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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과 인수합병의 역사
'GM'과 인수합병의 역사
  • 의사신문
  • 승인 2009.03.1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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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몰린 자동차 업계의 '공룡'

지난호 칼럼에서 GM 산하의 회사 `사브'를 이야기를 했다. 요즘 신문에는 GM 대우의 정부에 대한 수혜 요청이 실리고 있다. 10년전 생사를 알 수 었던 대우가 소형차로 GM의 중요한 엔진으로 되살아났다가 다시 본사의 위기로 부침하는 실정이다. GM은 한때 종업원 70만명이 넘었으며 오랜 기간 자동차 산업 부동의 1위를 지켜왔으나 요즘은 바이탈 사인이 흔들려 보인다. GM의 생사는 앞으로 몇 개월 이내에 정해진다.

GM이 한 회사의 지배가 아닌 연방제처럼 움직이는 특성은 처음 빌 듀란트가 회사를 M&A하는 것으로 시작한 때부터다. GM이라는 이름은 1908년 뷰익의 지주회사로 윌리엄 듀란트가 장악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듀란트와 그 이후의 GM의 역사는 인수합병의 역사였다.

1904년 미시간주 플린트에서 마차 공장을 운영했던 듀런트는 쓰러져 가는 자동차 회사 `Buick'을 인수한다. 당시 뷰익의 연간 생산대수는 28대였다. 타고난 사업가 기질의 듀란트는 4년만에 뷰익을 연산 8820대를 생산하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자동차회사로 성장시킨다. 듀런트는 다시 1908년 `올즈 모빌'를 인수한 뒤, 뉴저지에 본사를 설립하고 회사 이름을 제너럴모터스(GM)로 바꾼다. 이것이 GM역사의 출발이다. 듀란트는 1908∼1910년까지 모두 25개의 회사를 인수한다.

부실화된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인수합병은 성공과 실패가 공존했다. 듀란트의 경영철학은 “사놓으면 그중 쓸만한 것이 몇 개는 있다”라고 할 수 있겠다. 가끔씩 문제는 심각했다. 1910년에는 모기업 뷰익이 판매부진에 빠지고 무리한 인수로 인해 자금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듀런트는 은행에서 지원을 받는 대신 경영권을 내놓았다. 하지만 듀런트는 또 다른 경주용 자동차회사와 연합하여 `시보레'를 창업했다. 시보레의 `시보레 490' 같은 차들이 대박을 터뜨리며 재기에 성공, 1916년 다시 GM사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1916∼1920년 사이 그는 14개의 회사를 또 다시 인수한다. 그러나 1920년대 말의 불황과 함께 GM이 다시 자금난에 빠지면서 그는 1920년 또다시 쫓겨난다.

듀란트 이후 자동차 업계의 흡수 합병은 중요한 성장방법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잘만 합병하면 기술과 사람 그리고 새로운 시장이라는 세 마리 토끼와 무엇보다도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성공적이지 않다면 그 반대가 되겠다. 듀란트 이후 GM은 느슨한 부족연맹처럼 유지됐다. 독립적인 색채는 회사들마다 강하게 남아있었고 협조도 잘 되지 않았다.

듀란트의 파산 뒤 대주주인 피에르 듀폰이 사장직을 맡았다가 이어 1923년 전문경영인 알프레드 슬론이 사장이 된다. 1957년까지 GM을 맡아 부동의 세계 1위 자동차회사로 만드는 주 역할을 한다. 몽상가 기질이 다분했던 듀란트와 달리 현실에 바탕을 둔 관리자 였다. 현실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해서 GM이 합병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었다. 시장의 수요를 발견하고 예측하며 다각화시키는 작업은 가속화 됐다. 영국의 복스홀(1925), 독일의 오펠(1929), 호주의 홀덴(1931) 등을 인수 또는 설립하고, 공산화 이전인 1928년 중국 상하이에 ``GM 차이나'를 세우고, 일본에는 1907년 오사카에 공장을 세웠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합병은 계속됐다. 한편으로는 회사를 정리하고 종업원을 내보내면서 다른 쪽으로는 유망한 회사를 인수하며 조직을 유지하는 와중에 자동차 산업은 점차 생산과잉과 과당경쟁으로 접어들었다.

팩맨처럼 기업을 집어삼키던 GM이 이제는 기업들을 내놓고 있다. 얼마 전 대우에 이어 오펠도 독일정부에 독립회사로서의 오펠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GM이 없어져도 자동차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새로운 답을 만들어 내겠지만 근본적인 질문은 남는다. 생산이라는 것은 돈의 문제만도 아니고 사람들이 참여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그동안은 실적과 돈을 버는 일만이 가장 중요했는데 이런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인 측면은 종종 간과되었으나 이제는 국유화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회적인 측면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책임도 권한도 거대 기업으로서는 버거운 문제이고 예민하기도 했던 문제다. 애써 피해왔으나 더 예민한 시점에 다시 조우하게 되었다. `기업의 개념'을 되묻고 사회의 시스템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근본적 정체성 문제다. 예민한 시점에 개인들은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고 `회사나 사회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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