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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허스님의 선방일기(禪房日記)를 읽고
지허스님의 선방일기(禪房日記)를 읽고
  • 의사신문
  • 승인 2011.03.3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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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보 <강북 박내과의원>

박형보 원장
금년 들어 나는 책을 열권 넘게 읽었다.

어떤 특정분야의 책만을 읽은 게 아니라 이것저것 읽고 싶으면 읽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탈벤 샤하르),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조국의 정치평론을 포함해 의료와 관계된 책 몇 권도 읽었다. 최근에는 수단에서 의료 활동을 펼쳤던 의사이면서 신부인 이태석의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도 감명 깊게 읽었다.

다음에는 또 무슨 책을 볼까 하고 생각 중이었는데 일간지를 보다 우연찮게 광고란에서 `선방일기'가 눈에 띄었다. 지허(知虛)스님의 일기장(?)이었다.

스님이 쓴 책이기에 호감이 갔고 재미 있겠다싶기도 했다. 전에 성철스님의 글을 비롯해 법정스님과 법륜스님의 책도 여러 권 읽었었는데 모두가 자연을 썼고 삶을 기술했다. 글들이 순진무구했다. 문장은 아름답고 감미롭고 때로는 감탄을 자아내는 글들이 많았다. 나는 여기에 매료되어 당장 `선방일기'를 구해서 읽었다.

책은 표지가 암시한대로 지허스님이 태백산 상원사(上院寺)에서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가 다른 선객(禪客)들과 생활하면서의 일과를 일기체로 쓴 일종의 어록집(語錄集)이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느낀 점은, 불교에 별다른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 책을 읽기가 녹녹치 않음을 직감했다. 읽어 가면 갈수록 머리는 혼미 해졌고 읽는 쪽수도 여간해서 불어나질 않았다. 아마 또 읽고 또 읽어서 그랬으리라.

산문(山門=절)에 들자마자 승객(僧客)들은 겨울 준비에 들어갔다. 김장 울력도 하고 메주도 쑤고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해 땔나무도 넉넉히 준비해야했다. 한 번 선방(禪房)에 들면 엄격한 규율과 냉엄한 고행만이 감도는 선불장 (禪佛場)이지만 때로는 의외로 인간적이었다. 원주(院主)스님 몰래 감자를 훔쳐다 구어 먹고, 온갖 장난기를 발휘하여 갖은 모양의 만두를 빚어 먹는 것 등은 한 때의 짓궂은 장난이며 훈훈한 웃음을 자아내는 순박한 동심의 세계였지 않았을까?

출가하여 세속의 이면에 몸을 감추고 불가에 몰입하여 견성(見性)을 얻기 위해 구도(求道)에 매진하는 지허스님은, 삼부족(三不足)을 감내하고 고혈(膏血)을 착취하는 고행을 하면서 “선객(禪客)은 스스로가 인간은 끝내 견성하지 않으면 안 될 고집(苦集=고통의 덩어리)의 존재임을 자각하고, 스스로 고(苦)의 땅위에, 고(苦)의 집을 짓고, 고(苦)로서 울타리를 치고. 고(苦)의 옷을 입고, 고(苦)를 먹고, 고(苦)의 멍에를 쓰고, 고(苦)에 포용된 채, 고(苦)의 조임을 받아 가면서, 고(苦)를 넘어서려는 의지만을 붙들고 살아간다.”는 고학(苦學)과 고론(苦論)을 설파하면서 선객의 의지를 일갈하고 있다. 즉 선객의 필연한 숙명의 당위성을 절감케 한다.

앞서 말 한대로 불교에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이제야 말로만 듣던 하안거다 동안거다 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피상적으로나마 알게 되었고, 거기에 더 해서 선객의 극악한 고뇌의 절망적인 상황이 어떤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실로 수도(修道)의 험난한 고행이 없고서는 결코 견성도 종래의 평안도 없음을 터득했다.

지허스님은 선방생활하면서 자주 이웃하는 선객과 불교의 본질을 논했다.

“이 세상은 유한한가 무한한가?”

“신은 있는가 없는가?” 등등

극히 실존적인 이야기들이다. 끝도 결론도 없는 이야기 들!

어디 이 뿐인가? 지허스님은 더 계속했다.

“선객은 화두(話頭)를 끌어서는 안 되고 끌려야 한다. 유무(有無)가 단절된 절대무(絶對無)의 관조(觀照)에서 견성이 가능하다는 선리(禪理)를 납득하려고 하면 할수록, 현존재인 육체의 유무에 얽히게 되고 견성을 가능케 하는 정신의 유무에 얽매이게 되기 때문이다” 든지 “불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衆生)으로 시작해서 인간(道人)으로 끝납니다”등은 지허스님 어록의 극치다.

지허스님은 선 기간 중에서도 고뇌의 극한인 용맹정진을 무사히 마쳤다. 수행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다고나 할까. 무서운 수마(睡魔)와 육체적인 괴로움과 싸워 이겼다. 용맹정진을 무사히 마치고 아침에 찰밥을 배불리 먹고 대중이 산행 길에 올라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따사로운 초봄의 햇살을 쪼이는 그 희열을 누군들 이해할 수 있으랴.

스님께서는 해맑은 가을 하늘아래 오색 낙엽이 깔린 돌길을 밟고 올랐다, 늦겨울 은색의 눈길을 밟고 내려왔다. 험난했던 동안거를 무사히 마친 지허스님은 또다시 무거운 발길을 옮겼으리라. 자기말 대로 나태로 부터 도피하기위해 나태의 온상 같은 토굴로 들어갔으니 말이다.

스님이 간간히 주고받고 기록한 선방의 어록들은 실로 모두가 주옥같다. 비록 심오한 불교철학이요 실존철학이요 또 형이상학이며 형이하학이기는 하나 어록 하나하나가 불교입문의 백미이다. 쉬우면서도 어렵고 또 어려우면서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시(時)와 공(空)을 초월한 어록이요 시(是) 도 비(非)도 아닌 중도(中道)의 말씀들이다. 비속(卑俗)한 세인들이 이 어려운 세속에서 어떻게 삶을 꾸려야하나. 참으로 난해한 일이다. 일독을 권한다.

박형보<강북 박내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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