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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교육의 개척자 - 에비슨
현대의학교육의 개척자 - 에비슨
  • 의사신문
  • 승인 2011.03.0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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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건립 및 한국 의학교육 기여

에비슨(Oliver R. Avison)
에비슨(Oliver R. Avison, 魚丕信)은 1860년 영국 요크셔주에서 태어나 1866년에 캐나다 온타리오주로 이주하였다. 1884년에 온타리오약학대학을 졸업하고 1887년에 토론토의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그는 토론토의과대학의 약리학교수로 임명되었으며 토론토에서 개원하면서 토론토 시장의 주치의로 활동하였다.

마침 토론토를 방문한 언더우드선교사의 권유로 교수직과 의사로서의 안정된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선교사로 나오게 되었다. 그는 감리교인이었는데 장로회로 옮겨 1893년에 한국에 왔다.

에비슨은 내한하여 제중원의 책임을 맡았다. 당시에 조선정부의 무관심과 불성실 등으로 제중원을 운영하기가 매우 어려웠으므로 이듬 해(1894)에 사직서를 주한 미국공사를 통하여 조선정부에 제출하였다. 이 때 알렌이 중재에 나섰고, 조선정부는 제중원의 운영권을 선교부에 이관함으로써 조선정부와 미국선교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던 제중원을 미국 북장로회선교부가 단독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콜레라가 크게 유행하였던 1895년에 에비슨은 조선정부 방역책임자로 임명받았고, 선교사와 기독교신자들을 모아 방역팀을 만들어서 체계적인 방역활동을 하였다. 에비슨은 의학교육을 하면서 김필순, 홍석후, 홍종은 등 의학생들과 함께 그레이 해부학 책을 비롯하여 유기화학, 약물학, 위생학 등을 번역하였다.

에비슨은 1899년에 안식년을 맞아 캐나다로 돌아갔는데 미국에서 모금활동을 하던 중 후원자 세브란스(1838∼1913)씨가 기증한 재원으로 1904년에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 세브란스병원을 건립하였다. 허스트선교사가 부임하면서 에비슨은 의학교육에 더욱 정진하여 1908년에 7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조선정부는 이들 7명에게 의술개업인허장 1∼7번을 부여하여 우리나라 의사면허의 효시가 되었다.

에비슨은 예방의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소아과의사인 아들(Douglas B. Avison)은 1926년에 토론토대학에서 보건학박사를 받고 귀국하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소아과교수 겸 위생학(현 예방의학)교수로 일하였다.

언더우드와 함께 일하던 에비슨은 언더우드가 별세하자 1916년부터 1934년까지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겸직하여 우리나라 의학교육과 사학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에비슨은 한국인 후임자를 키워 교장직을 물려주고 1935년에 은퇴하면서 한국을 떠났다.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여생의 대부분을 지내다가 96세를 일기로 1956년에 작고하였다.

한국 의학교육의 개척자인 에비슨은 1952년에 건국공로훈장을 받았다.

집필 : 유승흠(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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