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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의 획득<4>
프리미엄의 획득<4>
  • 의사신문
  • 승인 2011.03.1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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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화된 아이덴티티와 가치에 대한 열망

얼마 전 음반하나를 사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풍월당(風月堂)이 나왔다.
풍월당(http://www.pungwoldang.kr)은 신경정신과 박종호 선생님이 운영하는 유명한 클래식 음반가게이자 카페(인터넷 카페가 아니고 진짜 카페다)인데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10분 정도의 거리인데 그동안 가보지는 못했다.

풍월당의 사장님은 책도 많이 냈고 몇 권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풍월당은 몇 명의 뛰어난 클래식 큐레이터와 라이터들이 근무하기도 한다. 취미와 사업이 문제없이 잘 풀리는 참으로 부러운 케이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케이스로 열정으로 `세실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이광식 선생님이 떠올랐다. 제일 부러웠던 점은 콘서트를 보러 외국으로 나갈 수 있는 여유(그리고 열정)라고 볼 수 있다. 기회가 온다고 해도 필자가 풍월당 같은 것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워낙 좋아하는 것이 많아 그냥 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니 혼자 놀기에도 벅차다. 여러 가지를 다할 만큼 능력이 남아돌지도 않는다. 자유가 제한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부러웠던 키워드는 콘서트고어(Concert Go-er)였다. 콘서트에 가서 즐길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다시 풍월당의 세계로 돌아와서 이야기한다면 마음에 들 만큼의 오디오를 사고 음원을 구입하고 시간을 들여 음악을 듣고 책도 보아야 하며 마음에 드는 음악회에 가서 듣기도 해야 한다. 간단한 마니아 수준만 해도 이 정도는 된다. 그러니 풍월당을 만들기 위해 잠시 클리닉을 접었다는 이야기도 이해가 간다. 어쩌면 정말 마니아중의 마니아일 수도 있다.

가게가 오래 되다보니 이제 모르는 사람도 별로 없게 된 것 같고 브랜드자체가 탄생한 셈이다. 생각해보면 클래식 전문 매장을 만들고 좋은 사람들을 뽑아 집중적인 활동을 한 것이 성공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랜드 또는 브랜드의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맞다. 아마 더 오래 지속되면 브랜드의 가치는 확실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가게는 클래식에 집중하고 좋은 음반을 효과적으로 소개한다.

이제 다시 차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많은 경우 프리미엄 차종의 특정한 디자인 아이덴티티와 특성들은 집요할 정도로 바뀌지 않는다. 대부분 이 특징들은 차종 성공의 DNA이기도 하다. 고객들도 그런 요소를 좋아한다. 롤스로이스를 타는 사람은 포르세를 좋아하는 계층과는 다를 것이며 페라리를 타는 사람과도 다를 것이다. 벤츠를 계속 타는 사람은 나름대로의 브랜드 충성도를 보일 것이며 실제로 메이커들은 이런 요소들을 잘 알고 있다. 메이커가 다른 경쟁사와 대응하기 위해서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는 경우에도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바뀌면 고객들에게 이것이 더 좋은 혁신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포르세가 출력향상과 과열 방지를 위해 수십년간 유지한 공랭식 엔진을 포기하였을 때 기존의 고객들에게 이점을 납득시키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모른다.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엔진이 바뀌는 것을 고객들이 저항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공랭식의 수평대향 H엔진은 포르세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H형 엔진은 변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포르세는 헤드라이트 뒤에 작은 라디에이터를 숨기고 있다. 그리고 차체의 중간을 기다란 냉각파이프가 숨듯이 지나간다.

할리데이비슨도 신세대의 엔진이 수냉식으로 바뀌면서 기존의 고객들에게 새로운 혁신에 대해 설명하느라고 애를 먹었다. 일본이나 유럽의 바이크들과 경쟁하려면 엔진의 출력이 증가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지만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음반이 LP에서 CD로 바뀔 때도 비슷한 저항이 있었다. LP시절에는 카트리지와 턴테이블의 가격이 상당했고 CD플레이어는 고가였다. CD를 만든 필립스와 소니가 엄청나게 홍보했지만 LP를 듣던 사람들이 CD로 전환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 메리디안이나 크렐 같은 회사들이 `고가 + 고성능'을 주장하는 플레이어로 사람들을 홀리기 전까지 사람들은 주저했다. CD에는 무엇인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주장이 꼬리를 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가의 플레이어를 사서 프리미엄을 즐기기 시작했다. SHURE나 AKG의 LP 카트리지와 바늘에 많은 돈을 쓰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CD의 픽업이나 DAC같은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생각해보면 머리가 좋은 메이커들의 기발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어떤 회사의 어떤 제품이 더 좋은가를 놓고 논쟁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주고 물건을 손에 넣고 싶어 했다. 성능은 상당히 좋지만 가격은 더 기가 막히게 좋은 장비들이 오디오의 세계에는 언제나 존재했던 것이다. 프리미엄의 세계는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했던 것이다. 사실 차별화된 물건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발명해내야 할지도 모르는 수요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특별한 것을 원하고 이들을 오래 즐긴다. 본능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런 프리미엄의 물건들, 명품의 반열에 든 제품들을 부정할 수 없다. 수요가 강렬하니 중요한 시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터무니없는 가격표가 붙어있다고 해도 사고 싶은 갈망을 받으면서 오랜 기간 존속하기도 한다.

필자 역시 들을 장소나 시간도 마땅치 않으면서 재미있는 아이템들에 강한 흥미를 느끼곤 한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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