아나〉작품번호 16
  • 의사신문
  • 승인 2011.06.17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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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두개의 상반된 자아를 선율로 묘사

피아노 변주곡의 세계에서 바흐는 고아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베토벤은 불면의 걸작 〈디아벨리 변주곡〉을 남겼고, 슈만은 환상적인 〈크라이슬레리아나〉를 남겼다. 변주곡 스타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독일 작가 호프만의 소설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과 우연히 삽입된 갈피지의 악장 요하네스 크라이슬러의 단편적 전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서 1838년 이른 봄에 단 4일 만에 작곡되어 쇼팽에게 헌정하였다.

슈만은 청소년기부터 음울하고 기괴한 주제를 탐닉했으며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환상 등의 주제에 심취하였다. 그가 작곡했던 많은 작품들에는 이러한 소재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들이 낭만주의 특성에 섞여 잘 드러나 있다. 슈만은 젊어서부터 음악과 문학의 결합을 위해 많은 시도를 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소설처럼 등장인물을 설정하여 표제적인 선율과 화성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슈만에게 많은 영감을 준 작가로는 하이네, 바이런, 리히터 등이 있지만 주로 환상적인 세계를 통해 그로테스크한 광기와 풍자가 넘치는 소설을 많이 발표한 낭만주의 작가 호프만 역시 그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총 8개의 악장으로 나누어진 〈크라이슬레리아나〉는 주인공 크라이슬러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두 개의 자아가 나온다. 하나는 작가 호프만의 자아가 투영된 `악장 요하네스 크라이슬러'이고 또 다른 자아는 슈만 자신의 자아를 투영시킨 `크라이슬러'다. 이 작품의 기본적인 악상 조성 역시 두 개로 나누어진 자아를 대변하고 있다. 도입부인 제1곡에서 격정적인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거세게 시작한 후 제2곡, 제4곡, 제6곡은 Bb장조이고 제3곡, 제5곡, 제7곡은 G단조로 구성되어 서로 상반된 이미지를 조명하고 있다.

제8곡에서는 크라이슬러가 짝사랑하는 율리아 공주와 이그나티우스 왕자의 결혼을 알리는 편지를 보면서 아주 여리고 급작스레 사라지는 느낌으로 막을 내린다. 각 악장에서도 명랑하고 열정적인 `플로레스탄'과 내성적이고 명상적인 `오이제비우스'라는 두 개의 상반된 기질을 음악적 주제를 통해 교차하면서 조울증이 있는 슈만의 `난해하고 이중적인 자아의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제1곡 매우 빠르게 소용돌이치는 음들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빠르고 긴박한 분위기의 플로레스탄의 열정으로 고뇌하는 크라이슬러를 표현하고 있다. 그는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위에서 표류하듯 몽상에 끊임없이 흔들리며 예술 창조를 위해 필요한 안식과 고요를 안겨줄 피난처를 찾지만 헛된 일이다. △제2곡 가슴깊이 느껴지지만 그리 빠르지 않게 전곡 중 가장 규모가 큰 곡으로 조용하고 행복한 분위기의 노래가 꾸밈없이 펼쳐진다. 환한 색채의 꽃밭사이를 지나는 은빛 여울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크라이슬러는 언제나 명랑한 기분이다.

△제3곡 매우 활달하게 매우 격정적인 느낌이다. 악장 크라이슬러가 발을 페달 위에 올려놓고 격렬하게 연주하며 음악에 몰두해 자신을 잊고 마지막으로 치닫는 광란의 파도가 잘 묘사되어 있다. △제4곡 매우 느리게 앞의 곡과 대조적으로 아름다운 천상의 노래가 펼쳐진다. 대위법적인 선율로 크라이슬러의 시적인 세계를 느린 템포로 그리며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제5곡 매우 활발하게 경쾌한 스타카토로 생동감 넘치는 리듬으로 외향적인 플로레스탄의 특성을 그리고 있다. 크라이슬러의 상상력은 자극받았다. 그는 몇 시간 내내 피아노만 두드리면서 그만의 독특한 신비한 주제로 상상력을 구사하고 있다. △제6곡 매우 느리게 희망 속에서 지상의 고뇌를 극복하는 내성적인 오이제비우스의 모습으로 호소하는 듯 시적인 표현이 매우 아름답다.

△제7곡 매우 산뜻하게 전곡 중 가장 빠른 곡으로 크라이슬러의 광기를 대변하듯 격정적인 분위기로 환상을 고조시키면서 극적이다. 당신은 그를 못 알아보는가? 그는 길고 붉은 발톱으로 내 심장을 움켜쥐고 있다. 광기의 유령에 용감히 맞서라. 크라이슬러여. △제8곡 빠르고 즐겁게 크라이슬러가 갑자기 모습을 감추고 사라지듯 묘한 선율이 인상적이다. 중간부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듯 클라이맥스의 아름다움이 펼쳐지면서 마지막은 공허한 느낌으로 매우 여리게 슬며시 막을 내린다.

■ 들을만한 음반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피아노)[CBS, 1969]; 마르타 아르게리치(피아노)[DG, 1983]; 마우리치오 폴리니(피아노)[DG, 2001]; 알프레드 브렌델(피아노)[Philips, 1980]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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