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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숲을 볼 수 있게 `전체 그림'을 그려주자
환자가 숲을 볼 수 있게 `전체 그림'을 그려주자
  • 의사신문
  • 승인 2011.04.0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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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 〈12〉

얼마 전 개원가에 계시는 성형외과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필자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선생님들이 클레임 환자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남에 있는 어떤 성형외과 원장님은 한 달 수입이 몇 억이 되지만 그 중 꽤 많은 양을 클레임환자 처리 비용으로 쓴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같은 개원가라도 내과나 이비인후과나 가정의학과 같은 병원들은 클레임 환자들이 단순히 성격이 까다롭거나 지적수준이 낮거나 막무가내로 처방을 해달라고 조른다거나 혹은 바쁜 병원 현실을 탓하며 의사나 간호사의 태도를 지적하는 정도인 경우가 많다. 종종 기존에 먹던 약보다 가격이 높다거나 검사 결과가 괜찮은데 왜 검사를 받으라고 했느냐 따지는 환자들도 있지만 그런 환자들 역시 환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히 설명해주면 크게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개원가에 있는 성형외과는 외상복원이나 치료보다는 대부분 미적인 용도로 성형을 하기 때문에 치료 결정권을 환자가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보니 수술 결과에 대해서도 환자가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성공과 실패를 섣불리 단정짓는 경향이 있다. 의사 선생님들이 스트레스가 큰 이유도 수술 결과가 의사가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환자가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다.

일주일 전에 쌍꺼풀 수술을 하고 아직 부기가 한 참 남아있는데 환자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본인은 자연스러운 쌍꺼풀을 원했는데 어색하다고 클레임을 걸거나 지방흡입시술 후 다시 살이 쩌 가지고 와서는 환불을 요청하는 경우 등 실제 수술결과 자체와는 무관한 클레임이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클레임을 줄이기 위해서는 미리부터 환자가 당장의 수술 과정만이 아니라 수술 후의 변화과정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전체 치료과정을 설명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럴 때 유용한 설명기법이 바로 홀-파트(Whole-part)기법이다. 홀-파트 법은 전반적인 치료 과정에 대해 미리 설명해준 다음 현재의 시술, 치료에 대해 부분적으로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이다. 곧 이번 치료 후에 무슨 치료가 기다리고 있고 앞으로 어떤 치료를 받고 어떤 식으로 생활해야 하는지 등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가 당장의 치료를 이해할 수 있고 더 열심히 치료받을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해 줄 수 있다. 나아가 혹시 현재 치료가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다음 치료만 끝나면 된다는 목표를 세울 수 있기에 인내심을 갖고 견딜 수 있게 된다.

일례로 임신부가 10개월의 시간을 잘 지낼 수 있는 것은 임신 초기-중기-말기라는 10개월이라는 시간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 10개월이란 시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있기에 각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고 태아의 발육 순서에 따라 각 시기에 특별히 주의할 사항들이 있음을 알고 열심히 준수할 수 있게 된다. 곧 이처럼 환자들에게 치료나 시술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해주며 전체 숲을 바라 볼 수 있게 해준다면 환자는 전체를 보지 못했을 때보다 의사의 설명을 쉽게 이해하고 열심히 치료에 따를 수 있다.

의료 전문가인 의사는 환자가 질병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며 어떤 식으로 치료해서 얼마만큼 좋아질 수 있는지를 의학적 이론은 물론 그 동안 수많은 환자 케이스를 통해 임상으로 직접 경험했다. 바로 환자의 치료에 대해 전체적인 숲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환자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다시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환자가 이 고비만 무사히 잘 넘기면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환자는 의사처럼 전체 숲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다. 그래서 지금 당장의 고통과 괴로움을 참아내지 못하며 실천이 쉽지 않은 금연이나 식이요법 등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의사와 환자의 이러한 시각 차이를 이해하고 환자도 전체 숲을 바라 볼 수 있도록 적절히 도와주어야 한다.


