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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의 획득〈5〉
프리미엄의 획득〈5〉
  • 의사신문
  • 승인 2011.03.1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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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로망 `빨간색 페라리'의 탄생 역사

다른 많은 마니아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세계에서 필자의 로망이라면 페라리를 하나 갖고 싶은 것이다. 포르세나 란보르기니가 아니라 페라리를 갖고 싶은 것이다. 요즘 모델이 아니라 테스타로사가 나오던 시절을 전후로 페라리를 몰아보고 싶은 것이다.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 그것도 부자인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고물 페라리는 가격이 자꾸 올라가서 어떤 모델들은 신차보다도 더 비싼 것들도 많다. 이를테면 1991년식 F40 모델은 이베이 모터스에서 60만불 정도다. 20년이 넘은 모델이 이 정도다. F40은 슈퍼카니까 그렇다고 해도 1960년대의 페라리나 1980년대의 더 싼 페라리도 몇 만불은 곧잘 넘어간다.

사람들을 홀리는 페라리의 대표색은 물론 Ferrari Red다. 필자는 이 페라리레드를 보고 있으면 정말로 홀리고 만다. 그 밑에는 현실을 무시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디자인의 차체가 있다. 엔진도 물론 비현실적으로 성능이 좋다. 페라리는 페라리다. 현실적이라면 운전석뒤에 커다란 엔진을 두고 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필자의 머릿속에는 이런 선입견의 이미지들이 남아있다. 슬픈 일이라면 페라리만큼 강렬한 느낌을 주는 차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필자의 주관적인 드림카의 영역에서는 그렇다. 비현실적인 차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사람들을 홀리는 이런 이상한 일은 다른 차종에서는 몇 개에 그치고 만다.

페라리는 원래부터 사치스러운 차다. 예전에 일본의 평론가 도쿠다이지 아리쓰네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카라이프지에 〈도쿠다이지의 20세기 자동차론 ③(마지막 회) 자동차여, 언제까지나 인간적이어라〉라는 제목으로 실렸었다) :

“극상의 아름다움과 함께 폭력적이라고 할 수 있는 스피드와 사치를 갖고 있는 차라면, 그것은 이태리의 명차 페라리라 단언할 수 있다. 페라리라는 차는 보디도 예술품처럼 예쁘지만 엔진에서 나오는 소리는 하늘나라의 음악처럼 감미롭다. 이런 차는 독을 가졌다. 요즘의 페라리는 예전처럼 차 주인을 고르는 일없이 방금 운전면허를 딴 소녀라도 몰고 다닐 수 있는 차로 변했지만, 갖고 있는 독은 변함없이 많은 사람을 중독시키고 있을 것이다”

드림카로서의 페라리의 성공은 뛰어난 코치빌더들의 영향이 절대적이었고 대량생산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생산량이 많지 않았다는데 있었을지도 모른다. 알파로메오가 손으로 만드는 세계에서 대량 생산으로 들어가면서 진정한 명품을 만들지 못하게 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아야 한다. 알파로메오는 잘 달리는 차들을 많이 만드는 브랜드로 변했다.

페라리가 처음부터 차를 만든 것도 아니고 의도한 적도 없었다고 한다. 처음에 엔초 페라리가 조직한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이태리 모데나에 있는 아마추어 레이서의 모임이었다. 알파로메오가 지원했고 알파로메오의 차를 몰면서 상당히 성적이 좋았다. 결국 페라리는 알파로메오의 레이싱 부서의 책임자로 고용됐다. 무쏠리니 시절 알파로메오가 군산복합체로 변하면서 알파로메오의 활동은 제한되었다. 페라리의 부서는 너무 작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이 시절에 알파로메오를 떠났다. 알파로메오에서 나온 페라리는 계약에 의해 몇 년 동안 레이싱에 참가할 수 없고 페라리라는 이름을 쓸 수도 없었다. 이때 AAC(Auto Avio Costruzioni) 라는 회사를 만들었고 이때 AAC tipo 815라는 차를 만들게 되었다. 815는 대단한 차가 아니었다. 1.5리터 엔진의 815는 피아트에서 나온 Fiat 508이라는 승용차에서 나온 8기통 엔진과 차체를 재사용해서 만든 차였다. 815라는 이름은 8기통 + 1.5리터 엔진에서 나온 것이다. 815는 단 두 대가 만들어져 몇 번 레이싱에 참가했다. 그 사이에 전쟁이 있었고 회사는 마라넬로로 이사했다. 두 지명은 페라리의 모델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47년에는 페라리의 이름을 브랜드로 사용할 수 있게 되고 Ferrari 125라는 모델이 나온다. 이 차의 엔진은 알파로메오 출신의 Gioacchino Colombo가 작은 배기량의 V12 엔진이었다. 요즘 독자들은 1.5L짜리 V12 엔진이라면 이해가 가지 않을 작은 배기량이다. 그러나 1.5리터에서 118마력을 내는 엔진으로 몇 차례의 대회 우승을 할 수 있었다. 이 차도 두 대가 만들어졌다. 그 후속작으로 한 대가 만들어진 159s는 배기량을 1.9L로 늘리고 7000rpm에서 125마력을 낼 수 있었다. 당시로는 경이적인 엔진이었다. V12는 나중에 구조가 바뀌기는 했지만 페라리 엔진의 일종의 특징으로 남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166s가 나왔다.

페라리는 166을 일반인에게 판매하기 시작한다. 판매하는 방법은 파이프로 만든 차체와 엔진을 코치빌더(당시의 피닌파리나나 베르토네처럼 주문에 따라 차체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에 보내면 이들이 고객의 주문에 따라 차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후발주자인 베르토네와 피닌파리나의 디자인은 상당히 뛰어난 것으로 인정됐다. 트랙에서 달리는 차와 코치빌더가 만드는 차들은 서로 비슷했다. 아주 빠른 차를 원하는 사람들은 비싼 돈을 주고 페라리의 차들을 주문제작할 수 있었다. 덧붙이자면 코치빌더들은 페라리의 차들만이 아니라 알파로메오나 다른 회사의 차들도 모두 주문제작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디자인은 서로 비슷했다.(알파와 페라리의 차이보다 어느 코치빌더가 만드는가가 더 큰 차이를 만들 수도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자동차 디자인 연구소의 조상격인 코치빌더들은 당시에는 이런 작업도 했던 것이다.

안윤호 〈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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