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13:22 (목)
프리미엄의 획득 <3>
프리미엄의 획득 <3>
  • 의사신문
  • 승인 2011.03.03 1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작업으로 제조했던 프리미엄 자동차

예전의 차들에서 차종을 막론하고 부속을 만드는 일은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했다. 요즘의 관점에서 보면 바보스러울 정도의 노력이 기계부속 하나를 만드는데 들어간다. 필자는 대체부속을 기계 가공하는 집에 맡겨서 깎아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런 바보스러운 노력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팬벨트 아이들러 롤러를 하나 만들려면 비용은 얼마들지 않더라도 몇 시간은 든다. 재고가 있다면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부품을 만들라고 주문을 넣어도 몇 달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부속은 반드시 공장에서 만들어야 한다면 차들은 서있어야 한다.

대량생산은 소모품인 자동차에 생명을 불어 넣은 셈이다. 포드 T형 모델이나 폭스바겐의 비틀은 대량생산의 한 획을 그었다. 부품이 많기만 하다면 고민은 줄어드는 셈이다. 부품을 만드는 과정에 불합리한 점이 있더라도 일단 부품이 많기만 하다면 대체는 가능하다. 차종이 흔할수록 운행기간내에는 문제가 없는 셈이다.(프리미엄 차종들은 원래 이 반대의 스펙트럼에 있었다. 절대 흔하면 안되고 성능이나 가격 안정성에서 차별성을 띠고 있어야 했다)

차량의 부속재고 관리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사실상 전산화나 유연생산(FMS)이 등장하기 전까지 재고관리의 신조는 “많을수록 좋다”였다. 그러나 많은 재고는 차종의 변경을 주저하게 만든다. 부품을 다 버릴 수도 없고 재고관리도 어려워진다. 차종의 다양화도 재고관리에는 재앙인 셈이다. 그래도 메이커들은 어려움을 참고 재고를 오랜 기간 다량으로 유지했다.

그전에는 더 굉장한 노력이 들었다. 표준품이 없다면 스위치 하나를 만드는 일도 큰일이다. 스위치나 케이블이 망가지면 장인이 이 파츠를 만드는 일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독자들은 케이블을 꺼내어 재단하고 외피와 부싱을 만드는 것을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위치는 전기부속 비슷한 것을 줄칼로 가공하면서 시작한다. 단자의 조립도 손으로 만드는 수 밖에는 없었다.

지난번에 적었던 벤츠의 초기의 차들은 이런 영역에 속했을 것으로 보인다. W번호가 있으니 설계도가 있고 그 규정대로 공장에서 만들어낸 것들은 분명하지만 100대에서 몇백대 정도가 생산량의 전부라면 그리고 이들이 여러 장소로 팔려나가서 오랜기간 돌아다닌다면 대량생산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이런 문제의 해결은 제조품질의 강화로 나타나기도 했다. 처음부터 차를 너무 튼튼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당시의 롤스로이스나 벤츠 같은 차들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고 있다.

사실 손으로 만드는 자동차의 조립과정은 요즘으로 보면 엽기에 가깝다. 요즘에도 손으로 만드는 차들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의 만들기 노력은 정말이지 대단한 수준이었다고 본다. 손재주와 머리를 최대한도로 발휘해야 했다. 차의 모든 제조공정이 일종의 커다란 도전이었다.

차의 펜더나 외피를 만드는 간단한 일 조차도 커다란 도전이었다. 프레스로 찍지 않는다면 손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가장 많이 사용되던 장비는 철판을 두 개의 커다란 롤러 사이에 집어넣고 모양을 다듬던 성형기였다. 원하는 모양이 나올 때까지 성형기에서 철판을 왕복시키며 작업을 했다. 손이 롤러사이에 끼거나 철판에 다칠 수도 있는 상당히 위험한 작업이기도 했다. 중간 중간 종이로 만든 형틀에 맞추며 전체적인 윤곽을 만들어 내는 작업으로 하루에 과연 몇 개나 만들 수 있을까 필자는 곰곰 생각해 보곤 한다.

오랜 기간 같은 일을 하다보면 숙달된 기술자가 된다.(요즘은 프레스나 수압프레스로 몇 초만에 끝난다) 1∼2센티미터 수준의 오차는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작업으로 만든 당시의 차들의 디자인은 지금도 우아하고 완벽하게 보인다.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을 지는 길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요즘도 커스텀 핫로드(HotRod) 차들은 성형기를 이용해서 만든다. 작업기간이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는 손으로 만들었던 페라리의 작업도 이런 작업에 비하면 쉬운 편이다. 지금보다 훨씬 적은 댓수를 생산하던 페라리의 차체는 고강도의 크로몰리 파이브를 용접해서 만든 것이고 그 위에 FRP 로 만든 껍데기를 대고 퍼티를 바른 후 샌드페이퍼로 성형하는 방식이었다. 완벽해 보이는 옛날 페라리의 아름다운 곡선은 중간 중간 형틀에 대고 샌드페이퍼로 문지르면서 만들어낸 것이다. 기록필름을 보면 엔진마저도 알루미늄 합금을 작은 거푸집에 손으로 부어서 만들어 냈던 것이다. 예전의 페라리는 공장에서 만드는 DIY수준의 차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페라리가 명품이라는 점은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살롱에서 바느질과 재봉틀로 만든 셔츠를 입는 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양장점이 동네마다 있던 시절이 그 다지 먼 세월이 아니었던 것을 생각하면 사실 요즘의 완벽한 대량생산이 얼마나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손으로 만든 옷이나 구두가 요즘은 사치품이 되어가고 있으며 자동차에서 DIY는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대신 몇 명의 엘리트들이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요소들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 점들을 고려하여 만든 설계도를 바탕으로 SF적인 공장에서 차와 부속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요즘의 명품은 과거의 딱지를 붙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생산과정은 과거와는 다르고 가격대 역시 다르다. 고객의 요구는 실제의 요구가 아닌 제조자들이 생각하는 요구다. 그 요구사이에 커다랗고 중대한 틈이 발생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