전반적 치료과정과 부분 상세 설명하는 `홀파트 기법' 사용
현재 고통 이해·열심히 치료받으려는 동기부여 줄 수 있어
환자는 의학지식 없어 병 진행상황 알 수 없음을 이해하자



실제 많은 의사 선생님들이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바로 환자가 완전히 나을 수 있는데 중간 치료 과정에서 상태가 조금 호전되면 그것에 만족하고 치료를 중단해버려 다시 나빠지는 경우다. 이제 한 고비만 넘기면 끝이 보이는데 그것을 참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어 다시 상태가 원점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환자에게 전체를 볼 수 있는 Whole-Part 법을 이용한다면 환자는 본인이 현재 어디까지 와 있는지 앞으로 완전히 치료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얼마만큼 더 가야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마라톤 선수들이 마라톤을 하며 죽도록 힘이 들어도 이제 저 언덕만 넘으면 주경기장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죽을힘을 다해 뛰는 것과 같다. 만약 마라톤 선수들이 마라톤을 하면서 앞으로 종착점까지 얼마만큼 남아있는지 현재 자신이 어느 정도 위치까지 달려 와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면 몇 42.195km나 되는 거리를 달리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을지 모른다. 환자도 그렇다. 환자의 병이 오랜 치료를 요할수록 혹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할수록 치료 과정의 전체를 그려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필자에게 교육을 받은 선생님 중에 한 분은 자가 지방흡입으로 유방 확대시술을 시행하는데 수술 후에 환자에게 웃으면서 반드시 이렇게 설명해준다. “지금은 퉁퉁 많이 부어있는 상태라서 환자분 입장에서는 기대 이상으로 큰 가슴이 만족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너무 좋아하시기는 이르고요. 앞으로 조금 더 부어올라 커지다가 3개월 정도 후에 부기가 완전히 빠지면 우리가 애초 수술로 계획했던 정도의 (지금보다 작은) 사이즈가 나올 것입니다. 자가 지방을 넣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고 자연스러운 대신 환자 분이 수술 후에 살이 빠지면 가슴도 같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좀 미안한 얘기지만 너무 살이 안 빠지도록 주의하시고 오히려 전체적으로 살짝 살이 오르면 수술 결과에 더욱 만족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식으로 설명해준다. 의사가 수술 직후에 수술 후 변화 정도에 대해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주기 때문에 환자가 부기가 빠진 다음 가슴이 줄어들었다고 클레임을 걸지 않는 것이다. 만약 환자가 수술 직후에 부어있는 가슴이 수술 결과라고 생각하고 만족스러워했다면 분명 몇 개월 후에 부기가 빠진 다음 클레임을 걸 확률이 높다.

이러한 설명 방법은 비단 성형수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당뇨 환자들을 교육할 때도 이러한 설명방법은 환자들에게 적절한 경각심을 심어주어 훨씬 말을 잘 듣도록 할 수 있다. 당뇨가 왜 무서운지 실제 당뇨 합병증이 어떤 식으로 오는지 등을 전체적으로 이야기해주어 당뇨의 끝이 어떤지를 그려주는 것이다.

“환자분은 이번에는 망막에 핏줄이 터져 수술을 받으셨지만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식이요법 철저히 하시고 운동 열심히 하시면서 관리 시작하세요.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신장에도 이상이 오고 발에도 이상이 오고 시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당뇨 합병증은 쓰나미가 오듯이 갑작스럽게 한꺼번에 와서 환자 분들이 정말 정신을 못 차리실 정도라고 합니다. 작년 여름만 해도 직접 운전하고 오셔서 웃으면서 당뇨 약을 받아 가신 분이 지금은 시력을 상실하고 신장 투석까지 받고 계십니다. 당뇨가 처음에는 자각증상이 별로 없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으시는 경우가 많은데 전립선이나 갑상선 암 같이 예후가 좋은 암보다 오히려 관리 못한 당뇨가 더 무섭다고 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식으로 전체를 그려주는 것이다.

합병증이 어떤 식으로 오고 그 끝이 어떤지를 구체적으로 그려주는 것이다. 단순히 “식이요법 하세요” “쌀밥 대신 잡곡밥 드세요” “운동 하세요” 식으로만 이야기해서는 당뇨의 끝을 모르는 환자들은 별로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저 막연하게만 들리기 때문이다.

언젠가 TV 다큐 프로그램에서 루게릭병 환자가 인터뷰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인터뷰를 들으며 그 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루게릭병 특성상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신체 부위가 말을 듣지 않게 되는 것임을 알았다. 전혀 예측할 수 없이 찾아오는 그 불청객으로 인해 아침에 눈을 뜨면 손가락을 움직여보고 눈을 깜빡여보면서 `휴우, 아직은 내가 움직일 수 있구나'라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정의 진행상황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투병 생활이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일이라면서 오히려 죽는 것은 별로 무섭지 않다고 했다. 잠깐 동안의 인터뷰였지만 이 인터뷰 내용이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환자들은 의사들만큼 의학적 지식이 없다. 자신의 병이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으면 막연하게 느껴지고 그 병의 진행상황을 전혀 알 수 없으면 하루가 1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번 한주는 진료 시 환자에게 Whole-Part 설명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길 바란다.

이혜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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