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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평 - 인사이드 잡(Inside Job)
영화 비평 - 인사이드 잡(Inside Job)
  • 의사신문
  • 승인 2011.06.1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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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된 미국발 금융 재앙의 탐욕과 음모 파헤쳐

박인숙 교수
2008년 미국 월 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금융위기(재앙이라는 말이 더 맞는 듯)에 관한 다큐멘타리 영화로 이제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하게 된 주요 관련자들(물론 인터뷰에 동의한 사람들만)을 인터뷰한 내용이다.

아마도 이 지구상에 이 금융위기로부터 크건 작건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그 위력이 컸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나부터도 아무 영문도 모른 채 피해를 입게 된 것에 대하여 매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보통사람으로서 그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부패한 미국의 금융인들과 이들과 결탁한 정치인들 그리고 학자들이 저지른 사상 초유의 세계적인 재앙으로 막연히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원인을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된다고 하여 당장 극장에 달려가서 보니 그 역사적인 배경과 과정을 기대보다 훨씬 더 적나라하게 파헤친, 대단히 훌륭한 다큐 영화였다.

과연 올해 아카데미 다큐 부문상을 수상한 것이 당연해 보이며 나와 비슷한 답답함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강력 추천한다. 비록 미국인들 때문에 촉발된 세계적인 재앙이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미국인의 저력이 보인다.

이 영화는 MIT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기업 컨설던트로 일했던 Charles Ferguson 감독이 금융위기의 원인을 재미있고 쉽게 설명해주는 최고의 명 강의와 같다. 다만 이에 대한 해결방법이나 예방대책에 대한 제시가 미흡하고 결론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여 안타까움과 걱정이 남는다. 중요한 내용들을 단편적으로 간단히 요약해 보겠다.

△옛날에는 은행들이 정부규제를 받으며 양심적으로 그리고 소규모로 운영하였으며 따라서 은행가들의 연봉이 많지 않았고 또한 고객들에게 위험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후 무기를 만들던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이제 할 일이 없어지니 이런 복잡한 금융상품들을 만들었고 탐욕스러운 CEO들과 정책입안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아무도 이해 못할 정도로 복잡하며 엄청난 이익을 내지만 동시에 위험도 엄청 높은 파생상품(derivative)들을 만들었고 이것이 이번 금융위기의 발단이었다. 이에는 금융규제를 풀어준 정부의 최악의 결정이 필수조건이었음은 물론이다.

△투자의 귀재인 조지 소로스가 예를 들기 위하여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설명한 바에 의하면 큰 유조선에는 사고 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하여 기름을 가두는 컨테이너를 칸막이를 이용하여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눈다고 한다. 그는 이번 금융위기를 칸막이를 모두 없앤 큰 유조선이 침몰한 사고에 비유하면서 칸막이가 없기 때문에 그 피해가 엄청났다고 설명하였다.

△엔지니어들은 다리 같은 걸 만들지만 이와 달리 금융설계사들은 꿈을 파는 직업으로 이들의 꿈이 잘못되면 혼자만의 피해가 아니라 이번 사고같이 수 많은 사람들이 그 피해를 입게 된다.

△프랑스 재무장관이었던 Christine Lagarde(칸 IMF 총재가 성추문 사건으로 추락 한 후 새 IMF 총재로 유력한)은 미국의 금융위기를 예감하면서 G7 경제장관 회의에서 미국 경제장관에게 “쓰나미가 오는데 무슨 수영복을 입을까 걱정하는 판국”이라며 경고하니 “괜찮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미국 정부 내의 경제장관이나 금융기관의 CEO 모두의 금융위기 직전의 인터뷰 장면을 보면 모두가 한 목소리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뇌의 PET를 이용한 한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도박을 할 때와 큰 돈을 벌었을 때와 자극받는 뇌 부분이 똑 같다고 한다. 즉 부패한 사람들의 돈에 대한 집착과 탐욕의 중독성이 왜 그리 강한지를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들(아이비리그, 주로 하버드대학 교수들)의 부패 또한 금융위기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하는데 이들에게는 학자로서의 `conflict of Interest' 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던 것 같다.

금융위기가 없을 것이라는 엉터리 연구보고서를 내면서 연구비를 누가 얼마나 제공했는지를 밝히기를 끝내 거부하고 있다.


