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산부인과 의사 - 허스트
첫 산부인과 의사 - 허스트
  • 의사신문
  • 승인 2011.03.1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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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근대화 초석·독립운동 지원에 헌신

허스트(Jesse W. Hirst)
허스트(Jesse W. Hirst, 許濟)는 1864년 미국에서 출생하였다. 1890년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1893년 필라델피아의 제퍼슨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00년부터 제퍼슨의과대학에서 조직학, 산부인과 및 진단학을 강의하다가 북장로회 의료선교사로 1904년 내한하여 새로 세워진 세브란스병원에서 일하였다.

일반적으로 허스트의 업적은 에비슨의 그늘에 가리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허스트는 1904년 세브란스병원이 신축될 때 파송되어 1934년까지 만 30년을 에비슨과 함께 의학교육과 환자진료에 헌신하였다. 그의 이름이 다소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가 숨어서 봉사한다는 신조를 간직한 채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스트가 우리나라의 의학발전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산부인과의사로서 산모의 출산과 영유아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세브란스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양성하였다는 점이다. 그의 지도아래 신필호 등이 산부인과의사로 성장하여 교수로 재직하는 동시에 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허스트는 독립운동에도 간접적으로 관여하였다. 그 중에서도 일본에 의한 강제 해산에 저항하여 시가전을 벌이다 부상한 군인들을 치료한 사실은 박애정신을 실천한 것으로 크게 평가받았다. 허스트는 3·1운동 역시 간접적으로 지원하였다. 당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교내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찰에 알려지게 되어 학교에 대한 수색이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등사기와 독립선언서를 해부학 실습실로 가져가 그위에 시체를 올려두고 위급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허스트는 경찰들이 교내로 들어오려 하자 “이곳은 교육기관일 뿐 아니라 우리 학교에서는 그런 인쇄를 하는 학생이 없다”고 말하며 경찰의 진입을 저지하였다. 학생들의 기지와 허스트의 강경한 입장에 힘입어 세브란스에 있던 독립선언서는 무사히 전국 각 지역에 배포될 수 있었다.

허스트는 미국으로 돌아가 플로리다에서 1952년 8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집필 : 황의호(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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