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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 공감·반영으로 환자의 속상함을 다독여야
적극적 공감·반영으로 환자의 속상함을 다독여야
  • 의사신문
  • 승인 2011.03.2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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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10〉

진료 시 반영과 공감을 잘하고 계십니까.

얼마 전 강남의 한 치과에 갔다가 할아버지 한 분이 큰 소리로 클레임을 거는 것을 보았다. 평소에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과 병원 로비에 있는 분수대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만 들리는 아주 조용한 병원인데 그 할아버지가 워낙 화를 내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통에 환자들도 정신이 없고 환자 접수는 물론 병원 진료에까지 차질이 있어 보였다.

간호사에게 자세한 사항을 들어 보니 환자가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는데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용을 환불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치료를 다했는데 비용을 환불해 달라니…. 물론 병원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 일이었다. 공을 들여 새로 심어놓은 치아를 다시 뽑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처음에는 필자 역시 간호사 이야기를 듣고 그 환자가 너무 심한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잠시 그 상황을 지켜보는 가운데 그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며 진정을 못하는지 한편으로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정작 시술을 했던 의사는 다른 환자를 치료한다고 얼굴 한 번 보이지 않았고 간호사는 할아버지 마음을 다독여주기 보다는 무작정 “할아버님, 이러시면 안 돼요. 고집 좀 부리지 마시고 돌아가세요”라고 얘기하다가 환자가 말을 듣지 않자 아예 없는 사람처럼 투명 인간 취급 해버리는 것이었다. 얼핏 보아도 그 할아버지는 자존심이 무척 강해보이고 권위적인 느낌을 풍겼는데 그런 환자를 완전히 투명 인간 취급하며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가끔씩 새로 들어오는 환자들이 얼굴 붉히며 서 있는 그 할아버지를 무슨 일인가 쳐다볼 때 마다 할아버지는 더욱 더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억울한 마음을 환자들에게 알아달라는 듯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화가 난 환자를 얼른 진정시키고 달래서 집에 보내야 될 텐데 그저 `말 안 듣는 막무가내 환자'로 몰아붙이다 보니 상황이 도저히 끝이 나지 않았다.

꽤 규모가 있는 병원이었음에도 이러한 클레임 상황에 대한 자체적인 기본 매뉴얼이 없는데 한편으로 놀랐고 아쉬웠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여 제대로 된 매뉴얼만 있었더라도 이렇게 어설픈 대처는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자에게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일단 환자에게 적극적인 공감과 반영을 통해 속상한 마음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간호사가 아닌 시술을 시행한 의사가 직접 하는 것이 좋다. 공감은 환자의 말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라면 반영은 환자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는 것이다.

“아, 그래서 많이 속상하셨군요.” “아이고. 그래서 화가 나신 거군요.” “그렇게 생각하셔서 환불을 원하신 거군요.”식으로 환자의 생각과 마음을 먼저 적절히 읽어주면서 환자가 `저 의사가 나를 이해하네. 내 억울한 마음을 너무 잘 알아주네.'라는 생각이 들도록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감과 반영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에 따라 클레임 환자 관리가 쉬워질 수도 어려워질 수도 있다. 언젠가 공중파 TV에서 방영되는 한 프로그램에서도 부부싸움을 줄이고 부부 사이를 돈독하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상대의 마음을 비추어주는 반영(反映)기법을 추천했다. 곧 아내 혹은 남편이 잔소리를 하거나 속상한 마음을 분출하며 화를 내면 그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거나 반격하지 말고 “아, 그랬구나. 내가 자꾸 잔소리를 늘어놓아서 많이 힘들었구나.” “엊그제 부부 동반 모임에서 내가 화를 냈던 게 너무 많이 속상했구나.”식으로 상대의 이야기에 그저 그 마음을 그대로 읽어주는 반영 기법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물론 출연자들에게 실제 이 연습을 시켜보니 훨씬 부부 관계가 돈독해지는 결과를 나타냈다. 상대가 자신의 섭섭한 마음, 속상한 마음을 먼저 읽어주면서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니 더 이상 큰 소리를 내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었다.


