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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삶의 활력과 멋진 추억 준 키나발루여!
내게 삶의 활력과 멋진 추억 준 키나발루여!
  • 의사신문
  • 승인 2011.04.2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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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성<성북구의사회 회장> - 키나발루의 추억

◇키나바루 남봉

노순성 회장
아찔할 정도의 가파른 화강암지대. 화강암치고는 검은색이 많아 영화 `혹성탈출'의 외계별처럼 느껴지며 죽은 자의 안식처라는 별명이 붙었고, 토착원주민 `카디잔 족'은 죽은 자를 숭배하는 장소라 하여 `아 키나발루'라 불린다.

태평양의 속해(屬海)인 남중국해(南中國海)를 조망하는 코타키나바루市(보르네오섬의 서북단에 위치)의 Sutera Harbour 리조트 Pacific Hotel을 오후 늦게 출발하여 키나발루 산으로 가는 산악도로에서 잠시 바라다보았던 산등성이 위로 군계일학 홀로 에펠탑(300m)보다 몇 배 더 높이 우뚝 선 거대한 바위산. 그리고 키나발루 국립공원에 도착하여 입산수속을 하면서 전망대에서 바라보았던 비에 젖어 차갑게 불끈 솟아 있는 千칅斷崖(천인단애) 험상궂고 기괴(奇怪) 거대한 검은 암괴(岩塊)를 보는 순간 그 장엄한 위용에 위압감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부터 가랑비, 장대비를 맞아가며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깐씩 격렬하게 뛰는 심장을 다독이면서 빗물이 흘러 내려오는 굽이굽이 가파른 정글 산길을 해쳐가며 아침부터 거의 쉬지 않고 5시간을 내쳐 걷고 걸어서 3272.7m 고지의 라반라타 산장에 도착하니 비가 멎고 드디어 눈부신 햇살 아래 산장 뒤로 흰구름 허리띠를 두른 약 800m 높이의 지대한 암괴가 우람하게 병풍처럼 떡 버티고 서있다.

오후 내내 내린 비 때문에 산정(山頂)에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춤추듯 수많은 폭포가 검은 암벽을 타고 흘러내려 장관이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 2시에 기상하여 조식을 간단히 끝내고 겨울 등산복장을 갖추고 밖에 나가 하늘을 보니 먹구름 사이 틈새로 별이 몇 개 반짝이고 있어 은근히 해돋이가 기대된다.

행동이 느린 일행이 있어 3시가 되어서야 산정을 향해 가파른 비탈길을 급히 오르기 시작했다. 밤에도 비가 왔는지 너덜 길 같은 경사로 바닥으로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온다. 헤드랜턴으로 어둠을 뚫고 발아래 앞길을 비추며 거친 숨을 내뿜으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걷는데 날은 다시 흐려지면서 강풍이 불고 가랑비가 내린다.

가파른 좁은 나무계단과 돌계단, 너덜지대를 지나니 등산로는 30∼45도 이상의 광대한 암벽 비탈(Slab)면이 오랜 풍화작용으로 조각조각 물고기 비늘처럼 들떠 있는 거대한 덧바위(Flake)들 위로 나있다. 화강암바위벽(Wand), 너럭바위(Terrace)의 발판(Stance), 바위턱(Hold), Crack(바위의 갈라진 틈새)을 이용하여 날쌔게 올라갔다. 다른 사람들은 바위 곳곳에 설치되어 연이어 길게 아래로 늘어진 로프를 잡고서 분주하게 오른다. 여기저기 곳곳에 돌무더기(Scree)들이 쌓여있고 바위웅덩이(Niche)가 보인다. 아직도 간밤에 내린 빗물이 바위 사면위로 줄줄 흘러내려가고 있다.

등산로 사면(斜面)끝은 Knife edge(칼날능선), 그 너머는 90도 민탈(Face) 천인단애다. Summit인 Low's Peak(4095.2m)주위에 기둥(Pilla)型 전위봉(Gendaromil장다름, 호위봉)들인 당나귀봉, 남쪽봉 등 11개의 독특한 바위 봉우리와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정상부는 암능 길이가 0.8km에 달하며 흙 한줌 없다. 로우스피크에 사람들이 10여명 모여 있고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 구름에 가려 일출을 보지 못해 아쉽다.

