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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야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야
  • 의사신문
  • 승인 2011.03.3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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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11〉

진료 시 설명을 잘하고 계십니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여러 설문 결과를 보면 비단 우리나라 환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의사, 좋아하는 의사는 `설명 잘해주는 의사'다. 그러나 그 설명이란 것이 참 아이러니하게도 환자의 지적수준이나 경험에 따라서 너무나 주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사들은 모든 환자들에게 무조건 쉽게 설명해주면 알아들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아 문제다. 의사가 그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똑같은 질문을 다시 던지는 환자들이 있는 것을 보면 의사가 생각하는 `쉽게 설명하기'랑 환자가 생각하는 `쉽게 설명하기'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그 이유를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곧 선택적 지각이란, 본인이 보고 싶은 것과 알고 싶은 정보만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기존의 태도나 신념과 일치하는 커뮤니케이션 메시지에는 자신을 노출시키고 일치하지 않는 메시지는 회피하는 경향으로 흔히 전자는 지지적인 선택(supportive selection), 후자는 방어적인 회피(defensive avoidance)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기존의 선유경향에 따른 메시지의 선택여부는 대개 의식적인 일이지만 비의식적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

곧 다양한 환자들은 그 동안 살아오면서 체득한 각자의 경험과 지적수준, 가치관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의사가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자신의 경험과 지식, 가치관에 비추어 그것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자들에게 설명을 잘 해주기 위해서는 의사가 생각하는 `쉽게 설명하기'가 아닌 환자가 생각하는 `쉽게 설명하기'가 되어야 하며 이것은 의사가 환자의 눈높이에서 설명해줄 때만이 가능하게 된다.

일단 기본적으로 설명을 잘 하기 위해서는 SES법칙을 준수해야 한다. 심플(Simple)하게, 쉽게(Easy), 짧고 간결하게(Short)가 기본이다. 환자는 진료 시 여러 가지 이유로 집중력이 많이 흐려져 있고 의료 전문가인 의사 앞에서는 더 긴장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설명이나 주의사항을 전달할 때는 개별 환자에게 맞춰 우선순위, 중요도를 정해 효과적으로 선별하여 전달할 필요가 있다.

설령 열 가지 주의사항이 있더라도 환자마다 특히 더 조심해야 하는 사항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순위를 잡고 그에 따라 설명의 양을 조절하여 아주 중요한 것은 처음에 자세히 설명하고 환자가 참고로 알아두면 좋은 것들은 함께 묶어서 설명해주거나 메모(안내 책자, 교육자료 배포)를 해서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렇게 설명의 순위 배분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환자는 심한 경우에는 진료실을 나서며 의사가 설명해준 내용을 단 하나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아울러 의학적 지식이 없는 환자에게 전문적인 의학 내용을 설명할 때는 앞서 설명한 SES법칙 준수를 넘어 적절한 예화 곧 환자가 일상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설명이 추가되는 것이 좋다. 필자는 의사 선생님들을 교육하며 진료 시 EOB 설명방법을 추천한다. 바로 Example(일상의 사례), Outline(아우트라인), Benefit(얻을 수 있는 결과, 시사점)이다. 환자에게 설명하며 환자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이해하기 쉬운 사례를 먼저 제시하고 그 다음 그것이 중요한 이유를 간략히 정리해서 설명해주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지킬 때 환자가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일례로 의사가 비만 환자에게 “칼로리를 줄이시고 운동 좀 하세요.”라고 얘기하면 참 막연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의사가 이것을 EOB 법칙에 맞춰 설명하면 환자는 한결 이해가 쉽다. “하루 세 끼 정해진 식사는 준수하시되 쌀밥 대신 잡곡밥을 드시고 그 양을 1/3로 줄이세요. 식간에 출출하실 때는 저지방 우유를 한 잔 드시거나 중간 크기 토마토 1개를 드세요. 직장생활 하시느라 따로 운동하기가 힘드시다면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면서 한 두 정거장만 미리 내려서 걸으시고 엘리베이터 대신 가급적 계단을 이용하시길 바랍니다.”식으로 환자가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하는 것이다.


