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6:29 (목)
상쾌함과 부모님의 품 느끼게 해주는 `산'
상쾌함과 부모님의 품 느끼게 해주는 `산'
  • 의사신문
  • 승인 2011.05.02 1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선화 한국여자의사회 학술이사

박선화 학술이사
어머니의 따스한 품 같은 곳, 아버지의 넓은 가슴 같은 곳 `산', 이름만으로도 아득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아버지는 운동을 참 좋아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함경남도 함흥 어촌마을에서 동태 장사로 학비를 마련하시면서 칠전팔기로 세브란스(연세의대)에 입학하셨다. 어릴 적부터 건강이 최고라고 항상 강조하시면서 여름이면 수영, 겨울에는 스케이트, 봄가을에는 등산을 다니셨고, 우리 남매들은 반 강제로 운동을 해야만 했다.

아버지의 별명은 호랑이. 겨울방학이면 효창운동장에서 운영하는 스케이트장에 다녀왔다는 티켓을 저녁에 확인받아야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여러 가지 운동을 좋아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교내 야구(소프트볼) 대회에 출전하여 우리 반이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투수를 한 적도 있다. 그렇게 운동을 좋아하다 보니 육상 선수가 되겠다고 했다가 혼이 났고, 태권도를 하고 싶다고 했다가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야단만 맞았다.

우리 어머니는 함경남도 함흥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동경제국 대학을 다니셨던 외삼촌의 영향으로 동경여자의학전문 대학을 졸업하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꽁지머리 여학생이 삼등기차를 타고 부산까지 가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힘든 의과대학 공부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어머니는 강인함 그 자체셨다. 서울로 피난 오셔서 서울역 근처에 지금 다니고 있는 `동성교회'를 세우는데 공헌하셨고, 나도 꼬마 때부터 다녔으니 어언 50년이 되었다.

아버지는 일요일에 우리 손을 붙잡고 산에 가는 것을 좋아 하셔서 주일을 지키고자 하시는 어머니와 가끔 충돌이 발생하곤 했다. 백운대 정상에 올라 인수봉을 바라보는 큰 바위 꼭대기에 서서 훗날 아버지가 가고 없을 때 아버지와 여기 함께 있었다는 생각을 하라는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여, 지금도 나는 산꼭대기에 올라 바위에 서면 항상 아버지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어린 시절에 우리의 놀이란 그저 뛰어 다니며 노는 것이어서 그런지 산에 가면 나는 아버지 먼저 뛰어 올라가서 기다리다 안 오시면 다시 뛰어 내려오는 일을 반복하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겨울에 도봉산에 올라가 도선사 근처에서 밥을 해서 찌개를 끓여 먹던 기억이 나는데 요즘에는 젊은 애들을 산에서 보기란 좀 어려운 것 같다. 나도 의과대학을 다니고, 애들을 키우고 사는 것이 바쁘다보니 오랫동안 산에 가지 못했었다.

우리 동기(고대의대 39회) 중에는 산을 좋아 하는 친구들이 꽤 많다. 2004년부터 우리 동기들은 매월 4번째 주 일요일에 등산모임(7581산악회)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다가 등산을 하고나면 며칠 동안 근육통으로 몸살이 나지만 마음은 정말 상쾌하다. 서울에 있는 북한산, 관악산을 비롯하여 전국에 있는 유명한 산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봄에는 북한산의 진달래길, 축령산의 철쭉동산, 문경 부봉 여름에는 바위와 물이 많은 내설악과 소금강,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설악산, 오대산, 문경 조령산, 주왕산, 겨울에는 눈꽃이 아름다운 소백산, 설악산, 한라산… 우리나라는 산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너무 아름다운 산들이 많고, 우리네 성격을 반영하듯 산행로의 경사가 빠른 곳이 대부분이다. 지방에 갈 때는 기차를 타고 가기도 하고 설악산과 소금강을 갈 때는 버스를 대절하여 가기도 했다.

2004년 6월, 설악산 공룡능선에 도전했던 기억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금요일 저녁 업무를 끝내고 서울을 출발해 10시에 오색약수 숙소에 도착, 전야제로 맥주를 먹으며 수다를 떨다가 12시경에 잠이 들었고, 새벽 3시에 일어나 산행을 준비하였다.

