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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중심진료, 니즈와 성향 신속 파악부터 시작
환자중심진료, 니즈와 성향 신속 파악부터 시작
  • 의사신문
  • 승인 2011.02.2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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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실천 프로젝트 - `진료 잘 하는 의사 되기' <6>

얼마 전 지인 중에 한 분이 암으로 돌아가셨다. 그 분은 50대 초반 남자 교수님으로 몇 년 전 대장암 판정을 받고 그 동안 치료를 포기한 채 집에서 진통제로 연명하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번에 대학에 입학하는 딸이 있는 만큼 몇 년 전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곧바로 항암 치료를 받으셨다면 좀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분 장례식에서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그 분이 치료를 포기한 것이 의사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아울러 교수님 가족들이 의사를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모님을 통해 들은 바로는 그 교수님도 처음에는 암 진단을 받고 열심히 항암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한 3∼4회 정도 치료를 받았을 때(처음 진단 내려진 항암치료의 절반도 받지 않았을 때) 교수님은 의사에게 항암치료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 물었고 의사는 단도직입적으로 `효과가 별로 없다'라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결국 교수님은 그 이후부터 항암치료를 일체 포기하고 외부와는 연락을 두절한 채 집에서만 칩거하셨고 그렇게 세상을 원망하며 돌아가셨다. 그러나 당시 암 초기였던 만큼 항암치료 예후가 생각보다 좋지 않더라도 의사는 일단 주어진 항암 치료는 모두 받도록 환자를 이끌어야 했다. 그랬다면 최소한 환자를 떠나보내며 그 가족들이 지금처럼 의사를 원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니까.

진료를 잘 보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환자의 질문이나 답변 속에 담겨진 진의를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일례로 환자가 의사에게 “항암치료 효과가 얼마나 있나요?” 라고 질문을 던졌다면 그 속에는 여러 가지 의도가 있을 수 있다. 일차적으로는 단순히 당장의 치료 효과가 궁금해서 물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면에 치료 자체를 받을지 중단할지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전에 의사에게 의견을 구했을 수도 있다. 곧 의사는 환자가 같은 질문을 던졌을지라도 환자가 그 질문을 던진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여 환자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앞서 암으로 돌아가신 교수님의 사례를 보더라도 그렇다. 일단 처음에 주어진 항암 치료는 다 받을 수 있도록 이끌기 위해서는 처음 12회 항암치료를 권유 받고 아직 3∼4회 치료 밖에 받지 않은 환자에게 섣불리 치료 효과를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환자가 치료 효과가 별로라고 하는데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고 싶겠는가. 만약 환자가 치료에 기대했던 것만큼 반응이 없다면 최소한 주어진 치료는 끝내고 이야기하도록 시간을 끌었어야 했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암이라는 병에 국한되지 않는다. 만성질환인 비만이나 당뇨 환자도 마찬가지며 그 모든 환자에게 해당된다.

치료 효과가 없는데 있다고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기대를 갖고 아픈 치료를 받는 환자의 마음을 읽어주고 노고를 인정해주라는 것이다. 특히 논리적이고 지적 수준이 높은 환자일수록 주어진 전체 치료 중 단 1∼2회 치료만 받고도 본인 스스로가 치료 여부를 결정할 확률이 크기 때문에 사소한 말 한 마디도 주의해야 한다. 현재 보이는 치료 효과를 넘어 환자가 치료를 열심히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준다면 환자는 의사가 처음 진단내린 치료 횟수가 채워질 때 까지는 치료를 열심히 따라올 수 있게 된다. 단 1회 치료를 받았을 뿐인데 환자가 치료 효과를 따질지라도 의사는 환자가 주어진 치료를 모두 마칠 수 있도록 깊은 라포를 형성하고 그 마음을 공감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환자일지라도 상황에 맞춰 현명히 이끌 수 있는 의사가 바로 진료 잘 보는 명의다.

물론 이렇게 의사가 환자에게 신뢰를 주고 효과적인 치료로 이끌어 목표했던 치료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진료가 전적으로 환자 중심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환자 중심 진료란 환자의 니즈를 신속히 파악하고 그에 맞춰 진료하는 것이다. 의사가 알고 싶은 것보다 환자가 궁금해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환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진료 말이다. 특별히 환자의 성향이나 코드에 맞춰 라포를 형성하는 것도 환자 중심 진료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의사의 같은 말이나 행동도 환자의 성향에 따라서 어떤 환자에게는 부담으로 어떤 환자에게는 고마움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 성향별 구체적인 진료 방법은 추후 칼럼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므로 이번 칼럼에서는 처음 병원에 온 초진 환자의 외모나 스피치 방식을 보고 환자의 특성을 신속히 파악하여 라포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환자가 궁금해 하는것에 초점 맞추고 의견을 존중해야
스피치·제스처 통해 환자의 내성적·외향적 성향 판단
성향 파악후엔 질문방식도 열린 질문·양자택일형 선택


