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의 차들 <4>
벤츠의 차들 <4>
  • 의사신문
  • 승인 2011.06.0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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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중형 고급차의 상징 `W 124' 탄생

필자는 얼마 전 란치아 카파를 한 대 구했다. 클리닉에 잘 세워두고 흐믓한 기분으로 즐기고 있던 차를 언젠가부터 집사람이 타고 다니게 되었다. 차는 너무 부드럽게 움직였기 때문에 유류비가 비싸도 열심히 타고 다녔다. 평상시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 이렇게 운전을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다가 얼마전 포스코앞 사거리에서 앞차를 들이박고 말았다. 에어백이 터지고 운전자는 무사하긴 했으나 앞부분의 큰 파손이 일어났다. 차는 견인되어 정비공장에 있었다. 부서진 카파를 다시 수리할지에 대해서는 고민 중이다. 사고가 원인이기는 하나 다른 차종으로 차량을 학습해볼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카파를 포기한다면 현재로서 가장 유력한 차종은 W124다. 상태가 좋은 W124를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차종임에는 분명하다.

벤츠의 차들이 후륜구동이 압도적으로 많아 다른 차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W124의 영향을 받지 않은 Executive Class의 차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ecutive Class라는 것은 애매하기는 하지만 적당한 정도의 고급차를 말한다. BMW의 5클래스나 벤츠의 E클래스, 푸조의 607 같은 차종이나 아우디의 A6가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예전의 그랜저 정도가 해당될 것 같다.

벤츠가 고급화 전략을 구사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다. 승용차 사업을 고급차로 특화할 것을 계획하고 생산 수준을 수요보다 낮게 설정해 희소성과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전략을 썼던 것이다. 당시 고급 차종이 아니었던 아우토 유니온을 폭스바겐에 매각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상용차 사업에서는 Krupp 그룹의 상용차 부문과 라인슈탈 등의 매수를 통해 유럽 최대의 상용차 메이커가 되었다.

벤츠가 승용차부문에서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1982년 컴팩트 차량인 w201(190e시리즈로 C클래스의 직접적인 조상이다)로 소형 고급차의 시장을 개척하고, 1985년 W124의 발매로 중형 고급차 시장 진입에 성공 하였다. 벤츠가 두 차종에 퍼부은 연구비는 천문학적인 규모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줄을 서가며 상당히 비싼 가격의 중형차와 소형차를 구입하려 했다. 새로운 안전장치의 도입과 실용화 안전기준에 있어서 벤츠는 단연 최고봉이었다. 그리고 1991년에는 W124와 W201의 연구결과에 다시 천문학적인 개발비를 퍼부은 W140을 발표했다. 차의 안전성과 고급스러움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수준이었고 가격 역시 최고였다. 하지만 차들은 정말로 잘 팔렸다. 세 가지 차종 모두 부품의 품질이나 내수성에서는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벤츠는 안전해야 했고 또 그래서 비쌌다.

W123도 그랬지만 W124는 배기량의 차이도 컸고 차종의 변형도 다양했다. 엔진의 형식도 가지가지였다. 우리나라의 소나타나 그랜저는 이 정도의 다양성은 없다. 수요가 도처에 있었기 때문에 다양성이 증가했다.

우선 두 차종 모두 디젤엔진 버전이 존재했다. 240D나 300D 등으로 표기했던 엔진을 탑재한 차종들은 출력은 적어도 경제성이 중요한 수요층이 있었다. 택시로도 많이 사용된 두 차종은 100마력도 안 되는 엔진이긴 하지만 거의 고장이 나지 않는 OM603 같은 엔진이 있었다. 무쏘나 코란도에 사용된 엔진으로 승용차의 경우 연비는 상당히 좋았다. 10Km 중반을 훌쩍 넘는 연비로 경제적이었다. 차는 저렴하지 않았지만 유지비는 저렴했다. 고속으로 달려 바쁜 업무를 보는 사업가가 아니라면 안전한 차와 좋은 연비를 거부하기 어려웠다. 고급차종이지만 실용적인 왜건타입도 있었다.

엔진의 배기량은 2.0L부터 5.0L까지 다양했다. 2.0L, 2.2L, 2.3L, 2.6L, 2.8L, 3.0L, 3.2L, 3.4L, 3.6L의 I4와 I6엔진이 있었고 V8엔진으로 4.2L와 5.0L 엔진이 있었다. 1985년부터 10년 이상 생산되어 같은 배기량의 엔진이라도 형식이 다르기도 했다. 엔진의 형식이 같아도 차종에 따라 보어와 스트로크도 달랐고 카부레터가 붙어있는 엔진과 인젝터가 붙어있는 엔진이 공존했다(초기의 I4 2.0L M102 엔진의 계보를 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플 정도다). E클래스는 평범한 사람들이 타는 2.0L 엔진과 조금 잘나가지만 S클래스를 타지는 않는 고급 공무원이나 중역들의 5.0L 엔진까지 있었던 것이다. 차체는 같지만 부속과 인테리어는 또 달랐다.

이 엔진은 성능만으로 보면 다른 회사의 엔진과 큰 차별점을 보이지 않는다. 당시에는 더 첨단의 엔진들도 많았다. 쌍용의 구형 체어맨이 W124의 차체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차량으로 엔진은 2.3, 2.8, 3.2L의 세 종류였다. 구형 체어맨의 엔진 역시 벤츠의 엔진과 같은 기종인데 과연 이 엔진에 대해 얼마나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액셀을 밟고 있으면 간신히 가속이 일어나는 것 같은 2.3L의 체어맨 400시리즈는 그 전의 마스터피스 시리즈이 2.0L 엔진보다는 출력이 큰 엔진이었다.

빠르고 민첩한 차를 좋아하는 필자가 2.0L나 2.2L의 구형 마스터피스 모델을 구해서 타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조금 기묘하기는 하지만 W124는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다음번부터 몇 번 더 적을 주제이기도 하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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