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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학 발상지 광혜원을 개설한- 알렌
서양의학 발상지 광혜원을 개설한- 알렌
  • 의사신문
  • 승인 2011.02.2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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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혜원 설립 및 의사·외교관으로 개화 도와

알렌(Horace Newton Allen)
알렌(Horace Newton Allen, 安連)은 1858년 미국 오하이오주 델라웨어에서 출생하였다. 1883년에 미국 오하이오주 마이애미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로서 하나님의 사도가 될 것을 결심한 알렌은 미국 북장로교 파송 선교의사로서 중국에 부임하였다.

 

청나라(중국)에 온 알렌은 중국보다 더 먼 곳으로 생각하는 한국으로 가기를 자원하여, 그 이듬해 9월에 제물포(현재의 인천)항을 통하여 한국에 왔다. 당시 반 기독교적이며 쇄국주의 분위기였기에 알렌은 주한 미국공사관의 공의의 직함을 가졌다.

알렌이 한국에 온지 두 달 남짓하여 갑신정변이 일어났는데 이 때 명성황후의 조카이며 고종이 아끼는 금위대장 민영익이 자상(刺傷)을 입었다. 어의들이 치료를 하였으나 효험이 없을 때 외무협판 묄렌도르프가 알렌을 소개하여 치료를 해서 완쾌하였다. 알렌은 1885년에 궁중어의(宮中御醫)로 위촉되었고 고종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이런 인연으로 고종 황제는 알렌에게 고마움을 표하였고 알렌은 병원을 설립하여 진료하고 의술과 위생학을 가르칠 수 있도록 제안하였다. 고종황제는 알렌에게 서울 재동(옛 창덕여고, 현 헌법재판소 자리)에 있는 개화파 홍영식의 집을 주고 광혜원(廣惠院, House of Extended Grace)이라 명하여, 한국 최초의 서양의료기관을 설립운영하게 하였다. 3주 쯤 뒤에 제중원(濟衆院, House of Universal Helpfulness)이라 다시 하사하였다. 왕립병원으로 개원하고 알렌의 책임 하에 운영되었는데 1885년에 의료선교사 헤론, 1886년에 여의사 엘러스 등 미국 선교의사들이 속속 내한하여 진료하므로 환자들이 줄을 이어 개원 첫해에 일만 여명을 진료하였다.

알렌에 의하여 서양의학이 도입되었고, 1886년부터 제중원의학부에서 의술을 가르쳤다. 아울러 기독교에 대한 금기가 완화되어 선교사들이 쉽사리 입국하여 활동할 수 있게 됨으로서 개신교의 수용을 가능하게 하였다.

알렌은 정부의 요청에 따라서 주미 한국공사관의 외국인 서기관으로 일하였고, 1890년부터는 주한 미국공사관의 서기관, 총영사, 공사의 책임을 맡았다. 그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성실하게 펼친 선교사, 정성과 기량을 다하여 진료한 탁월한 의사, 한국이 문호를 개방하도록 촉진하기 위하여 전심전력한 외교관의 역할을 함으로서 우리나라의 개화를 위하여 전심전력하였다.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외교관으로서 15년을 보냈다. 알렌이 너무 친한적인 태도를 보이므로 거북하게 생각한 미국 정부가 공사직을 파면하므로 1905년에 한국을 떠나 귀국하였다. 알렌은 젊은 시절 22년을 한국을 위하여 일하였다.

고대설화집(Korean Tales)을 1899년에, 한국대외관계연표(A Chronological Index)를 1900년에, Korea : Facts and Fancy를 1903년에, 조선견문기(Things Korean, 박영사에서 번역출판)를 1908년에 저술하였다. 그는 한국의 문화와 풍속을 이해하고 우리말을 배우려고 노력하였다. 귀국 후에는 의료업을 그만 두었다. 한국 근대화의 은인 알렌은 74세로 1932년에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영면하였다.

집필 : 유승흠(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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