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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의 획득〈2〉
프리미엄의 획득〈2〉
  • 의사신문
  • 승인 2011.02.2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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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브랜드를 향한 메이커들의 노력

차들은 많지만 프리미엄 브랜드의 숫자는 많지 않다. 프리미엄급 차들은 다른 차종보다 비싸게 팔린다. 메이커의 이미지도 올라간다. 그리고 연구비를 많이 들여 새롭고 비싼 기술을 선보여도 고객들은 기꺼이 사준다. 경합금을 사용한 차체를 만들어서 비싸게 팔아도 되고 부품가로 1000만원에 근접하는 테일램프를 달고 다녀도 차를 구매해준다.

사는 사람들 자체가 비싸더라도 돈을 지불하겠다는(적어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 비용의 문제가 크게 대두되지 않는 중요한 시장이다. 메이커는 새롭고 비싼 기술들에 대한 몇 년간의 시험을 해볼 수도 있다. 이 기술들이 나중에 더 낮은 차종에 적용될 때에는 이미 검증이 끝난 시점이 된다. 아무튼 좋다는 이미지의 구축에 성공했기 때문에 고객들은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을 기꺼이 지불한다. 그저 달리고 움직이기만 하는 차가 아니라 프리미엄급차종이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차종은 이리저리 프리미엄이 붙고 또 붙는다.

메이커들이 프리미엄급 차종을 가지려고 하는 노력은 상당히 집요해서 여러 가지 전략을 붙여서라도 프리미엄 시장에 접근하려고 애를 쓰게 된다. 토요타가 렉서스라고 하는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에 진입했을 때 처음에는 토요타의 모델을 조금 고급스럽게 만들어 이름표만 만들어 붙이는 수준이었다. 크라운이나 아리스토 같은 차종을 렉서스라는 차종군으로 편입시키는 수준이었다. 주요부품은 대등한 수준이었다. 요즘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얼마전까지 토요타의 차종과 렉서스의 차종을 매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토요타는 렉서스라는 브랜드를 따로 만들고 브랜드를 차별화시키는 노력을 집요하게 기울였다.

작전은 상당히 성공적이어서 렉서스의 판매실적은 상당히 좋았다. 우리나라에서도 판매량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었다. 요즘 다른 메이커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기는 했지만 렉서스는 일단 고급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는 성공한 셈이다. 니싼은 인피니티 시리즈를 만들었고 혼다는 어큐라 브랜드를 만들었다. 폭스바겐은 아우디 같은 회사를 갖고 있지만 자체적으로 Paethon 시리즈에 신경을 쓰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현대나 기아도 프리미엄급 차종의 브랜드를 갖고 싶어할 수도 있다. 제네시스나 에쿠스 같은 차종은 이미 가격대가 프리미엄급을 넘어서기 시작했지만 프리미엄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회사를 갖고 싶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 이미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가졌던 회사들도 있었다. 벤츠 같은 회사가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최초의 자동차회사라고 볼 수 있는 벤츠는 처음에 다임러와 칼 벤츠가 만든 각기 다른 회사로부터 출발했다. 둘은 1926년 합치기 전까지 완전히 독립적인 회사였다. 1890년 다임러자동차회사를 세운 다임러는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Das Beste, oder nicht)'는 창업정신을 가졌다고 한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엔지니어 마이바흐는 최초로 4기통 4스트로크 엔진을 만들었다. 그전에는 1기통 엔진이 주력이었다. 요즘은 마이바흐라는 이름을 가지고 벤츠가 S클래스 베이스의 다른 프리미엄 라인을 만들기도 한다.

