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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활동가, 외과의사 - 정구충
사회활동가, 외과의사 - 정구충
  • 의사신문
  • 승인 2011.05.2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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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의학교육 및 사회활동 앞장선 외과학계 거목

정구충(鄭求忠)
정구충(鄭求忠)은 1895년에 충청북도 옥천에서 태어났다. 1908년에 계산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한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를 1913년에 졸업하였다. 관비유학생으로 일본 오사카의과대학을 1921년에 졸업하고, 오사카의과대학부속병원에서 외과 수련(副手, 助手)을 하였다. 1923년에 경상북도 안동도립병원 외과과장, 1925년에 황해도 해주도립병원 외과과장, 2년 뒤에는 평안북도 초산도립병원 외과과장을 역임한 후, 1928년에 다시 오사카의과대학으로 가서 결핵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32년에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33년부터 서울 종로3가에서 외과의원을 개원하였으며, 1935년에는 한성의사회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1939년에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외과교수로 부임하여 여성의학교육에 힘을 기울여 후진양성에 노력하였다.

광복과 더불어 경성여자의과대학 학장에 취임하여 학교발전을 위하여 진력하였다. 아울러 건국준비위원회 자문위원, 군정청 후생부 자문위원, 문교부 자문위원(의학교육), 문교부 의학교육심사위원 등 미 군정청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뿐만 아니라, 경기고등학교 총동창회를 조직하여 초대 동창회장이 되었고, 이후 17년 동안 회장을 역임하며 경기고등학교 동창회 활동을 활성화하는데 노력하였다. 아울러 경성여자의과대학의 학장을 맡아서 전문학교에서 대학으로 발전시키고, 학교기틀을 자리 잡게 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40년간 학교법인 진명학원(진명여자고등학교 법인)의 이사직을 맡았다.

1946년에는 사단법인 충북협회 회장을 맡았고, 이후 16년 동안 충청북도 활성화를 위하여 일하였다. 1948년에는 보건부 독립촉성위원회 부회장과 대한적십자사 조직위원, 1953년에는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장, 1960년에는 전국수해대책위원회 부회장 등등 다방면에 걸쳐서 사회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의료계에서는 대한외과학회 회장(1946), 대한의학협회 부회장(1953), 대한외과학회 자문위원(1958-1983), 대한의학협회 회장(1959), 국제외과학회 명예회장(1985) 등을 역임하였고, 1959년부터 6년간 사단법인 대한결핵협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세브란스의과대학 강사를 1953년부터 5년간 역임하였고, 1956년에는 서울대학교 후원회 회장직을 맡았다.

위와 같은 사회활동으로 교류범위가 넓어 의협신보에 1972년부터 14년 동안 틈틈이 `의계의 개척자'를 집필하여 기고하였다. 이를 묶어서 1985년에 단행본으로 `한국의학의 개척자(I)'를 출간하였다. 이에 앞서 1955년에는 `의료인이 본 구미'를, 1956년에는 `외과총론'을 저술하였다.

정구충은 1985년에 월남장을 수훈하였고, 이듬해에는 과학기술상을 수상하였다. 외과학계의 거장일 뿐 아니라, 사회의 저명인사였던 정구충은 91세를 일기로 1986년에 작고하였다.

집필 : 유승흠 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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