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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의 법칙'…사소함이 큰 문제가 된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사소함이 큰 문제가 된다
  • 의사신문
  • 승인 2011.03.1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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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8〉

사소한 것을 놓치지 마라.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아는가?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은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James Wilson)과 조지 켈링(George Kelling)이 1982년 3월에 공동으로 발표한 깨진 유리창(Fixing Broken Windows: Restoring Order and Reducing Crime in Our Communities)이라는 글에 처음 소개된 사회 무질서에 관한 이론이다. 곧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환자와의 신뢰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의사 역시도 이러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항시 기억해야 한다.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치료가 잘 못 되거나 의사가 무슨 큰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의사의 말 한 마디나 사소한 행동 하나에서 불신의 싹이 자라서 결국 치료까지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진료가 바쁘다고 환자의 말을 중간에 의사 마음대로 자른다거나 환자의 말을 제대로 경청하지 못해 환자의 마음을 못 읽고 계속 환자의 입에서 부정적인 답변이 나오는 엇박자 질문을 던지는 것은 환자에게 의사에 대한 신뢰를 극도로 약화시킨다. 곧 환자를 배려하지 않는 의사, 환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의사가 권하는 치료까지 환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병원의 이윤 창출 곧 의사를 위해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소한 것으로 인해 결국 의사의 치료까지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앞서 설명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여실히 적용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네 진료 현장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요즘에는 인터넷이라는 어느 정도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에서 다양한 카페와 블로그 등을 통해 이러한 의사의 사소한 행동들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 곧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더욱 빠르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 뜨고 있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개인 소셜 미디어들은 순식간에 엄청난 팔로워들에게 퍼져나간다. 언젠가 한 아이 엄마가 자기가 사는 동네에 있는 불친절한 소아과 의사가 자신을 무식한 아줌마로 취급하면서 자신의 말을 무시했다고 속상한 마음에 자기가 가입한(몇 십 만 명의 회원들이 가입되어 있는) 주부 카페에 구구절절 분노의 글을 올린 것을 보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밑에 열 개 이상의 댓글이 아주 정성스럽게 빼곡히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연히 그 광경을 지켜보며 정말 이제는 의사의 사소한 행동 하나로 실제 의사가 가진 의술과는 무관하게 그 병원에 대한 전체 이미지가 실추될 수도 있겠다고 혼자 혀를 찬 적이 있다. 곧 의사의 실제 마음이나 생각이 어떻든 간에 현실에서는 의사의 그러한 사소한 언행이 결국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사소한 행위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며 그렇게 사소한 것으로 전체가 평가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필자가 과거 `월간조선'에 “중년을 위한 의사소통 강의”라는 칼럼을 1년 넘게 연재한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귀에서 떠나지 않는 말이 당시 편집장이 필자에게 늘 강조했던 얘기다. 현재 우리나라 전 국민이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그 아무리 좋은 이야기일지라도 위에서 가르치려고 들면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가르치는 느낌이 들지 않게 마치 친구가 이야기하듯 칼럼을 써달라는 것이다. 당시 늘 그 이야기를 생각하며 칼럼을 썼고 그래서 당시 칼럼이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다. 그렇다. 의료 전문가인 의사 역시 환자보다 의학적 지식이 많다고 해서 환자를 훈계하거나 가르치는 느낌이 들어서는 안 된다. 환자가 설령 잘 모르더라도 “이미 잘 아시겠지만…”식으로 환자를 인정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며 환자가 말도 안 되는 답답한 이야기를 할지라도 “아휴, 뭘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니까요.”, “왜 그랬어요?”와 같은 환자를 무시하거나 훈계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의사의 사소한 말 한마디와 행동이 치료까지 불신들게 해
환자를 훈계하거나 가르치는 느낌의 커뮤니케이션은 금물
`Yes-But' 화법 이용 `배려의 화법'으로 고마움·신뢰 키워


그렇다면 이렇게 환자가 뭘 잘 모르는 것 같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있는 답답하고 난감한 상황에서 환자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 것일까?