다임러와 벤츠 두 메이커의 경쟁은 자동차만이 아니라 선박과 항공기에까지 이어지면서 20세기 전반을 장식했다. 두 메이커의 차 만들기는 각각 특징이 있었다. 레이스에 관심을 가졌던 다임러는 스피드에 역점을 두었고 벤츠는 기술과 안전에 주목했다. 다임러와 벤츠의 경쟁은 독일 자동차를 세계적인 상품으로 끌어올렸다. 배와 비행기 엔진 제작에서까지 경합을 벌이던 벤츠와 다임러사는 1차 대전후의 경제 불황으로 1924년 두 라이벌 회사는 자동차 산업의 어려움 속에서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다가 2년후 한 회사로 합치게 된다. 이때가 1926년이며 1998까지 벤츠의 회사명은 Daimler-Benz AG였다. 크라이슬러와의 합병으로 DaimlerChrysler AG가 되었다가 2007년 크라이슬러를 매각하고 Daimler AG 로 변했다. 회사이름은 창업이후에 몇 번이나 변했다.

1926년에 창업당시의 로고는 1916년부터 다임러가 써오던 삼각별 마크와 칼벤츠의 월계수 잎의 로고가 합쳐져서 월계수 속의 삼각별 마크에 메르세데스-벤츠(MB)란 이름으로 변한 것이다.

합병을 일으킨 메르세데스-벤츠는 1930년대로 접어들며 세계 최고의 성능, 품질과 권위의 상징처럼 변한다. 속도와 안전, 신뢰와 성능을 겨루는데서 최고를 지향했고 가격면에서도 최고를 지향하며 대중적인 자동차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그 다음의 경영자들도 최고의 차를 지향했기 때문에 요즘에도 고급차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벤츠가 소형차를 만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워낙 적게 팔려서 이미지가 적게 남은 것 뿐이다. 당시 벤츠의 소형차들은 W23, W26, W02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종류가 있다. W다음에 나오는 숫자가 혼동을 일으키는 것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은 것들은 고급차들의 이미지다. 다임러벤츠는 1928년 고성능차 메르세데스 SSK(Super Sport Kurz의 약자다)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대단한 성능의 차로 보면 된다고 한다. 물론 이 차에도 W06이라는 번호가 붙어있다. 1930년에는 포르세가 디자인한 W10이라는 모델명의 만하임이 나왔다. 1930년대 벤츠는 세계 각국의 군주나 원수가 즐겨 탄 W07모델 그로서(Großer Mercedes)와 아름답고 호화로운 유선형 스포츠카 W29 MB500K 등을 내놓았다. 그로서는 히틀러나 나치의 고관들이 타고 다니던 호화로운 차종이며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가끔 볼 수 있는 차종이다.

W29는 시대를 뛰어넘은 디자인이었다. 이들은 요즘 거리에 나타나도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는 점에는 틀림없다. 성능이나 설계는 요즘으로 보아도 놀라울 정도다. 더블위시본 같은 서스펜션이 1930년대에 이미 기본적으로 구현되어 있었는데 당시의 공업수준으로 보아 놀라운 엔지니어링의 적용이다. 돈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성능이 더 중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은 분명했다. 그 결과 가격은 더 놀라울 것이 틀림없었는데 사람들의 뇌리에는 이런 점들이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요즘과 같이 완전 자동화된 생산이 일어나기 전의 차들은 부품을 손으로 생산했고 설계도를 바탕으로 줄이나 해머로 일일이 만들어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품질은 장인의 숙련도와 비례했고 때로는 생산인력의 차질로 부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거나 기일내에 대지 못하는 수도 있었다. 물론 놀라운 가격을 바탕으로 좋은 품질의 부품을 만들어 낼 수는 있었지만 요즘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공예품이나 수공예품으로 보는 편이 옳다고 보아야 했다. 라디에이터 그릴도 수공으로 만들었다. 사실은 그릴이 아니라 진짜 공예품 라디에이터가 차밖에 돌출되어 있었다.

가격 때문에 찾는 사람도 극히 한정되어 있었고 만드는 댓수도 한정되어 있었으니 완벽한 프리미엄이라고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프리미엄이 되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 벤츠말고도 몇 종류의 고급차들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었으나 남아있는 회사는 그중에도 소수다. 롤스로이스나 랜드로버의 일부 차종은 얼마전까지도 손으로 만드는 작업공정을 자랑할 정도였다. 생산대수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기억들이 메이커의 이미지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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