전전날 공원사무소(해발1558m)에서 봉고차로 분승 4.5km를 이동해 메실라우 리조트로 가는 길에 원주민 마을을 통과했다. 키나발루국립공원 내 키나발루산 1800m고지 경사면에 있는 코타벨루트(힐 요새)는 일요일에 서는 장과 조랑말 경주로 유명하며, 이곳에 삶의 터전으로 마을을 형성하여 쌀과 기타 곡식을 화전 농경식 재배농사로 짓고 살아온 `카디잔, 두손 족'은 선조들의 넋의 안식처라는 믿음 때문에 키나발루산을 지키는 사명을 갖고 살아왔다.

저녁 6시경 메실라우 리조트(해발 2000m) 레스토랑에 도착하여 스팀봇(Steam boat)해물 샤브샤브로 저녁식사를 든든히 하고 샤워실, 세면대, 좌변기, 난방까지 잘 갖춰진 총 196명 수용능력의 Twin bed room 3실로 구성된 아늑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의 산속 여러 채의 Lodge에 일행이 각각 방을 정하고 등산에 필요한 옷가지와 배낭을 챙기고, 일찍 취침.


`죽은자의 안식처' 별명답게 험상궂고 장엄한 위용에 위압
바위벽 지나 등산로 오르니 아름다운 경관 끝없이 펼쳐져
야생화에 둘러쌓인 등정의 땀방울로 일상의 피로 다 씻겨


아침 7시에 기상하여 나머지 짐들은 가이드를 통해 보관소에 맡기고, 조식도 American breakfast라지만 뷔페식이다. 점심도시락(쌀밥, 야채샐러드, 삶은 계란, 햄, 과일)을 각자 배급받아 챙기고, ID카드(정상까지 등정을 확인키 위해 산행中 4∼5번 check)를 줄로 연결 목에 걸고, 현지 한인 등산가이드와 포터를 앞세우고, 후미엔 서울서 수행한 가이드가 서고, 일행 17명이 일렬로 열대우림의 키가 큰 나무들로 우거진 숲길 트레킹을 시작했다.

중간의 7개의 쉼터에서 수시로 식수를 공급 받으며, 5번째 쉼터 라양라양 산장을 지나 타카로드 쉼터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여기서부터 등산로 경사가 더욱 가파르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소나기로 변하고, 나무계단(폭이 좁은 흑단木 비슷한 단단한 각목을 써 만든) 또는 돌계단이 끝없이 이어져있다.

키나발루 국립공원(면적 745km²)에는 나뭇가지에 노랗게 솜사탕처럼, 수염처럼 붙어 기생하는 난(蘭)을 비롯하여 1500여종의 난초와 26종의 만병초, 40여종의 떡갈나무, 희귀식물인 히비스커스, 네펜데스(식충식물), 그리고 한 그루에 기생식물이 수십 가지 기생하는 나무들로 밀림을 이루어 등산객보다 전세계 식물학자들이 더 많이 찾는다고 한다. 열대우림, 온대림, 침엽수, 고산식물까지 세계 동식물 종의 30%가 서식, 분포되어 있다. 카나발루 산의 저지대는 열대지역, 중간지대는 온대지역으로 참나무, 무화과나무, 산철쭉나무, 야행나무, 대나무, 고사리, 유렵도, 소철, 파초, 산딸기, 그리고 고지대에는 침엽수, 고산식물(고사리, 이끼류)등이 서식하는데 산행 중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희열을 느낀다. 이름 모를 향기 나는 흰꽃들… 맑은 날은 산 위에서 아래로 층층이 여러 층의 구름 띠가 형성돼 신비롭다.

보르네오섬의 척량(脊粱)산맥(원줄기가 되는 큰 산맥)인 이란산맥의 북쪽 끝에 이어진 키나발루산맥 가운데에 군계일학으로 우뚝 솟아있는 키나발루산은 150만 년 전 수백 년 동안 지표아래 식어있던 화강암이 약한 암반을 뚫고 위로 솟아 오른 뒤 폭우와 얼음, 빙하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만들어 졌으며, 매년 5mm씩 솟아오르며 현재도 여전히 지각운동을 하는 `살아있는 산'이다.