진료 시 환자 혹은 보호자와 대화하며 `Yes-But 기법'과 `Yes-Taking 기법'만 적절히 활용해도 최소한 환자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은 없어진다. 먼저 `Yes-But 기법'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환자가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의사가 볼 때는 너무나 답답한 이야기를 할지라도 그 말을 무 자르듯 자르며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네. 환자 분 입장에서는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식으로 환자(혹은 보호자)의 의견을 일단 존중해주고 의사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진료가 바쁘다보면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가 너무 모르는 답답한 이야기를 하면 악의가 있어서나 환자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저 급하고 답답한 마음에 곧바로 “아니, 그게 아니라…”식으로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사소한 것이 결국 환자와의 신뢰를 약화시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대화 방식을 약간만 바꾸어도 환자에게는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신뢰는 정말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환자의 말을 무 자르듯 자르지 않고 말이 안 되는 답답한 이야기를 하는 환자일지라도 일단은 환자를 배려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친절히 설명해주는 것이 결국 진료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Yes-Taking 기법'은 환자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경청하여 환자의 마음을 읽고 환자가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는 곧 환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읽어주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환자의 입에서 의사가 던진 질문에 대해 “네. 맞아요. 맞아” “네. 그랬어요”라는 Yes 답변이 반복적으로 나오게 하여 결국 `아, 이 선생님은 내 마음을 너무 잘 아는구나', `와, 이 선생님은 어쩜 이렇게 진료를 잘 볼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결국 의사의 진료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다. 필자가 실제 의사 선생님들에게 교육을 하며 표준화 환자를 투입하여 진료보시는 모습을 모니터 하다보면 어떤 선생님들은 환자가 계속 “아닌데요.” “글쎄요.” “별로 그렇지 않은데…” 식으로 NO라고 답하는 질문들만 골라 던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환자가 NO라는 대답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면 결국 그 환자는 `이 선생님은 내 마음을 참 모르네', `진료를 잘 못 보는 것 같아' 식으로 생각하게 되고 결국 의사가 권유한 치료까지도 불신하게 된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환자가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진료 초반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 마음을 읽어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가 종종 TV 드라마를 보면 드라마 주인공이 용하다는 점집에 가서 비싼 돈을 지불하고 자신의 문제에 대해 털어놓는 것이 나온다. 별로 관심 있게 보지 않더라도 그 점쟁이가 자신을 찾아온 사람의 마음을 귀신같이 읽어내는 질문들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뢰인에게 “맞아요. 맞아”, “와, 정말 잘 맞추네”와 같은 Yes를 반복적으로 이끌어내어 자신의 능력에 대해 신뢰를 주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Yes-Taking' 기법인 것이다.

이와 함께 `화법의 전환'은 진료 시 의사가 환자에게 충고하거나 어떤 행동을 권할 때 환자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효과적으로 전하는데 유용하다. 실제 환자가 의사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의사가 환자를 교육시키거나 환자가 잘못한 일을 지적하고 훈계할 때다. 그러나 이럴 때 의사가 화법을 살짝 전환하면 곧 주어를 `You(환자)'가 아닌 'I(의사)'로 바꿔 이야기하면 더 이상 강요나 지시, 훈계가 아니라 바램이나 부탁조로 들려 훨씬 긍정적으로 전달된다. 일례로 환자가 금연을 못하고 있다면 “담배 좀 끊으세요”라고 지시하듯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꼭 금연하셔야 하는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식으로 주어를 `You(환자)'가 아닌 `I(의사)'로 바꿔 말하는 것이다. 또 주기적으로 병원에 나와야 하는 환자가 한 동안 병원에 나오지 않았다면 “왜 이제야 나오셨어요?”가 아니라 “환자 분이 진료 받으러 나오시지 않아서 궁금하기도 하고 많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식으로 환자를 탓하는 대신 의사 자신이 환자를 많이 기다렸다고 주어를 의사로 바꿔 이야기하는 것이다. 환자의 행동 변화를 위해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그 행동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고 주어를 의사로 바꿔서 바람이나 환자에 대한 기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현명하다는 것이다. 물론 환자 입장에서도 의사의 지시사항이나 요구들이 듣기 싫은 잔소리나 훈계가 아닌 진정 자신을 위해 걱정하는 이야기로 들려 더욱 고마움과 신뢰를 갖게 된다.

이번 한 주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기억하면서 진료 시 말 한 마디, 어휘 사용 하나 등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보면 어떨까.

이혜범(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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