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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봄 새 희망
새 봄 새 희망
  • 의사신문
  • 승인 2011.03.1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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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균<성북 이정균내과의원장>

이정균 원장
이성부 시인의 `봄'이란 시 속에는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라고 읊었다. `봄'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혹독했던 겨울, 기록적 혹한, 때늦은 폭설, 올해 겨울은 지루하고 길다. 봄소식이 늦어진다. 그리고 기다림은 지루하다. 햇볕 따뜻한 무료한 오후를 달래기 위해 뒤뜰에 나가 보니 상사화가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잎이 돋아나기 시작하였고, 석산(꽃무릇)은 추운 겨울 눈 속에서도 돋아나고, 달래는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석산(꽃무릇)은 가을에 꽃이 진 다음 잎이 돋아 다음해 봄에 말라죽는다. 상사화는 초여름에 잎이 말라 죽은 다음 여름에 꽃줄기가 자라 연분홍색 꽃을 핀다. 꽃은 꽃대로 잎은 잎대로 꽃과 잎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피고 진다.

숲이 뒤척인다. 꿈틀거린다. 그 붉은 절정기를 기다리면서… 그러나 신정(新正) 한 달 후 또 설날, 세월에 금을 긋는 시작과 끝은 언제나 혼란스럽다. 그러나 양력설, 그리고 한달 남짓 후에 음력설인 것은 즐겁고 기대되는 일이었다. 그래 바로 패자부활, 그리고 그런 기회인 것처럼 말이다. 긴 설 연휴, 그 마지막 날 입춘(立春), 날씨가 풀렸다. 더더욱 이젠 봄이 멀지 않다고 안도하게도 되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두 번째 10년을 여는 신묘년(辛卯年) 새해는 어느 해보다 우리에겐 봄처럼 의미있는 `희망의 해'를 기대하면서 맞이하였다. 이념 과잉, 금융과 안보의 위기 속에, 갈등의 폭이 점철되었던 지난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이했던 때문이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천년주목의 그 질긴 생명처럼 우리 대한민국의 DNA가 살아남아 새해부터는 국운융성의 시원이 되어 발전하기를 기원하였다.

입춘을 넘긴 겨울의 끝자락 계절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설 연휴기간 중 제주여행을 계획하면서 날씨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최근 광양, 남해, 그리고 거제도 여행기를 신문지상에서 스크랩하면서 손꼽아 기다렸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거제도는 수많은 봉우리들을 거느린 하나의 산으로 보인다. 봄 찾아 나선 산, 그 곳은 때 아닌 눈, 그러나 봄은 차곡차곡 제 길을 가고 있다니… 눈 사이로 매화가 피고, 동백이 늦은 꽃을 피운다는 소식이었다.

늦겨울이나 황량한 늦가을의 억새밭이 발밑에 밟히니 봄, 겨울 그리고 가을 세계절이란 표현은 재미를 더한다. 제주 풍경이 다시 아른거린다.

남녘 매화의 화사한 순백의 꽃소식은 `봄이 보내온 엽서'였다. KTX에서는 거제 해금강, 외도를 연결하는 여행상품을 내놓았다. 봄 바다의 풍경, 산자락 능선에 봄볕에 녹아 푹신해진 산길 어디를 가나 봄은 벌써 우리 곁에 와있다.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는 거제도 봄꽃의 만개 순서를 바꾸어 놓았다고 하니 예년 같으면 겨울끝 무렵엔 지심도, 학동의 동백이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고 구조라의 매화가 피었다는데, 올해는 동백을 앞질러 구조라 분교 마당의 매화가 먼저 피었다고 전한다. 더 희한한 날씨는 매화가 필 때 영하 10.4℃였다니 올 남녘의 겨울도 정말 혹독했다. 이제 한꺼번에 밀어닥칠 봄의 기운은 더 화려하고 감격적일 것 같다. 꽃 소식 더디다. 종내 봄꽃이 한꺼번에 화들짝 피어나 온 천지를 환하게 물들일 것이다.

발걸음 가볍게 봄이 온다. 광양은 매화의 나라. 삼월 중순 섬진강변은 구름처럼 매화꽃이 피어나리라. 광양은 남도(南都), 매화는 봄의 화신이다. 동백은 꽃보다 그 잎으로 먼저 시선을 붙잡는다. 검붉은 동백잎은 봄바람을 받아 반짝인다. 꽃망울은 단단히 맺혔다. 조촐한 클리닉 뒤뜰의 동백나무는 단단한 꽃망울이 달려있고, 잎은 벌써 봄이다. 꽃망울마다 봄기운이 번졌다. 봄이 오는 색깔이다. 설 연휴 제주도 여행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친다. 제주도 자치특별시 서귀포 위미 동백나무 숲은 300여 그루 토종동백 군락이다.

지금부터 130여년 전, 위미리 여성 현맹춘(1858∼1933)은 제주도의 거세고 모진 바람을 막기 위해 동백씨앗을 따다 위미에 심기 시작했다. 17세에 시집온 현할망은 한라산에서 동백씨앗 한섬을 따왔다고 전해온다. 동백씨 한알 심고, 돌 한 덩어리 담을 쌓았다 한다. `동박낭할망'으로 부르게 된 할머니의 동백 숲 가꾸기는 평생사업이었다.

`낭'은 나무의 제주방언이다. `할망'은 할머니의 제주방언이다. 나무가 자라면서 거친 황무지는 기름진 옥토로 변하였고, 울울창창 동백나무는 오늘 모습에 이르렀다.

봄은 우리들 입맛으로부터 온다. 날이 풀리면 입 안이 헛헛하다. 풋것이 먹고 싶어진다. 봄동 겉절이 생각이 간절해진다.

봄동, `떡 배추' 잎이 옆으로 퍼졌다. 일반 배추보다 두껍고, 수분도 많아 연하고 맛은 달짝지근 고소하다. 비타민A, C 무기질의 보고다. 늦가을에 일반 배추를 파종, 겨우내 열고 녹으며 맛이 들었다. 쌈 채소로 으뜸이라. 봄동은 `노숙배추', 겨울 눈밭에 내팽개쳐진 배추가 아닌가. 가을배추 거두고, 남은 무녀리 배추 뿌리에서 싹이 나와 자란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봄동은 된장에 무쳐 먹어도 달달하다 했으니….

나물은 캐는가 뜯는가. 달래냉이 씀바귀는 캐고, 쑥, 원추리, 취, 고사리는 뜯는다. 겨울을 이겨낸 인동채(忍冬菜) 봄동, 겨울의 끝자락, 동토(凍土) 뚫고 나와 속살 들어난 채소, 겨우내 서리, 찬바람, 눈 맞고 얼고 녹는 과정을 되풀이하며 대지의 영양소 듬뿍 함유한 먹거리, 겨울 이겨낸 인동초 봄동 쌈밥 그 어찌 식욕이, 그리고 삶의 의욕이 되살아나지 않겠는가.

봄은 조근조근 햇살로, 개울물 소리로, 바람으로 찾아와 벌써 우리 곁에 와있다.

이정균<성북 이정균내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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