작년 3월 전문산악인 엄홍길 씨가 등산객을 모집하여 키나발루 정상등정을 했다하여 더 유명해졌다.

우리나라는 매년 실업자 수가 증가해 100만 명의 실업자시대(실제로 330만명), 산악국가로 전국에 수많은 명산·고봉과 수려한 계곡 때문에, 등산지원센터의 보고서(2008.11월)에 의하면 누적 국내등산인구가 2000만 명으로 증가, 국민 2명 중 1명이 등산을 취미로 한다. 소나무 등 침엽수에서 발생하는 산소, 피톤치드, 음이온 때문에 성인병치료와 건강관리의 목적과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되어, 스포츠개념으로도 산을 오른다. 전체 등산인구의 9%가 나 홀로 등산객. 요즘은 유명한 산마다 둘레길 등의 트레킹 코스의 개발 붐으로 등산관련 모임만 1만8000여개, 한 달에 한번 이상 등산인도 300만 명이며 이중 20%는 암벽등반자다. 암벽·빙벽·해외등반 즉 전문등반이 최고의 등산 가치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우리나라 등산계에 히말라야 8000m 이상급 14좌 완등자만도 남녀 10명에 달한다. 한국인의 해외 명산트레킹은 초창기인 80년대 후반에만 해도 대만의 `옥산(3952m)' 등 가까운 나라가 주대상이었는데 일본·중국의 산들과 말레시아의 키나발루산을 비롯하여 유럽·아프리카, 북미, 네팔, 히말리야 지역으로 확대되어 전세계 고봉과 설산이 트레킹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고산등산을 알파니즘(Alpinism), 고산등산가를 알피니스트(Alpinist)라 한다.

마라톤인구는 300만명(풀코스는 매년 4∼5만명)이며 매년 마라톤경주 중 10명이 사망한다. 매년 국내에서 암벽등반 중 죽는 사람은 10명 정도뿐이라 하니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의 1/10도 안된다. 암벽등반은 절벽이라는 위험과 고난의 독특한 환경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모험으로 초긴장감과 떨림 때문에 그리고 성취감 때문에 아드레날린과 엔돌핀이 번갈아 분비되어 생겨나는 즐거움과 쾌감이 주는 매력이 있다.

필자는 험한 바윗길을 바위면에 있는 손잡이나 바위턱, 발디딤을 써서 쉽고 깨끗한 방법으로 오르내리는 법과 로프를 이용한 매듭·확보·확보걷기·하강 등 기술습득을 위해 2006년 여름 `열린캠프' 정규등산학교에 입학하여 고된 실기훈련을 받고 졸업했다.

지난 6년간 가정 사정으로 좀처럼 해외원정 산행할 시간이 없어 속을 태우다 키나발루 산행을 전초전으로 삼아 잠자던 욕망을 폭발 시키려한다.

메실리우게이트에서 라반라타 산장까지 5시간, 산장에서 Summit까지 다녀오는데 4시간, 하산하여 팀폰게이트(1866m)까지 3시간. 키나발루산 등정 인증서(No. 65252)를 받았다.

자정 쯤 코타키나바루를 출발하여 3월30일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 당일 환자 진료를 개시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코타카나발루시 슈트라하버 리조트의 고급호텔에 투숙하여 호텔과 요트선착장 주변에 조성된 진기한 수목(樹木)과 꽃들, 긴 야외 수로의 열대어들. Sea Quest 모터보트 해상드라이브, 마누깐섬 해변의 맑은 물에 무리지어 노닐던 열대어들, 스쿠바두와 스노쿨링, 왕복 3km 거리의 정글 트레킹과 트레일의 체험, 식당마다 아름다운 조경과 풍족히 제공되었던 육·해·공 바비큐와 스팀 봇, 뷔페음식 그리고 열대과일들(두리안, 망고, 파인애플망고, 스틴, 수박 등), 모두 아름다운 내 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겠지… 클리닉 문을 닫고, 여행사에 신청하여 나 홀로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들과 함께한 고산등정.

고산증도 느끼지 않았고, 잘 먹고 마시고 해외 고산트레킹 마니아 17명 일행 모두가 한 가족처럼 다정다감하게 많은 대화와 정을 나누며, 멋진 추억을 만들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다.

노순성 <성북구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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