운동을 좋아하신 아버지 덕에 자연스럽게 운동·등산 즐겨
2004년 동기들과 등산모임 시작 우리산의 아름다움에 빠져
설악산 공룡능선과 눈으로 뒤덮인 한라산 절경에 `황홀'

외설악 신흥사를 출발하여 양폭에서 아침으로 누룽지와 감자전을 먹고, 신선대에 올랐는데 파란 하늘 아래 발밑에 구름이 있고, 푸르름과 뾰족한 바위들이 조화를 이룬 절경은 천국에 온 것 같았다. 왼쪽으로는 대청, 중청, 소청, 서북능선, 용아장성의 칼날바위들과 가야동계곡이, 앞으로는 범봉, 천화대릿지, 1275봉, 나한봉, 마등령, 공룡의 등뼈와 갈비뼈 들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천불동계곡과 화채능선, 멀리 울산바위와 동해바다가 펼쳐지는 장관이었다. 그때 내 산행 실력은 6시간 정도 걸을 수 있는 수준으로 나는 신선대까지 올라갔다가 하산할 계획이었는데, 1시간 정도 절경에 감탄하면서 바위에서 쉬는 동안 새로운 기가 온 몸에 샘솟는 것을 느꼈다.

◇문경 부봉에서
그 이후 속도는 좀 느렸지만 심한 오르막과 내리막의 공룡 등뼈 능선을 넘고 넘어 나한봉을 거쳐 마등령을 넘고, 금강굴 옆으로 비선대에 내려오니, 공룡 완주를 축하하는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15시간의 기나긴 산행동안 먹은 것은 누룽지와 라면, 그리고 간식거리가 전부였다. 그 후 산에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한테 공룡능선을 넘지 않고는 산을 얘기하지 말라고 목에 힘을 주곤 한다.

지난 겨울은 눈이 무척이나 많이 와서 대부분 산들이 아름다웠을 것이다. 더욱이 겨울의 한라산은 숨이 막힐 정도로 황홀하였다. 제주의 2월은 동백꽃이 만발하고, 간혹 유채꽃이 활짝 피어 있는 곳이 있는데, 한라산 1100m 고지를 넘어서면 눈으로 뒤덮인 세상이 된다. 지난 2월에 영실에서 등반을 시작했는데 주차장 까지 가기도 전에 눈으로 도로가 폐쇄되어 2km 정도를 더 걸어야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아이젠을 신발에 끼고 눈덮인 숲길을 걷는 기분은 정말 즐거웠다.

윗세오름으로 가는 길은 항상 그렇듯이 무지막지한 바람으로 양쪽 볼이 빨갛게 되었고 귀에 동상이 걸리는 것 아닌가 걱정할 정도로 살을 에이는 것 같았다. 혹한의 거센 바람을 헤치고 윗세오름 휴게소에서 먹는 사발면 한 그릇은 정말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며, 행복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됨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한라산은 눈이 많이 싸여 길이 안 보일 경우를 대비하여 길가에 빨래줄 같이 나무 위에 매어 놓아 길이 있는 곳임을 알리고 있는데 어떤 곳에는 그 줄이 발아래 있을 정도로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산꼭대기 키 작은 나무들은 눈 속에 파묻혀 눈밭을 이루었고, 하늘은 높고 파래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우리 일행은 백록담 남벽을 거쳐 돈네코로 향했는데 이 명칭은 돼지가 물 먹는 냇가라는 곳으로 숲을 따라 물이 많아 봄이 되면 질퍽해 지는 곳이다. 겨울의 돈네코 가는 숲길은 바람 한 점 없이 아늑하여 그 많은 물길들로 인해 온 세상이 동화책 속에 나오는 눈으로 만들어진 숲속 세상이었다. 아득한 꿈속을 헤매이는 것 같은 황홀감 속에서 이 숲길이 영원하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리가 아픈지도 몰랐다. 윗세오름에서 돈네코로 가는 하산길은 오후 1시 이후가 되면 하산이 통제되는 길로 남벽분기점에서 7km를 더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산은 신비한 기를 불어 넣어 주는 곳으로 매 주말이면 가고 싶지만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야 하니,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일요일 아침에는 KBS에서 방영하는 영상앨범 `산'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앞으로 히말라야 트레킹도 가고 싶고, 일본의 북알프스도 가고 싶은데, 무릎이 허락할지 걱정이 앞서는 나이가 되었다.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는 올해 신년 예배에서 전 교인에게 `감사노트'를 선물하셨다. 잠들기 전에 일기 쓰듯이 하루에 다섯 가지의 감사한 일을 생각해서 감사노트에 적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조그만 일에 더 소심해지고 걱정이 앞서는 일이 많아지는데, 감사한 일이 뭔가를 생각하며 적다보면 불안했던 마음이 편안한 행복감으로 바뀌게 되는 것 같다. 신앙심으로 길러주신 어머니, 체력을 강조하여 항상 운동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오늘은 이 글쓰기를 했다는 것에도 감사하다는 한 줄이 들어 갈 것이다.

<박선화 한국여자의사회 학술이사, 고려의대 해부학교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