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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의 획득 <7>
프리미엄의 획득 <7>
  • 의사신문
  • 승인 2011.03.3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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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의 심장을 담은 `란치아'

정말 오랜만에 경주까지 장거리 드라이브를 했다. 문병을 가는 길이긴 했지만 란치아 카파로 긴 거리를 달려보기는 처음이었다. 필자의 란치아 카파가 완벽한 상태는 아니지만 한번의 트러블도 없이 달렸다. 차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몰아본 필자지만 카파를 몰면서 편안한 장거리 드라이빙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 푸조의 605나 벤츠의 E클래스라면 핸들링은 더 정확하지만 달리는 쾌감에 대해 이렇게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었다. 이태리차에 대한 새로운 선입관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부드러운 엔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는 순간이었다.

란치아라는 메이커는 상당히 묘한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최상위 차종에는 기묘한 엔진을 투입하곤 했다. 필자의 차 카파가 1990년대 중반의 플랙쉽이라면 초반의 플랙쉽은 테마였다. 국내에는 수입되지 않았지만 테마시리즈의 최상위 버전은 V832였다. V832라고도 부르곤 했는데 이 차의 엔진은 페라리의 V8 32밸브의 3리터 엔진이었다. 평범하게 보이는 테마의 차체에 페라리의 엔진을 투입했던 것이다.

테마의 차체가 평범하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이른바 `Type Four' 차체의 일부로 같은 차체를 공유하는 다른 차종은 Alfa Romeo 164, Fiat Croma 그리고 Saab 9000이었다. 사브 9000은 얼마 전까지 많이 굴러다니던 차다. 디자인이 다르긴 하지만 차체는 완전히 같은 사브 9000에 페라리 엔진을 넣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란치아 테마 v832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밖은 평범한 테마지만 엔진은 페라리였던 것이다.

테마의 다음이 카파였는데 이번에는 알파로메오의 V6 엔진을 넣고 나타났다. 이번에는 거의 완전히 같은 엔진을 탑재하고 나타났다. 하지만 출력을 알파의 220마력에서 10% 정도 줄였다. 엔진은 3000cc에서 205마력 정도지만 토크곡선이 스포츠카 성향인 엔진을 달고 나타났다. 평상시에는 거리를 부드럽게 다니고 파워모드인 경우에는 스포츠카처럼 다니는 이상한 성향의 차를 만든 것이다. 아무튼 독일차나 일본차의 엔진과는 많이 다르고 프랑스차들의 엔진과도 다르다. 차에 사용된 V6 엔진의 설계자는 Giuseppe Busso로 페라리의 초기 기술책임자였고 알파로메오에서는 alfa twin cam 엔진을 만들었다. Busso가 페라리에서 관련되었던 엔진은 경주용 1.5 L V12 엔진이었다. 어떻게 보면 몇 종류 안되는 이태리 엔진의 계보는 페라리 엔진 설계자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매끄러운 회전과 높은 RPM에 잘 견디는 경주용 엔진의 성향을 타고났다.

란치아의 플랙쉽 차종을 타는 사람들이 스포츠 드라이빙을 할리도 없는데 차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엔진의 특성상 살살 부드럽게 주행이 되기는 하지만 정작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고 RPM으로 쏘는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붙어있는 자동변속기는 어지간한 고속이 아니면 고 RPM으로 돌입하지 않는다. 액셀을 밟다보면 180km나 200km 정도에서 킥다운을 하며 휠스핀을 할 것 같은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엔진은 5000RPM 정도부터 정상적인 힘을 내며 폭발적으로 돌진한다. 조건만 되면 8000RPM 근처까지 올라간다. 일상적인 운전자는 6000RPM이 넘어가면 견디기가 힘들다(하지만 엔진 진동이 적다면 조금 덜 괴로울지 모른다). 엔진소리도 공명음 같은 것을 내며 부드럽게 진동하기 시작한다. 도저히 다른나라 차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반응이다.(이렇게 설계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최고 성능을 내지 않더라도 부드러운 회전을 갖는 엔진이라는 것은 참으로 편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갑자기 테마 v832의 엔진이 궁금해졌다. 필자가 타는 카파의 바로 앞 플랙쉽 모델의 엔진이라는 사실과 페라리 엔진을 넣은 승용차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도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베이 모터스에서 차에 대한 궁금증을 풀곤하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제일 싸다는 페라리 몬디얼의 계기판 사진을 이베이에서 찾아보았다. 레드존이 7500 정도에서 시작하고 퓨얼컷은 9500 정도에 맞추어져 있다. RPM 9000 이라는 말은 1초에 150번 정도의 회전을 의미한다. 전기모터로도 이정도의 회전은 고속에 속한다.(필자는 아직 7500 이상 회전수를 갖는 차를 몰아보지 못했다)

운전자에게 이 정도의 속도를 내더라도 즐겁게 달릴 수 있는 엔진을 제공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레이싱카와 차이가 없는 엔진과 차체를 주고 미친 듯이 달려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런 점이 페라리의 정체성이겠지만 필자가 이런 점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호기심이 자꾸 불어나고 있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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