클래임 거는 환자에 무관심 대처, 더 큰 곤란한 상황 만들어
아픈 환자, 어리광 부리는 아기라 생각하고 먼저 다독여야
첨단 시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날로그적 따뜻함 기억을


병원 환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공감과 반영 기법은 클레임 환자를 넘어 기본적으로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진료 시 환자가 “선생님, 요즘 집안 일로 너무 신경을 써서 그런지 머리도 지끈지끈 아프고 소화도 안 되고 한 번씩 심장도 두근두근 거리고 얼굴도 화끈거려요.”라고 자신이 느끼는 증상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는다면 질병에만 집중에서 “언제부터요?” “어떻게 아프세요?” 라고 질문할 것이 아니라 “아이고, 머리도 아프시고 소화도 안 되시고 너무 힘드시겠어요.”식으로 먼저 환자의 마음을 읽어주고 그 고통을 공감해주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럼 덩치가 산만한 건장한 청년일지라도 혹은 중년의 아주머니일지라도 마치 아기가 엄마에게 온전히 의지하며 어리광부리듯 “네. 기운도 하나 없고 너무 힘들어요.” 식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그렇다. 여기까지 이끌어야 한다. 환자가 중병이 아닐지라도 온전히 의사에게 기대고 의사의 처방과 치료에 백 퍼센트 신뢰하며 따라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실로 안타까운 것은 요즘의 병원들은 병원 인테리어나 의료 장비, 의사의 실력 등 여러 가지 조건은 우수함에도 환자를 공감하고 반영하는 기술이 부족하다. 서비스가 좋다는 병원들 역시 병원 코디네이터나 간호사들 교육에만 열을 올리지 정작 환자가 병원을 결정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의사들은 그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과거 박사공부를 하며 `의대생의 심리'에 관해 공부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논문을 공부하며 알게 된 사실은 의대생들이 기본적으로 여러 가지 성향 중에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특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감정에 치우치기 보다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환자가 의사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속상한 마음을 구구절절 토로해도 거기에 크게 반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참 안 됐군.”이라는 생각 정도는 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런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일반인에 비해 이성적이고 냉정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사들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의사들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그 의사들이 전체 의사들에 비해 수적으로 많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사실 의사가 모든 환자의 감정에 일일이 반응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을 갖아야 한다. 그런 마음을 갖고 불가피하게 못하는 것과 애초 그런 마음을 갖지 않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의사 입장에서야 환자가 오늘 수많은 외래 환자들 중에 67번째 환자일 수도 있겠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환자 입장에서 의사는 그야말로 아픈 몸을 이끌고 오랜 대기 시간을 기다리며 만나길 희망했던 매우 특별한 존재다. 그래서 환자 입장에서는 병원에 가서 간호사나 직원이 친절하게 잘 대해주어도 자신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자신을 공감해주고 마음을 읽어주며 아는척 해주는 것만큼 힘이 되는 것은 없다.

흔히 의사가 환자를 진정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때는 의사 자신이 아파 본 이후라는 말도 있다. 곧 본인이 환자가 되어 환자로서 의사를 만나며 느끼고 경험하는 부분이 의사였을 때 환자를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 만큼 의사입장에서만 환자를 보면 환자의 서러움과 간절함, 지지받고 공감 받고 싶음을 이해하기 힘들다. 앞서 언급했듯이 의학자의 기본 성향 자체가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도 기여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일반 환자들에게도 공감과 반영이 중요한데 어떤 일로든 화가 나있는 클레임 환자에게는 오죽하겠는가. 그 아무리 화가 머리끝까지 나있는 환자일지라도 의사가 직접 환자를 다독이며 환자의 마음을 그대로 읽어주는 소통 기법은 힘을 발휘한다. 때로는 앞서 언급한 할아버지 환자처럼 무리한 요청을 하거나 의사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트집을 잡는 그야말로 얄미운 클레임 환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자를 공감하고 반영하는 것은 환자의 이야기가 모두 맞는 말이라고 인정하며 환자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라는 것이 아니다. 환자의 속상함과 억울함을 의사도 이해하고 있음을 그저 표현하라는 것이다. 먼저 환자의 안타까운 마음, 속상한 마음을 알아주고 혹시 치료 결과로 인해 환자가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그 노고 역시 적절히 다독여줄 필요가 있다. 그 다음 환자의 클레임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유 곧 상식적인 이야기를 해도 늦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과학이 발전하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한 소통의 장이 열리고 있다. 진료 역시 이제는 최첨단 미디어를 동원해 환자들에게 신속함과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최첨단 디지털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아날로그적인 따스함이 더욱 빛을 발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번 한 주는 환자 마음을 비추어주는 반영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길 바란다.

이혜범(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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