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의 획득 <9>
프리미엄의 획득 <9>
  • 의사신문
  • 승인 2011.04.2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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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으로 불렸던 마스터피스 `벤츠 W 140'

요즘은 일종의 불경기다. 기름값이 조금 내렸다고는 하나 많은 사람들이 기름값과 오르는 물가에 치어 차들을 잘 타고 다니지 않을 뿐 아니라 과감한 정리를 하기도 한다. 타보고 싶던 차들이 너무 많이 흘러나와 정신이 없을 정도다. 웬만한 고장이라면 기꺼이 고쳐 타고 다닐만한 차종들이 헐값에 나오지만 사람들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매물에 대한 댓글도 몇 개 달리지 않는다. 기껏해야 쿨매라고 이야기하는 정도다.
필자가 얼마 전 란치아 카파를 구입하고 차에 대해 평가할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W124 마스터피스와 BMW의 구형 E34가 부품차 수준의 가격으로 나왔다. 완벽한 상태는 아니지만 타보고 싶던 차종들이라 고민이 생긴다. 1990년대의 가장 중요한 차종들을 포기하는 것은 유감이다. 너무 늦기 전에 타보았으면 하지만 아무리 싸더라도 차를 1년에 2대 구입하는 것은 역시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그러니 고민중인 필자가 이 차들의 주인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너무 저렴해서 호기심에 이끌린 누군가가 사갈 것은 분명하다.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지만 당분간은 사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현재의 불경기에 준하는 상황이 진행 중이라면 필자 역시 나홀로 편하게 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시간도 없다. 음반하나 마음 편하게 들을 수 없는 처지에 차량의 꾸준한 정비는 때로는 드림에 가깝다. 영화도 볼 시간을 따로 내야 할 만큼 정신이 없으면서 머릿속은 W124를 테스트드라이브 하는 꿈을 꾸고 있다. 요즘은 정말이지 꿈이다.

이런 갈등을 머릿속에서 일으키고 있지만 필자는 나중에라도 벤츠의 W124와 W140을 타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요즘의 벤츠는 몇 번 시승해 보기도 했지만 이 차들을 과연 돈을 주고 사서 타고 다닐지는 잘 모르겠다. 그다지 특별하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의 두 차종은 꼭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당시로서는 너무 꼼꼼하게 만들었다고도 하고, 지나치게 공을 들여 만들었다고도 하며 가격도 파격적으로 비쌌던 차종들이다.

물론 지금은 가격이 상당히 싸다. 워낙 튼튼하게 만든 차들이라 주인이 꼼꼼하게 관리만 해왔다면 큰 무리 없이 타고 다닐 수 있는 차종이기도 하다. W124나 W140은 우리나라의 체어맨과 부품이 호환되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종의 프리미엄 차종이니 유지비가 아주 저렴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난번에 적었던 페라리와 벤츠는 많이 다른 성격의 차다. 페라리가 서킷을 달리다가 도로로 튀어나온 차라면 벤츠는 그냥 무난하게 탈 수 있는 차다. 원래는 고장도 별로 일으키지 않으며(실제로는 고장도 종종 일어난다) 적당한 달리기 성능에 편안한 실내구조 그리고 튼튼하다고 알려진 차체와 안전장치들이 붙어있는 차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페라리처럼 페달을 밟으면 7500RPM 이나 9000RPM까지 곧바로 솟구치도록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액셀을 밟으면 RPM은 꾸준히 올라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체어맨도 상당히 비싼 차로 발매되었지만 초기의 체어맨은 W124의 차체를 조금 키운 차량이었다. 디자인은 E클래스인 W124보다 S클래스인 W140을 더 많이 의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크기는 W140이 더 크며 편의 장치도 체어맨보다 W140이 더 많다.

필자의 친척중에는 W140을 타는 사람이 몇 명 있다. 그중 하나가 건설업을 하는 막내 삼촌이다. 삼촌은 예전에 어떤 재벌 건설회사의 회장이 타고 다니던 차가 너무 부럽게 보였던 기억이 있어 어느 날 중고 W140을 샀다고 한다. 신형 S500을 사도 충분한데 W140을 산 이유를 묻자 차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한다. 충분히 삼촌다운 이유다. 회장이 타던 차라 부러웠던 것이 아니라 그 디자인과 차의 분위기가 부러웠다고 한다. 요즘도 만족하고 타고 다니니 차는 좋은 주인을 만난 셈이다.

필자는 S500을 몰아 보았지만 꽉 막힌 강남에서는 기름값에 질려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엔진도 V8은 너무 복잡해 보인다. 한 급 위인 S600은 V12로 이렇게 복잡한 엔진은 솔직히 손을 대기가 무섭다. 필자는 그보다는 S320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예전에 다이애나비가 사고당시 탔던 차량이 S320이었는데 이 차의 엔진은 체어맨 600과 같다. 직렬 6기통 3.2L 엔진이다. S500 보다는 연비가 착하다. 체어맨 600은 몇 번 몰아본 경험이 있다.

글을 쓰며 가볍게 적고 있는 W140은 개발비와 개발 시간 그리고 새로운 장치의 적용 때문에 역대 벤츠중에서 가장 비싼 차종의 하나로 남아있다. W124의 연구 결과를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10년 정도의 개발시간이 들어갔고 개발비용은 10억 달러가 넘게 들어갔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 제일 비쌌던 S클래스인 W126(SEL 차종으로 1980년대에는 공포스러운 가격이었다) 보다 더 비쌌다. 다른 경쟁자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ESC(Electronic Stability Control) 같은 기술을 처음으로 적용하기도 했고 도어와 트렁크를 닫을 때 파워 어씨스트를 적용했다. 지금은 프리미엄급에서는 당연한 기술이지만 당시에는 첨단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비싼 기술이었다.

W124도 개발비와 시간이 많이 들어간 것은 마찬가지였는데 그 전의 W201(190E)부터 생각하면 상당히 오랜 기간 돈을 부어가며 개발한 것은 틀림없다. W124는 차체의 설계와 안전성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도입했고 오프셋 충돌에도 안전하게 살아남는 기준을 마련했다. 고장력 강판의 사용에 있어서 적극적이었다.

요즘은 당연한 기준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파격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결국 W124와 W140은 그 다음 나오는 많은 차종의 교과서가 된다. 교과서 역할을 한 사례의 리스트만해도 몇 페이지는 적을 수 있다. 물론 시행착오의 리스트도 꽤 많이 적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운전성능도 안정적이며 교과서적인 수집가치를 가진 차량을 놓치는 것은 너무 아쉽지만 당분간은 정신없이 바쁘니 어쩔 수 없다. 언젠가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차분하게 엔진을 뜯고 맞출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1980년대와 90년대의 중요한 차량 개발 히스토리를 적을 정도의 시간은 있다. 앞으로 몇 번에 걸쳐 벤츠의 차량 이야기를 적으려고 한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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