부패한 지도자들이 저지른 세계적인 재앙 속시원하게 설명
누구하나 처벌은 커녕 계속 기득권 유지하는 모습에 기막혀
국민들이 더 깨어있고 적극적인 참여가 유일한 해결·예방책


△신용평가회사들이 금방 파산할 금융회사들의 신용등급을 AAA 또는 AA의 최상급으로 발표한 바로 다음날 이 회사들이 파산선언을 했다. 이들의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회사들의 도덕성이 바닥에 떨어져서 이제부터는 이들의 평가를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양심적인 젊은 여성관료 한 명이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순간 엄청난 외부 압력이 들어와 더 이상 reform(규제)을 주장하지 못하게 된 사건도 소개되어 비록 아주 짧았지만 그나마 미국 정부 내에서 양심의 목소리를 냈던 사람은 여자 학자 한 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분이 reform을 계속 주장했다면 개인적으로 어떠한 불행한 일을 당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사건 이후 다시는 이분이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큰 좌절감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음이 틀림 없다.

△세계 뉴스에서 오랫동안 자주 이름이 오르내려서 대다수 일반인들에게도 이름이 아주 친숙하게 들리는 세계 경제계의 거물급들 거의 모두가 주범 내지 공범, 또는 방조자로 밝혀진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거물들이 정부의 주요 요직, 대학교수나 총장, 정부감독기관, 은행이나 투자기관의 CEO 자리를 계속 넘나들면서(우리말 표현을 빌리자면 `회전문 인사') 영원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아니 어찌 보면 이들 `불사조'들이 미국 정부를 아예 접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영화는 이들의 `영원한'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 주범들의 엄청난 부패, 사치, 마약, 매춘행위 등 상상을 초월하는 탐욕스런 생활상도 간간이 소개되어 딱딱하고 무거운 영화 분위기에 `양념'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인들의 세금,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평화롭게 살던 아이스랜드 같은 나라 국민들의 세금, 그 밖의 전 세계 보통사람들의 세금과 투자금,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것은 극빈층 사람들의 돈까지 미국의 몇몇 금융회사 임직원들의 천문학적인 연봉과 (금융위기 이후에도 계속 지급된) 터무니 없이 많은 보너스를 지급하는 데에, 그리고 극에 달하는 사치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로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은 참으로 분개할 일이다.

이와 같이 금융재앙의 원인을 설명하는 부분은 아주 훌륭하지만 그러나 결론은 참으로 우울하다.

영화의 결론을 요약하면 첫째, 이번 금융위기는 정부의 금융규제완화와 도덕적 해이 및 탐욕이 부른 예고된 사기범죄로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힌 재앙이다.

둘째, 알 만한 사람들은 이런 위기가 올 것을 미리 다 알고 있었으나 부패한 정치인들과 학자들,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탐욕스런 금융인들 때문에 예방하지 못했다.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도 주범이나 공범 모두 자기들은 아무 잘못이 없으며 단지 열심히 일하다 보니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는 엉뚱한 답변만 되풀이 하면서 범죄 의식이 전혀 없었고 결국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셋째, 주범들이 잘못을 시인하지도 않았고 처벌 받지도 않았음은 물론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들이 지금도 정·관계, 대학의 여러 높은 자리로 이동하면서 여전히 막강한 파워를 휘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금융위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막대한 연봉과 보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유일하게 달라진 점은 전 세계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욱더 가난해졌고 게다가 직업까지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고구마 줄기같이 관련자들의 인맥이 계속 불거져 나오는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부산저축은행 사건도 미국 발 금융 위기와 어찌 보면 근본원인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로 지금과 같은 제도 안에서는 정부가 국민을 끝까지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이미 깨진 것으로 보인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불행히도 이에 대한 답을 이 영화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본인 개개인이 그리고 진정으로 시민을 대표하는 제대로 된 시민단체들이 깨어 있어야 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부패의 냄새가 나면 즉시 문제 제기를 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하면서 끝까지 집요하게 이를 파헤치려는 태도(persistence)가 유일한 해결방법이자 예방이라고 생각된다.

이해하기 어려우나 중요한 사회적 이슈들은 잘 만들어진 영화를 통해 국민을 계몽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부언하면 뉴욕과 아이스랜드의 기막히게 아름다운 풍광을 최고 실력의 카메라맨이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고 찍은 훌륭한 영상은 무거운 내용을 이해하려고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집중하고 있는 관객들의 눈을 짬짬이 즐겁게 해주었다. 뉴욕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전에는 미처 몰랐다. 필기를 해가면서 듣고 싶을 정도로 내용이 좋았으나 영어대사도 들어가며 한글자막도 읽다 보니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이 휙휙 지나가서 안타까웠다.

DVD가 나오면 얼른 사서 내용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다시 보고 싶은 경제학 교과서 같은 대단히 중요한 꼭 누군가가 만들었어야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를 만든 퍼거슨 감독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박인숙<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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