일차적으로는 환자의 목소리와 말의 속도로 환자의 특성을 읽어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목소리는 적극성과 마음 상태를 담고 있고 말의 속도는 성격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즉 환자 목소리가 작고 말의 속도가 느리다면 그 환자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며 신중한 환자일 확률이 높다. 반면 목소리가 크고 말의 속도가 빠르다면 적극적이고 성격이 급한 환자일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내성적이고 신중한 환자들은 의사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혼자 속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할 확률이 크기 때문에 환자가 던진 질문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신중히 답할 필요가 있다.

반면 적극적이고 성격이 급한 환자들은 치료 효과를 빨리 경험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여러 치료들 중에서 환자가 가장 빠른 효과를 경험할 수 있는 치료를 우선순위로 잡는 것이 좋다. 그 다음으로 환자가 자주 사용하는 어휘로 환자를 파악할 수 있다. 환자가 직접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지 간접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지 혹은 객관적인 어휘를 사용하는지 주관적 혹은 추상적인 어휘를 사용하는지 등을 읽고 환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진료해야 한다. 만약 환자가 너무나 주관적인 어휘들만 나열하고 있고 추상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면 의사는 환자에게 열린 질문(“어떻게 생각하십니까?”)으로 환자가 자유롭게 답하게 하기 보다는 일정한 한계를 긋는 양자택일형 질문(“좋습니까? 싫습니까?”)이나 선택적인 답안(“A 치료와 B 치료 중 무엇을 하시겠습니까?”)을 제시하여 환자가 그 속에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은 외적인 모습으로 환자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다. 환자가 제스처가 크고 어깨를 당당히 펴고 다리를 벌리고 앉는 등 적극적인 제스처와 열린 제스처를 사용한다면 의사 역시 환자를 적극적으로 칭찬하고 어깨를 두드리거나 가벼운 농담을 건네는 등 적극적으로 진료에 임하는 것이 소통에 도움이 된다. 환자를 교육할 때도 눈을 정확히 바라보며 주의사항 등은 직접 종이에 써주는 등 적극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반면 환자가 제스처를 사용하지 않고 구부정하게 앉고 팔짱을 끼는(팔짱을 끼는 것은 방어적 자세) 등 소극적인 제스처와 닫힌 제스처를 사용한다면 이런 환자에게는 적극적인 칭찬이나 눈 맞춤이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다. 물론 악수나 농담도 초진환자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기에 삼가는 것이 좋다. 이런 환자에게 지금 당장의 치료 효과가 기대보다 좋지 않다고 바로 부정적인 결론을 내린다거나 의사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직접적으로 혼내며 비판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이런 환자에게는 환자에게 부담이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진료 중 적절히 미소를 짓고 환자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불러두고, 다정다감한 말투와 긍정적인 어휘 사용 등으로 환자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로 병원에 진료 받으러 온 환자가 번쩍이는 금장 롤렉스시계를 착용하고 있다거나 기타 값비싼 명품을 많이 착용하고 있다면 혹은 의사에게 이야기하는 가운데 본인이 평소 VIP 대접을 받는 특별한 환자라는 것을 자주 표출한다면 그런 환자에게는 진료 중에 `특별함'을 강조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치료 계획을 세우거나 진료 일정을 잡을 때도 “환자분만 특별히…” 식으로 이야기하면 환자는 의사가 자신을 특별한 환자로 대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의사의 말에 잘 따르게 되며 충성심까지 갖는다. 실제 자신이 VIP 환자라고 생각하는 환자가 서울의 한 병원에 갔다가 병원 1층 데스크 직원이 자신의 질문을 무 자르듯 자르고 “저기 번호표 뽑고 기다리세요.”라고 이야기한 것에 화가 나서 병원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만큼 같은 말일지라도 대접받고 싶어 하는 자존심 강한 환자에게는 기왕이면 그 환자가 대접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하자. 우리말은 미묘한 단어 하나, 어조나 말투 차이만으로도 전체적인 느낌이 달라질 수 있기에 조금만 주의하면 어렵지 않다.

환자도 결국은 질병을 지닌 평범한 인간이다. 그러므로 `이 환자가 어디가 불편할까?'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존중받고 싶어 하는 인간임을 먼저 기억하자. 이번 한 주는 환자의 스피치 방식이나 외적인 모습에 관심을 갖고 환자에게 맞는 환자 중심 진료를 해보면 어떨까.

이혜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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