일상사례 들어 중요점 강조 후 이점 설명하는 `EOB' 추천
의사가 조금만 더 설명에 힘 기울이면 환자에겐 큰 희망
환자의 관심사 및 속담 인용하면 쉽고 빠르게 이해시켜


그 다음 이러한 일상생활의 변화가 전체 칼로리를 얼마나 줄여줄 수 있는지 등 구체적인 아우트라인을 잡아 주면서 설득력을 높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환자가 이러한 생활을 실천하여 얻을 수 있는 결과 곧 환자가 현재 몸무게에서 몇 킬로그램이나 감량할 수 있는지 등을 하루에 줄일 수 있는 칼로리와 연결 지어 설명해주며 환자에게 직접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EOB기법은 그 모든 환자에게 활용될 수 있다. 암 선고를 받고 낙담해하는 환자에게 역시 EOB 기법을 적절히 이용해 앞으로의 치료에 대한 동기부여와 힘을 넣어줄 수도 있다. “그 얼굴 하얗고 예쁜 탤런트 김자옥씨 아시죠? 그 분도 대장암 선고를 받으셨지만 수술 잘 받으시고 지금은 완쾌해서 건강한 사람보다 방송 활동 더 열심히 하고 계시잖아요.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암 걸렸다고 다 죽는 게 아닙니다. 제 환자들 중에도 오히려 암을 계기로 삶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고 더욱 행복하게 사시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라고 암을 이겨내고 이전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을 예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 다음 아직은 다행히 수술이 가능한 시점이기 때문에 수술과 방사선치료, 항암치료를 병행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것과 대장암은 수술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 등을 이야기하며 전체적인 아우트라인을 잡아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재는 많이 힘들겠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우울해하지 말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건강을 되찾은 후에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하면서 이 시간을 잘 이겨내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의사가 조금만 환자에게 시간을 투자하고 조금만 설명에 힘을 기울이면 환자는 똑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 일단 의학적 지식이 많지 않고 자신과 비슷한 환자들을 의사처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나 중요한 메시지가 되고 그 한 마디에 따라 치료에 대한 마음이 달라진다.

아울러 환자의 직업이나 연령, 관심사 등에 따라 앞서 이야기한 예화나 설명의 패턴 등을 적절히 바꾸면 더욱 효과적이다. 골프나 등산을 좋아하는 50대 남성이라면 건강관리를 골프나 등산에 비유하며 설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고, 갱년기를 맞은 50대 중반의 주부라면 이제는 가족들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돌볼 때라고 건강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검진이나 치료에 대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곧 환자의 관심사, 연령, 특성 등에 맞춰 설명하면 환자는 같은 내용이라도 훨씬 관심을 갖고 흥미롭게 들을 수 있다. 똑같은 치료를 받을지라도 어떤 환자는 회사원이라서 치료 후에 언제 출근이 가능한지 치료받은 부위가 눈에 많이 띄지 않는지에 매우 민감하다. 그러나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전업주부라면 그 보다는 아이를 돌볼 수 있는지 실제 신체 기능을 사용하는 것이나 통증 등에 더 관심이 많다. 또한 피부나 성형 등 미용시술의 경우 환자가 모델이거나 연예인 지망생이라면 일반인에게는 굳이 권하지 않아도 될 시술까지 권할 수 있으며 결코 낮은 코가 아닐지라도 카메라에 잘 나오는 얼굴을 만들기 위해 코를 높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혹시 환자의 직업이나 관심사를 알기 힘든 경우에는 아주 일상적인 예를 들면 된다. 언젠가 안과 선생님이 백내장 수술을 카메라 렌즈에 흠집이 나서 렌즈를 새 것으로 교체하는 수술이라고 설명하시는 것을 보며 참 쉽게 설명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렇듯 우리의 몸을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가전제품 등 여러 기기들에 빗대어 설명하면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의 설명이 몇 배로 쉬워진다. 혈압에 대해 설명할 때도 물이 흘러나오는 호스에 비유한다면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렇게 환자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비유법, 상황을 함축하는 속담을 이용한 풍유법, 대조법 등을 적절히 사용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주 희박한 결과를 예측하며 “로또 당첨과 같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거나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수술(치료)이라면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다. 또 환자에게 소식(小食)을 권하며 “외국 속담에 건강과 다식(多食)은 동행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식으로 이야기하며 잔소리 대신 속담 하나로 건강을 위해서 소식하라는 교훈을 줄 수 있다. 혹시 다른 환자보다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의사의 말이나 행동에 섭섭해 하는 환자가 있다면 “어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를 찾아오시는 환자분들은 모두 저에게 똑같이 소중합니다.”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 주는 SES를 기본으로 심플하게, 쉽게, 간결하게 설명하되 환자의 직업이나 관심사 등에 맞춰 환자의 이해도를 좀 더 높일 수 있는 진료를 해보면 어떨까.

이혜범(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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