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의 차들〈1〉
벤츠의 차들〈1〉
  • 의사신문
  • 승인 2011.04.2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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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후 벤츠의 부활을 연 `폰톤'

차체와 엔진만 던져주면 시트부터 시작해서 외관까지 다 카로쩨리아가 만들어주던 페라리와는 달리 벤츠는 완성차 메이커였다(물론 완성차메이커가 완성차를 카로쩨리아에게 던져주면 카로쩨리아는 완전히 다른 차들을 만들어줄 것이다). 벤츠나 일반적인 메이커에게 자동차는 확실한 공산품이다.

유럽의 차들이 대 변화를 겪은 것은 2차 대전이 결정적이었다. 포드가 T형 모델을 생산한 이후 대량생산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지만 본격적인 대량생산은 GM의 영향을 받은 이후라고 보아야 한다. 자동차 산업은 완전한 거대사업, 국가의 기간산업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차들은 많은 자본과 두뇌가 투입되는 중요한 상품으로 변했다.

이제 벤츠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2차 세계대전 정도로 돌아가 보자. 전쟁 때에는 새로운 차종이 개발될 여지가 없었다. 전시에 메이커들은 탁월한 프로펠러 엔진들을 개발해야 했다. 벤츠는 유보트의 엔진을 개발했고 항공기용으로는 Daimler-Benz DB 600이라는 엔진을 개발했다. inverted V12 라는 형식으로 헤드가 아래에 위치한 엔진이었다. 알파로메오와 카와사키 중공업(스바루의 전신)이 이 엔진을 라이선스 생산을 했다. 메서슈미트와 하인켈 전투기가 이 엔진을 달고 하늘을 날았다. 영국의 롤스로이스 역시 멀린 엔진을 개발해서 대항했다. 이 당시 이미 DB600에는 인젝터가 달려 있었다. 롤스로이스의 엔진은 전쟁초기에는 기화기(카뷰레이터)를 달고 날았다. 나중에 이 엔진은 무스탕에 장착하기 위해 라이선스되어 미국에서 생산됐다.

항공기 엔진들에 비하면 차량의 엔진은 별다른 진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레이싱은 1930년대 이후 독일이 장악했고 이태리와의 간격을 벌리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기전부터 레이싱 엔진을 개발하고 있을 인재들은 무기와 관련된 연구로 차출되기 시작했다. 막상 전쟁이 끝났을 때 벤츠에는 그 전까지의 초고가 럭서리 차종과 그보다는 조금 대중적인 벤츠들이 있었다. 차종은 거의 남지 않았다. 얼마나 변화가 없었는가하면 독자들이 쉰들러리스트에서 본 것 같은 구형 벤츠가 20년 동안 유일한 모델이었다. Mercedes-Benz W136(그리고 조금 대형이지만 모양이 유사한 W191)이 전쟁의 시작과 전쟁후 10년 동안의 벤츠의 대표적인 차종이었다. 1935년부터 1955년까지 벤츠에는 사실상 두 차종밖에 없었다. W136은 4기통 엔진이었고 출력도 높지 않았다. 38마력의 디젤엔진과 약간 더 출력이 높은 가솔린 엔진이 주력이었다. 이 정도면 당시의 미국차들에 비해 전혀 럭셔리하다고 볼 수 없다. 만듦새는 상당히 좋았다. 벤츠는 비싸지만 품질은 좋았다.

20년 동안 한 가지 스타일링을 고수하고 난 후 다음의 차종은 폰톤(ponton)〈사진〉이었다. W120/W121 폰톤은 전후의 새로운 차종을 대표하는 스타일링이었다. 사진에서 보듯 W170과 폰톤의 차이는 확연하다. 벤츠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폰톤은 전후의 차들의 스타일링을 정했다. 앞바퀴의 펜더가 차폭과 비슷해지고 떼고 붙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차량의 디자인은 폰톤 스타일로 인해 완전히 변했다. 차체의 설계도 변해 3박스카라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변하는 계기가 됐다. 엔진룸과 탑승공간 그리고 트렁크는 완전히 다른 구획으로 분리됐다(요즘은 다시 탑승공간과 트렁크의 관계가 애매해지고 있다). 폰톤은 ponton style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자동차 디자인에서 가끔씩 복고풍이 불때마다 폰톤 라인을 따른다는 식으로 불리곤 한다.

전쟁이 끝나고 경제가 부활함에 따라 차의 수요는 늘어났고 벤츠의 수요도 늘어났다. 다른 나라에서도 벤츠를 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폰톤은 40만대 이상 팔 수 있었다. 폰톤의 대다수는 4기통의 직렬엔진이었고 배기량도 크지 않았다. m121이라는 1.8리터에서 1.9리터 엔진이 주종이었고 om621이라는 디젤 엔진도 사용됐다. 190SL이라는 로드스터도 2만대 이상 판매됐다. 폰톤은 독일차들이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이 끝나고 벤츠에는 사실상 1962년까지 폰톤만이 있었다. 새롭기는 했지만 올드 스타일인 아데나워 모델이 있었지만 이 차는 극소수만을 위한 차였다. 독일의 경제나 벤츠의 생산도 1960년대 초반이 되서야 간신히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거의 부서지긴 했지만 생산설비가 남아있던 신델핑겐(Sindelfingen)의 공장이 생산의 주력이었고 만하임이나 다른 곳의 설비들은 복구하는 도중이었다. 그만큼 파괴를 위한 폭격은 집요하고 철저했다. 전쟁이 끝나고 23000명이 안되던 신델핑겐의 주민중에 벤츠가 고용한 사람은 19000명이었다고 전한다.

폰톤은 지금도 굴러다니는 차종이 있고 http://www.mbzponton.org/에는 이 차종에 관한 많은 이야기와 자료들이 적혀있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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