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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상인 교수님을 기리며
故 김상인 교수님을 기리며
  • 의사신문
  • 승인 2011.03.3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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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상인 교수
유난히 길고 추웠던 겨울도 이제서야 고개를 숙이고, 오랜 기다림 끝에 봄기운이 느껴지는 오늘,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김상인 교수님을 보내드려야만 하는 우리 검사의학과 후학들의 마음은 허전하고 황망하기만 합니다. 언젠가 닥칠 일이라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부음을 전해 듣고도 선생님 생전의 모습만 떠오를 뿐 이제 정말 저희 곁을 떠나신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에 임상병리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창설하시고 이제 진단검사의학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우리나라 검사의학 수준을 선진대열에 오르게 하신 의학계의 기둥이셨습니다. 1955년 본교를 졸업하신 후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당시 한국에서는 불모지였던 임상병리학을 연수하시어 국내에 도입하셨고 대한임상병리학회를 창립하셨으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임상병리학교실을 창설하셨습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정착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제가 알게 된 것은 1982년, 대한임상병리학회가 창립되던 날 저녁 자리에서, 같이 고생하신 다른 대학 원로 교수님들과 어깨를 부둥켜 앉고 엉엉 우시던 모습을 본 때였습니다.

기존의 학문 영역으로부터 기득권을 양보 받아 새로운 학문 분야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너무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따르는 일이었지만 독립적인 학회를 가지지 않고서는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신념으로 온갖 고초를 감당하신 끝에 이루어 낸 일이었기에, 당시 전공의였던 저희들 바로 앞에서 어르신들이 눈물을 펑펑 흘리시던 모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 그리고 예방에 진단검사가 절대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신념으로, 의사의 상징인 청진기를 놓으시고, 새로운 검사의 개발과 정도관리에 온 힘을 기울이시며, 대한임상병리학회에 이어 대한임상검사정도관리협회를 창립하셨고, 오늘날과 같은 범국가적인 검사결과의 표준화 사업이 이루어지는 발판을 마련하셨습니다.

특히 혈액학과 혈액사업에 대한 학문적 열정과 봉사의 정신은 선생님을 이 분야에 있어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인물로 기억되게 하였고,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를 맡으시면서 1995년에 한국에서 개최한 국제수혈학회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혈액사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습니다.

겸손하신 성품을 지니셨으면서도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탁월한 판단력과 추진력을 겸비하셨기에, 우리나라 의료계는 선생님을 단순한 임상병리학자로서만 머물게 두지는 않았습니다. 서울의대 학장을 역임하셨고, 서울대학교병원 진료부원장, 대한의학회 부회장, 서울대학교 인구의학연구소장, 인천길병원 원장, 한국건강관리협회 회장,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 회장, 그리고 대한임상병리학회, 혈액학회, 수혈학회 회장을 맡으시는 등 선생님을 필요로 하는 모든 분야에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맡아, 한국 의료의 발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오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눈을 감으신 날에는 비와 눈이 같이 내렸습니다. 그날 눈비가 내리는 하늘아래 서있는 소나무들을 바라보니 선생님께서 평생 애창하셨던 소나무야라는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제자들과 손에 손을 잡고 눈을 지그시 감으신 채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함이 없는 네 빛'이라는 노래를 열창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우리들은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병실을 방문하였을 때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지으시며 맞아주시던 모습, 그리고 제자들 시간 조금이라도 덜 뺏으시려고 어서 가봐 어서 가봐 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저희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가시는 자리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격려의 말 한마디와 웃음을 주시면서 평생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살아오셨고, 특히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신 선생님이셨음은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선생님이라고 힘들고 고달픈 순간이 없었을 리 없지만, 당신의 감정과 아픔은 뒤로 하고 주위 사람의 외로움과 고통을 달래 주려고만 하시던 선생님, 그간 너무 힘이 드셨으리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간 너무 지치셨으리라는 것을 이제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쉬게 해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저희들은 선생님 손을 놓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미덥지 않은 저희들이지만 선생님께서 미처 이루시지 못한 일들은 후학들에게 맡기시고 그만 편히 눈을 감으시옵소서. 저희들은 늘 한발 앞서 내다보시고 나아가시던 선생님 모습을 본받아, 세계 속에 이름을 떨치는 진단검사의학과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애창하신 소나무를 생각하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푸른 빛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저희들이 되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을 영원히 기억하고 사랑할 저희 후학들의 뜨거운 마음과 존경을 모아, 이 글을 선생님의 영전에 바칩니다.

부디 평안한 안식을 누리시옵소서.
2011년 3월 26일

서울의대 검사의학교실 주임교수 한규섭 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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