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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간중국〈2〉-이 호텔 다시 올 일 없으니
주마간중국〈2〉-이 호텔 다시 올 일 없으니
  • 의사신문
  • 승인 2011.05.2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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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방문 둘째 날 일정을 시작하기 전 호텔 현관에서 찍은 단체사진. 이 사진 볼 때마다 객실의 고장 난 냉장고와 욕실의 녹물, 스프링 가라앉은 침대와 뿌옇던 유리진의 기억과 함께 퍼뜩 떠올랐던 우리병원에 대한 생각들이 늘 새롭게 떠오를 것이다.
중국에서 겪었던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상하이의 푸동공항을 나서면서 시작된 중국에 대한 기대는 숙소였던 쑤저우의 한 호텔에서 꺾였습니다. 호텔에 대한 첫인상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직원들도 친절했고 로비도 그런대로 좋아 보였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조금 낯설었지만 우리도 그리 오래 전 일은 아니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참았습니다.

방은 넓찍하고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짐정리를 하려고 불을 켰는데 많이 어둡습니다. 결국 방 안의 모든 불을 다 켜고서야 그럭저럭 정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냉기가 전혀 없습니다. 고장 난 듯 합니다. 시원한 물은 포기해야 하겠습니다. 물 끓이는 전기 주전자가 있으니 아침에 따뜻한 차는 한 잔 마실 수 있을 듯합니다.

욕실은 넓고 깨끗하게 보였습니다. 더운 물은 잘 나오는지 수도꼭지를 틀어보니 물빛이 맑지 않습니다. 녹물이 섞여 나오는 듯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더운 물은 잘 나오는 편이라 한 동안 물을 흘려보낸 뒤 샤워와 양치질을 했습니다. 욕실을 나오며 양치질은 생수로 할 걸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책을 좀 읽고 싶은데 전등이 너무 어두워 포기하고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습니다. 이번엔 침대가 문제입니다. 멀쩡하게 보였는데 누워보니 중간 부분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오늘 밤잠 편히 자기는 틀렸습니다. 시트를 벗겨 그냥 바닥에서 잘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참고 잤습니다. 그리고 밤새 뒤척였습니다.

모닝콜 벨 소리는 또 왜 그리 크고 높은지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아마도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계셨던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면서 늘 걱정 속에 잠들고 깨면서 생긴 마음의 병인지도 모릅니다.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 전화가 오면 늘 이랬습니다. 그 시간에는 어머니께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전화가 아니면 내게 전화할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상쾌하지 못한 기분으로 일어나 커튼을 젖히니 날이 참 맑습니다. 새소리도 들리고. 오늘 하루 일정도 그리 여유롭지는 못하니 약속한 시간에 대려면 부지런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식당에 내려가니 이미 일행들이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둘째 날인데 벌써 깻잎 장아찌, 김치와 고추장을 입맛을 돋우고 있습니다. 어차피 중국에 왔으니 음식은 철저히 현지 음식으로 먹어보겠다고 마음먹은 터라 맛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먹을 만은 했습니다. 우유를 한 잔 마시고 식사를 마치려는데 유리잔이 뿌옇게 보입니다. 안팎으로 손자국도 그대로이고. 결국 우유는 마시지 않고 식사를 마쳤습니다.

호텔 측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호텔에 다시 올 일은 없을 터이니 냉장고도, 욕실 녹물도, 스프링 가라앉은 침대도 그리고 깨끗하지 않은 유리잔까지 내가 관심 가지고 시간을 내어 수고하며 일일이 지적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문득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들도 이런 생각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불편하게 생각하는 일들이 한 둘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그들은 `이 병원에 다시 올 일은 없다'고 생각하겠지요.

오근식〈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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