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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의 획득 <6>
프리미엄의 획득 <6>
  • 의사신문
  • 승인 2011.03.2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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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인의 향기' 속 페라리 몬디알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를 보면서 세상의 모든 일은 한 번에 가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갑자기 마하바라타가 떠올랐다.

필자가 열심히 읽었던 바가바드기타는 선과 악의 싸움을 그렸다. 인도 사람들이 평생 몇백 번은 읽고 듣는 이야기라고 한다. 여러 번 읽어도 계속해서 많은 생각을 남기게 하는 이야기는 다시 커다란 이야기 마하바라타의 일부다. 6부에 해당한다.

마하바라타의 마지막 부분은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왕국이 해일과 지진으로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으로 끝난다. 왕국은 사라지고 만다. 위대한 왕들과 용사들의 이야기도, 연애의 이야기도 모두 왕국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 며칠 전 활모양의 섬에서 일어난 거대한 지진은 실제 희생자들에게는 세상의 종말이나 마찬가지로 모든 것의 끝이다. 너무 거대한 사건이 급작스럽게 일어났으니 준비할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나 자연재해는 판단 기준 자체를 바꾸기 때문에 그 동안의 근검절약, 저축, 재산 같은 것들이 무의미해질 때가 많다. 선악의 기준마저 모호해진다.

필자는 이럴 때 탈무드에 나오는 비싼 항아리 이야기가 떠오르곤 한다. 랍비는 조카에게 항아리를 아끼지 말고 쓰라고 한다. 내일이면 깨질지도 모르니 잘 사용하는 것이 지혜라고 했다. 물론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오더라도 사과나무를 심으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필자가 사건의 현장에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미처 해보지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가 막심할 것은 분명하다. 다 누려보았다고 하더라도 억울하지만 너무 즐기지 않았다고 생각해도 억울할 것은 분명하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아마 페라리를 몰아보지 못한 것도 그 리스트에 들어갈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다치고 실종되는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황당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유사한 상황을 만났을 때에 어떤 생각을 할지는 잘 모르는 것이다. 예전에 구두쇠로 살던 유태인 상인들이 죽기 전에 비단옷을 맞추어 입고 갑자기 좋은 일을 하는 일화 같은 것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른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는 알파치노가 인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면서 페라리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사고로 맹인이 된 퇴역장교 프랭크 슬레드는 사는 것이 싫어져서 해보고 싶은 일을 다 해보고 인생을 마감하려 했다. 아름다운 여자, 호화로운 식사 그리고 페라리를 타보는 것 같은 일이 그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우나카베자에 맞추어 탱고를 추는 장면과 페라리를 모는 장면은 강렬한 기억을 남긴다.

영화에 나오는 차는 1991년식 페라리 몬디알(Ferrari Mondial)이었다. 앞뒤로 의자가 2개씩 있는 2+2 구성으로 엔진이 뒷좌석 근처에 있는 미드쉽 구성이다. 요즘 이베이 중고 가격은 3만불 정도다. 엔진이 고장난 차가 만불정도 팔리기 때문에 필자가 미국에 살고 있다면 아마 구입해서 수리를 하거나 분해를 하고 있을 것이다. 고칠 시간이 없었다면 열심히 돈을 모아 3만불짜리 고물을 타고 다닐지도 모른다. 60만불 정도의 F40 중고차는 아예 구입불가능에 가깝지만 3만불이라면 완전 불가능은 아니니 말이다. 아마 부품을 수급할 방법을 알고 있다면 분명히 타고 다녔을 것이다.(아쉽게도 필자는 몬디알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못 보았다. 사실 번호가 살아남은 몬디알이 한 대 있다면 부품차를 수입 하거나 수리해서라도 타보고 싶은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보다는 비싼 360이 제일 흔한 모델이다)

영화의 몬디알은 13년동안 6800대 정도가 양산됐다. 페라리로서는 정말 많은 생산 댓수였다고 한다. 1년에 500대 정도 만든 것이 페라리 역사상 가장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모델중 하나라고 하니 이 양산차 생산업체로 보기도 어렵다. 사실 양산하기도 어렵다. 일반적인 차의 모노코크 프레임처럼 철판을 찍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파이프를 용접해서 골격을 만드는 것으로 예전에는 거의 수공업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몬디알의 프레임은 308이라는 옛날차의 프레임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며 페라리는 이 프레임으로 여러 가지 차종을 만들어 냈다.

예전에는 페라리의 엔진 역시 수공업으로 주물에 부어 하나하나 검사하여 생산되고 있었다. 모래로 만든 거푸집에 알루미늄 합금을 녹여 부어 만든 후 식히고 검사한 후 실패하면 다시 만들었다. 실패율은 무서울 정도로 높았다는 설이 있다. 껍질은 철로 만들기도 하고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지기도 하며 알루미늄합금을 사용하는 부분도 있다.

껍질을 조립하지 않은 차는 일반적인 자동차라기보다는 크고 복잡한 카트(넥슨 게임에 나오는 카트라이더)에 훨씬 가깝다. 외피를 씌우고 가죽으로 만든 인테리어가 들어가야 사치스럽고 요사스러운 모습의 페라리로 변한다. 위∼잉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로소 레드의 붉은 색과 엔진소리로 타는 사람과 보는 사람을 모두 홀리는 요사스러운 물건이다.

카트 비슷한 물건과 진짜 페라리 사이에는 약간의 디자인 요소만이 남아있다. 피닌파리나가 손질해서 차의 외관과 인테리어를 부여한 디자인 요소가 우리가 알고 있는 페라리의 이미지다. 엔진배치를 F1에 사용된 레이아웃으로 변경하여 놀랍게 핸들링이 좋다는 것을 빼면 영화에 나온 몬디알 t의 3.4L의 300마력은 요즘 차의 기준으로 보면 대단한 것이 아니다. 300마력이 나오는 차는 상당히 많다. 그러나 300마력의 엔진을 단 차를 탄다고 페라리의 기분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페라리 DNA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싱거운 결론이다.

필자로서는 “나중에 형편이 좋아진다면” 같은 단서를 붙이고 페라리를 바라 볼 수 밖에 없다. 리터당 2000원이 넘어간 휘발유 가격에 고급유를 주유하고 한번 밟을 때마다 기름을 퍼먹을 것이 틀림없을 요사스러운 차를 모는 것은 요즘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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